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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집회’와 개신교 우파
또 다시 꿈틀대는 극우주의적 기획에 대하여
그 많던 목사들은 어디에
있어야 할 법한 목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 내내 대통령에 대한 지지와 성원을 아끼지 않았던 이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2007년 이명박 정권이 출범할 당시 총화단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한국개신교는 ‘장로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했다. 하지만 2013년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던 제18대 대선에서 개신교 목사들의 참여는 크게 줄었다. 더욱이 2016년 20대 총선(4.13총선)에선 새누리당을 이탈하여 개신교 독자정당파로 많은 교계지도자들이 모여들었다. 이렇게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정치화된 개신교 목사들의 분화는 보수대연합의 와해과정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박근혜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하는 교계지도자들의 수는 적지 않다.
그런데 2017년 초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에 이들 열혈 지지자들의 참여는 주최측의 기대를 훨씬 못 미쳤다. 새해 첫 번째 집회가 열리던 1월7일, 마침내 “태극기를 든 애국시민이 촛불 종북좌파를 압도하게 되었다”고, ‘박근혜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이하 탄기국) 대변인은 잔뜩 고무된 멘트를 날렸다. 한데 그 집회에, 1천 명의 목회자들이 대열의 선두에 서서 행진할 것임이 예고되었지만, 목사 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해서 주최측은 준비한 목사 가운을 자원자들에게 무차별 나눠주었다.
보수주의적 개신교회 연합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교회연합이 주최한 3.1구국기도회는 같은 장소에서 열린 3.1절 태국기집회로 바로 이어졌는데 이날 기도회 참여자는, 예상을 훨씬 못 미치는, 2만 명 정도로 추산되었다. 이는 3.1절에 열린 또 한 번의 대대적인 광장기도회였던 2003년의 구국기도회와 비교하면 규모가 십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수치였다. 더욱이 이 기도회 참여자를 한 축으로 해서 500만 명이라는 전무후무한 규모의 정치집회를 열고자 했던 탄기국의 계획은 첫 단추에서부터 크게 엇나갔다. 교인들의 동원도 턱없이 부진했고 목사들의 참여도 너무나 저조했다.
이렇게 목사들의 참여가 저조한 것에 대해 한 개신교계 언론사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교인을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개신교 목사들은 한국사회에서 안하무인격 무뢰함의 표상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교인들의 반응을 읽는 데 있어 눈치 백단의 전문가들이다. 중・소형교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절대군주에 비견될 만큼 교회의 가용자원의 독점적 권력을 장악한 대형교회 목사들도 1990년대 이후의 지형에선 별반 다르지 않다.
여기서 ‘1990년대 이후’란 교회의 양적성장이 정체된 시기를 뜻한다. 한데 이 시기에도 대형교회로 부상한 교회들이 적지 않은데, 그것은 새신자의 유입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떠돌이 신자들을 정착시킨 결과다. 그러나 이것은 그 반대의 가능성도 내포한다. 아차 하는 순간에 이동성향이 강한 신자들이 대거 이탈하여 다른 교회들로 옮겨갈 수도 있는 것이다. 하여 가장 안정성이 높은 대형교회들에서도 목사들은 교인들의 동태에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다. 목사들의 교인 관리의 치밀함과 섬세함은 전 세계 어느 개신교 교회들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한국개신교의 두드러진 특징일 뿐 아니라, 한국사회의 어느 종교와 비교해도 압권적이다.
이러한 목사들의 강도 높은 교인관리 시스템과 관행 덕에 교회의 사회적 신망도가 심각하게 추락하는 상황에서도 교회 자체는 결속의 위기를 크게 겪지 않았다. 비록 교회나 목사에 대해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대다수 신자들은 그것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 목사가 힘주어 강조하는 것에 대해 비록 동의하지 않더라도 신자들은 목사의 뜻에,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협력했다.
한데 2016년 4.13총선을 거치면서 교인들이 더 이상 목사들에게 억지로 동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당시 기독정당들에 참여한 목사들의 수는 최고조에 달했고, 그들은 교인들을 자신들의 정치적 기획 속에 적극적으로 동원하려 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목사들의 열정적 동원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이후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부패, 무능 등이 폭로되면서 교인들의 태도가 크게 달라지고 있음을 수많은 목사들은 눈치 채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를 읽지 못한 것인지, 세계 1,2위를 다투는, 오순절운동 계열의 초대형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기독교대한하나님의교회파)와 은혜와진리의교회(예수교대한하나님의교회파)는 태극기집회에 열렬히 동조했고 적극적으로 교인을 동원했다. 주로 노년층 신자들이 담임목사의 요구에 순응했다. 하지만 많은 교인들은 고개를 돌렸고, 일부는 노골적인 불만과 저항의 행동을 했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일이 교회 안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반면 교인들의 냉정해진 태도를 좀 더 기민하게 읽은 목사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태도가 바뀌지 않았다 하더라도, 교회 안에선 침묵했고 교회 밖에서도 행실을 조심하고자 했다. 하여 광장의 ‘태극기 대열’에서 목사들의 참여는 현저히 줄어든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기독교의 냄새가 짙다
개신교 목사들과 그들이 동원한 신자들의 수가 기대 이하였음에도 태극기집회에는 기독교 색깔이 짙게 배어 있다. 대형 십자가, 목사 가운을 입은 사람들, 기도하는 소리, 그리고 찬송가 소리 등이 시위대 속에서 도드라져보였다. 목사가 동원한 이들은 대개 노인들이고 수동적이며, 심지어 그 집회의 성격도 모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니 동원된 신자만으로는 이런 강렬한 기독교적 행동들이 돌출적으로 나타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 필경 다른 부류의 개신교 신자들이 있었을 것이겠다.
태극기집회에 참여한 개신교 신자들은 네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위에서 말한 바, 목사들이 동원한 이들이다. 그들은 대개 노인들이고, 소극적인 참여자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동원된 또 다른 이들이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탈북자들’이 그들이다. 3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남한 내의 탈북자들 중 절반 이상이 개신교와 연관되어 있다. 이때 개신교란 거의 압도적으로 보수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개신교다. 그리고 탈북자가 개신교와 연결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재정적 후원이다. 일상적인 후원 외에도 취업과 연줄망의 기회가 제공되곤 한다.
여기에 하나 더 언급할 것은 일당을 받고 특정한 행동에 동원되는 일도 잦다는 것이다. 이른바 ‘알바데모’가 대표적이다. 물론 태극기집회 같은 극우 성향 집회에 참여한 탈북자들 모두를 ‘알바데모꾼’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금전적 보상 없이 참여한 자발적 시위자들도 적지 않다. 또 ‘알바데모꾼’이라고 하더라도 그들 모두를 수동적인 참여자라고 단언해서도 안 된다. 이들 적극적 참여자들에게 이념적 행동과 금전적 보상은 모순 없이 잘 결합되어 있다. 한데 동원된 ‘알바데모꾼’이든 금전적 보상 없이 참여한 자발적 시위자든, 그들은 거의 모두 적극적인 행위자들이고, 또 그들 대부분은 극우적 탈북단체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 단체들의 다수는 개신교 교회의 후원을 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들 탈북자 시위대들은 찬송이나 기도를 과장하여 드러내는 기독교적 제스처를 적극적으로 취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편 태극기집회에 참여한 개신교도의 세 번째 부류와 네 번째 부류는 목사의 동원에 거의 영향받지 않는 이들이다. 세 번째로 언급하려는 이들은 이른바 ‘광신자’다.
우선 이 용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일반적으로 광신자라는 보통명사는 감정이 이성을 압도하고 행동주의 성향이 강한 신앙패턴을 보이는 신자들을 지칭한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광신자 현상은 대중신비주의 신앙과 밀접히 관련된다. 대중신비주의 현상은 절박한 고통 상황에 놓인 이들이 그것에서 벗어날 출구를 발견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대중신앙의 양상이다. 이러한 대중신앙 양상의 공통된 특징의 하나는 ‘종교혼합주의적’(syncretistic)이라는 점이다. 대중은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교적 표상들을 동원하여 구원의 갈망을 표현한다. 이때 종교적 표상들은 전통적 종교의 표상들만이 아니라, 동시대적인 것도 포함되고 외래적인 것도 포함된다. 가령 전통적인 지신(地神)과 기능신(직업, 출산, 결혼, 질병 등을 관장하는 신들) 외에도, 관우, 맥아더 같은 외래적 영웅-신 표상, 박정희 같은 동시대적 영웅-신 표상 등이 대중신앙의 만신전 속에 참여한다. 이때 대중신앙의 지도자는 이들 만신전의 신들을 자신의 방식대로 조합하여 대중의 고통해소/구원에 개입한다. 이렇게 만신전의 신들 중 일부를 조합하여 서사화하는 일은 대중신앙 지도자가 수행하는 의례적 해석 행위(interprettion for ritual)다.
한데 이러한 해석 행위는 그 사회의 지배적인 치유/구원의 담론과 대립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것은 그 사회의 담론적 질서 밖에 자리 잡는다. ‘신비주의적’이라는 말은 바로 이런 의미다. 이 말의 반대편을 가리키는 기독교 신학적 개념은 ‘지혜’(히브리어 chokma의 번역어다)인데, 그것은 지배담론 속의 유토피아적 지평 혹은 구원의 지평이 사람들의 일상에 개입하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신비주의, 특히 대중신비주의 담론은 지배질서 밖에서 대중에게 구원의 체험을 일으키고 있다. 한데 실제로는 지배담론으로서의 지혜는 이러한 대중신비주의 영역을 폭력적으로 배척하지 않고 지혜의 하위문화 영역으로 포섭하곤 한다.
한데 종종 이러한 대중신비주의적 담론을 (폭력적으로) 배척하는 지배담론이 있다. 한국의 유신체제 담론이 그 예다. 이 담론은 대중신비주의 신앙을 미신으로 규정하고 그 영역에 얽혀있는 이들을 범죄적 존재로 보게 한다. 가령, ‘무등산 타잔’으로 세간에 알려진 박흥숙을 정부당국은 무속과 연계시킴으로써 그의 범죄적 행위가 재계발로 인한 사회적 갈등의 산물로 해석되는 것을 차단하고 종교적 광신이 낳은 범죄로 해석되게끔 유도했다.
한데 한국사회에서 대중신비주의적 종교 현상이 폭발적 영향을 불러일으킨 시기가 있다. 한국전쟁 직후가 바로 그렇다. 몸과 정신의 질병으로 시달리는 무수한 대중 사이에서 말이다. 이때 대중신비주의 종교의 지도자들은 개신교 배경을 가진 이들이 특히 많았다. 그 중 나운몽이라는 이는 경상북도 용문에서 기도원운동을 일으켰는데 전국을 순회하면서 곳곳에서 부흥회를 이끌어 대중신비주의적 기도원운동을 전국화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한데 그를 롤 모델 삼아 부흥사로서의 꿈을 키운 한 청년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조용기다.
그는 서대문구(현재는 은평구) 대조동의 산동네에서 천막교회당으로 시작하여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자를 가진 교회로 성장시켰다. 이러한 성장에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 그의 교리 해석은 ‘3박자 구원론’이다. 영적 영역과 세속적 영역을 이분화시킨 근본주의적 구원론과는 달리, 영적 구원과 세속적 구원(몸과 정신의 질병으로부터)이 하나의 구원 묶음이라고 주장한 나운몽을 계승 발전시켜 여기에 ‘빈곤으로부터의 구원’을 포함시킨 것이 조용기의 ‘3박자 구원론’이다. 이것은 강도 높은 성장주의를 추구했던 박정희 시대 발전전략과 맞물리면서 ‘순복음신화’를 일으켰다.
유신시대 정부의 성장지상주의가 대중의 인권과 생존권을 유린하고 무자비한 노동착취를 조장하였는데 조용기식 3박자 구원론은, 그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폭력적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감내하고 더 근면하게 적응하는 것이 구원을 갈망하는 신자됨의 덕목이라고 강변하였다. 이는 산업화가 초래한 사회의 불안정 요소를 완충하게 하는 역할을 했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사회의 총량적 성장에 기여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더 근면하게 적응했던 일단의 개신교 신자들은 국가 그리고 교회와 동반성공을 이룩하였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실패한 신자들은 훨씬 많았다. 이때 조용기식 구원론은 그 실패를 ‘종교적 신실함의 실패’로 해석하였고, 그 ‘불신자들’은 불신의 죄를 씻어내기 위해 혹은 불신으로 인한 몸과 정신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산기도원으로 호출된다. 산기도원은 이들의 일부를 회복시켜 교회로 돌려보냈고 다른 일부, 여전히 몸과 정신의 질병으로 일어서지 못한 이들을 수용, 관리하였다.
이러한 매커니즘을 달리 요약하면 이러하다. 그의 3박자 구원론은 대중신비주의적 차원과 근대발전주의적 차원을 결합시켰다. 전자의 중심 장소가 산기도원이라면 후자의 중심 장소는 도심의 교회다. 여기서 전자는 치유에 초점이 있고 후자는 성공에 초점이 있다. 이렇게 치유와 성공을 결합시킨 것이 조용기적 순복음 모델의 핵심이다. 그리고 동시대 한국개신교는 이러한 도심 교회와 산기도원을 결합시킨 순복음 모델을 열광적으로 추종한다. 즉 순복음 모델은 초고속 성장을 구가하던 1960~1990년 무렵 한국개신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특히 2000년대 이후 산기도원이 빠르게 사라져 갔다. 이는 한국개신교에서 대중신비주의의 장소가 소멸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산기도원을 본거지로 하던 종교활동가들은 어디로 갔는가? 도심 교회는 그런 이들의 자리를 남겨두지 않았다. 1990년대 이후 도심 교회의 지리적 중심축이 강남, 강동, 분당 지역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은 교회가 빠르게 중산층 중심으로 계층이동을 하고 있고, 교육수준이 더 높아졌으며 과학적 합리주의가 더 강화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산기도원에 친화적인 대중신비주의적 종교인의 자리가 도심 교회에는 거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바로 이 시기에 도시 곳곳에서 교회의 선교 프로그램과는 무관하게 활동하는 거리의 전도자들이 크게 늘게 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산기도원이 폐쇄되면서 그들 중 상당수가 도심 거리의 전도자들로 전화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한편 1997년 조갑제, 김정렴, 이인화 등이 서사화한 박정희 메시아니즘이 등장하고, 대중 사이에서 박정희 메시아니즘적 신앙이 빠르게 확산되었다. 그 무렵부터 최근까지 ‘좋아하는 대통령’에 관한 조사들이 무수히 실시되었는데, 거의 언제나 박정희가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여기에는 단지 호감만이 반영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특히 박정희 메시아니즘이 일단의 대중을 사로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이러한 정치적 메시아니즘이 담고 있는 종교성은 대중신비주의적 종교성과 친화적이다.
이에 대해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2010년 무렵 몇몇 지식인들이 16세기 조선의 대중예언서인, 격암(格菴) 남사고가 지었다고 알려진 《격암유록(格菴遺錄)》을 재해석하여 오늘 한국에서 메시아가 부활했음을 선포하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 예언서의 메시아 표상인 ‘정도령’이 ‘정’씨가 아닌 ‘박’씨 성을 가진 자로 부활하여 정신혁명으로서의 국가재건을 이룩하였으나 비운에 숨을 거두었고, 두 번째 박씨가 61세에 배우자 없이 등장하여 이름을 만방에 떨친다는 예언 해석을 제출했다. 한편 모정주의사상원(母情主義思想院)이라는 기관에 의해 박근혜 메시아니즘에 관한 대단히 흥미로운 세대주의적 종말론(dispensational eschatology) 해석이 제시되었다. 그 논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등장을 기점으로 새로운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즉 이명박 정권을 끝으로 ‘선천부계사회(先千夫係社會)가 종식되고 박근혜 정권의 출범과 더불어 제정일치(祭政一致)의 후천모계사회(後千母係社會)가 도래하여 화합상생(和合相生)하는 이상세계가 영원히 계속될 것임을 선언한다. 예언자는 이 후천모계사회를 ’제7공화국‘이라고 불렀다.
이런 묵시적 텍스트들이 등장했다는 것은 그 전 어느 때부터 대중 사이에서 박정희 메시아니즘이 확산되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는 그를 이을 메시아적 존재를 찾아내려는 대중적 갈망의 정치가 계속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추론하게 한다. 실제로 그 무렵 현실정치에서 특히 여권의 여러 대선후보들이 ‘제2의 박정희’로 자신을 연출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2010년대 초 박근혜가 제2의 박정희로 메시아를 갈망하는 대중에게서 확정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해석처럼 박근혜는 2012년 대통령이 될 때 나이가 61세였고 비혼자였다. 이것이 사후해석인지 사전해석인지는 상관없다. 메시아신앙의 대중은 그것을 신의 예언으로 믿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하여 박근혜의 콘크리트지지 현상의 배후에는 박근혜 메시아신앙의 대중이 그 한 축을 이루고 있었을 것이겠다.
여기에 하나 더 언급할 것은, 앞에서 말한 바, 대중신비주의 신앙은 혼합주의적이라는 사실이다. 해서 박근혜 메시아 담론 속에는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정도령, 관세음보살, 그리스도 등의 메시아 표상이 혼재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올해 3월, 박근혜가 탄핵되어 삼성동 사저에 있을 때 개신교계 광신자들의 애도와 저항의 퍼포먼스가 열리는 바로 그 옆에서 자신을 ‘정도령’이라고 주장한 40대 남자의 두 번에 걸친 알몸 퍼포먼스가 있었다. 지배적인 근본주의적 개신교 담론은 이교도와 광장을 공유해서는 안 되지만 박근혜 메시아니즘 안에서 그 곳의 개신교도들은 ‘알몸의 정도령’에 대해 적개심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 순간 그이들은 박근혜 메시아주의라는 종교혼합주의적 신비주의 신앙을 공유하는 광신도로 결속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저 ‘알몸의 정도령’은 정신병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시시때때로 주체와 타자의 교란을 일으키며, 정도령을 몸 안에서 혼란스럽게 체현하고 있던 사람이다. 병약한 그의 몸이 정도령이 된 것은 ‘탄핵되어 또 다시 무너져버린 정도령, 즉 ’제2의 박씨’를 그가 자신의 몸으로 표상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여 그의 알몸 퍼포먼스는 그 곳의 개신교도들과 함께 치루는, 박근혜를 애도하는 예전의 일부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대중신비주의적 메시아니즘, 특히 개신교 성향의 열렬한 메시아 신봉자들은 어떤 이들일까? 말할 것도 없이 이런 신앙을 대표하는 장소는 산기도원이다.
그런데 산기도원들이 속속 몰락하고 있던 시기에 그곳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이들은 새로운 안식처를 찾아 엑소더스를 했다. 그들 중 상당수는 혈연 가족과 신앙의 가족들이 도처에 살고 있는 도심 공간으로 찾아왔으나, 교회나 가족은 그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하여 그들은 도심 거리로 나가 천국복음을 외치는 고독한 전도자가 되거나 광장에서 정치적 메시아 도래를 외치는 이데올로기의 투사가 되었다.
정리하자면 태극기집회에 참여한 개신교 신자의 세 번째 범주로 ‘광신도’를 들 수 있는데, 그이들의 종교사회학적 라이프스타일은 대개 이러하다. 그들은 산기도원을 주요 무대로 활동했던 대중신비주의의 신봉자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산기도원이 속속 폐쇄되면서 귀속할 대안적 공동체를 찾아 도심의 유목민이 되어 이곳저곳을 떠돈다. 한데 그들은 곳곳에서 심지어 집에서조차 환대받지 못했다. 그럴수록 그들은 점점 열정적으로 거리의 전도자가 되었고 또 극우이데올로기의 투사가 되었다.
한편 그들은 대개 노인들이지만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있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열광적인 신자였기에 태극기집회에서도 개신교적 퍼포먼스를 광적으로 수행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들은, 교회의 변두리에 있든 교회 밖으로 내몰렸든, 담임목사의 통제 밖의 신자다. 그리고 그들 다수는 극우주의적 친박단체에 속한 열혈 활동가다.
마지막 네 번째 범주로 개신교계 극우NGO 활동가들을 들 수 있다. 이런 단체들의 수가 몇 개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단체들은 최근 벌어진 수많은 ‘종교적 테러 행위들’과 깊은 관련이 있다. 불당이나 단군상을 훼손하는 행위처럼 말이다. 또 이들은 동성애나 이슬람, 종북 등을 반대하여 사이버테러를 감행하고 있다. 그리고 정치적 전선에서 각종 불법과 탈법을 자행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사회적 이슈가 될 법한 사건을 일으켜 세간의 주목을 받고자 경쟁하는데, 그러면 극우주의 혹은 극단주의적 목사들로부터 후원을 받을 수 있다. 극우성향의 교회와 극우NGO 간의 이러한 조합은 더 스팩터클한 종교적 테러를 기획하고 실행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이 된다.
이들 단체들에 대해서 주목할 것은 여기서 ‘증오의 정치’에 대한 신념으로 가득 찬 청년활동가들이 양성된다는 사실이다. 태극기집회의 젊은 참여자들, 특히 매우 적극적인 활동가들은 대개 이런 극우NGO 출신이다. 그리고 이들은 활동가로서 퇴장할 나이가 될 무렵 신학교에 입학하여 목사가 되는 과정을 이수하곤 한다. 그렇게 목사가 되면 극우적인 교회 사역자가 되거나 극우NGO의 지도자가 된다. 아무튼 이런 단체의 젊은 활동가들은 교회에 속해 있지만 주요 활동 무대는 그들이 속한 단체들이다.
이들 젊은 개신교계 극우NGO 활동가들은 태극기집회에서도 매우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태극기집회에 마땅히 있어야 할 법한 개신교 지도자들 중 다수가 보이지 않고 또 교회의 조직적인 동원이 부진했음에도, 집회 현장 곳곳에서 시위 지도부 혹은 시위에 참여한 일부 단체들이 조직적으로 기획한 것으로 보이는 몇몇 요소들이 사람들의 눈에 띄었는데 그 대부분은 극우NGO들에 의해 기획되고 그 단체 활동가들에 의해 주도된 것이다.
그중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의 하나는 태극기와 성조기, 그리고 이스라엘국기가 시위에 등장한 것이다. 뜬금없이 끼어든 것처럼 보이는 이 낯선 상징물들을 시위대는 놀랍게도 ‘익숙한’ 것처럼 활용하고 있었다. 한데 이런 익숙함의 배후를 묻다보면 모두 극우적 개신교의 흔적이 어렴풋이 혹은 뚜렷하게 나타난다.
우선 태극기는 남한 단독정부 성립부터 박정희 정권까지 내내 국가주의와 반공을 결합시키는 의미의 상징물로 활용되었다. 한국전쟁 말기 반공포로들의 시위, 박정희 시대 북한의 도발을 규탄하는 관제데모, 국기계양식과 하기식 풍경들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태극기의 상징성은 박근혜 정부에서 다시 부상한다. 거리 곳곳에 날마다 국기가 걸렸다. 이와 발맞추어 어느 기업은 고층사옥에 초대형의 태극기를 걸어놓았고 수많은 기업광고들에도 태극기가 자주 등장했다. 언제 어디서든 태극기를 맞닥뜨리게 하는 이러한 ‘애국 퍼레이드’를 통해 정부는 전 국민이 반공의 기치 아래 하나로 통합되기를 기대했다. 이때 태극기 담론은 국가주의적 규율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한편 극우적 상상력을 내포한 태극기의 또 다른 풍경은 개신교와 관련된다. 2004년 극우 개신교도들의 시청집회에서 성조기와 함께 태극기가 등장했다. 그 시기는 극우적 국가가 퇴장하고 민주적 국가가 등장했던 때다. 그리고 민주적 국가의 시민은 반미를 외쳤다. 미국과의 혈맹 관계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이때 개신교가 들고 나온 태극기는, 대한민국은 친미를 선택할 때만 제대로 된 국가일 수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것은 극우적 국가의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박정희의 국가주의는 종종 미국의 간섭주의와 충돌하였는데, 그때마다 균열이 생긴 관계를 복원하는 건 개신교였다. 개신교는 친미와 대한민국의 극우적 국가주의를 융합시키는 촉매제였다.
두 번째로, 성조기에 대해 살펴보자. 위에서 말했듯이 2004년 친미집회의 시위대는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를 들고 있었다. 이때 두 국기는 단순한 ‘혈맹’의 기호일까? 그런데 개신교에 있어서 두 국기는 동등한 위격이 아니다.
1903년 러・일전쟁이 일어났을 때 일본군의 진군루트에 있던 평안도의 양민은 한겨울 추위 속에서도 서둘러 피란길에 올랐다. 일본군의 폭력이 너무 극심했기 때문이다. 한데 인근에 교회가 세워져 있는 마을주민들은 너도나도 교회로 몰려갔다. 이곳 교회들은 미국 북장로회가 소유하고 있던 땅, 곧 미국의 보호 아래 있는 땅이기 때문이다. 하여 거기에는 성조기가 걸려 있었다. 누구도 그 땅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는 뜻이다. 그것은 일본군에게도 마찬가지다. 해서 이 무렵 교회의 기둥에 걸린 성조기는, 마치 〈출애굽기〉에서 양의 피가 발라진 집을 저승사자가 피해 간 것처럼, 일본군의 학살의 칼날을 피하게 했다.
이것은 성조기가 동맹 혹은 혈맹의 기호를 넘어서 구원자의 기호임을 시사한다. 실제로 개신교 지도자들은 우리를 일본으로부터 구원해준 나라, 공산세력으로부터 구원해준 나라, 굶주린 우리에게 빵과 옷을 나눠준 나라, 곧 구원자의 나라로 해석했다.
나아가 한국전쟁 이후, 특히 1960년대 이후 대중에게 미국상품(미제), 미국노래(팝송), 미국교회 등은 선망의 표상이었다. 마치 하느님나라에 가장 가까운 나라가 미국이라는 생각, 심지어 하느님은 영어로 기도할 때 더 잘 듣는다는 생각, 어쩌면 신은 미국인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 등이 어렴풋이 무의식 속에 자리잡았다. 마치 2004년 시청집회에서 대표기도를 했던 한 대형교회 목사가 10만의 군중 앞에서 영어로 기도한 것처럼. 그런 점에서 성조기는 태극기보다 우위에 있다는 무의식적 식민주의가, 성조기를 들고 나온 이들 모두는 아니겠지만, 적지 않은 이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마지막, 이스라엘국기는 영국과 미국의 강성의 극우개신교 집단들의 ‘선민주의’적 해석 전통과 연계된 것으로 보인다. 가령 19세기 영국의 한 극우주의자들이 주장한 ‘브리티시 이스라엘리즘’에 따르면 가나안의 이스라엘은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타락했지만 그중의 한 종족인 에브라임족의 일파가 영국으로 건너갔다. 바로 이들(영국의 백인)이 하느님이 선택한 ‘진짜 이스라엘’이라고 그들은 주장했다. 한편 20세기 초 미국의 극우파 개신교 목사인 조셉 와일드는 타락한 이스라엘 가운데 므낫세 족의 일부가 미국의 근본주의적 백인의 뿌리라고 주장했다. 하여 가나안의 거짓 이스라엘이 아닌 ‘진실한’ 이스라엘은 바로 자신들이라는 선민주의적이고 종족주의적인 담론이 일단의 극우주의 집단 사이에서 회자되었다.
흥미롭게도 최근 한국의 극우개신교 집단 사이에서 꽤 많이 떠도는 개념의 하나가 ‘선민’이다. 노아의 세 아들 중 셈의 계보, 혹은 셈의 4대손인 욕단의 계보, 혹은 이스라엘 12부족 중 단(Dan) 부족의 계보에서 한국인을 유추해내고 ‘진짜 이스라엘’, 곧 ‘진짜’ 선민은 바로 한국인이라는 논지를 펴곤 한다. 여기서, ‘가짜’ 이스라엘과 구별되는, ‘진짜’ 이스라엘을 논하는 맥락에서 이스라엘국기가 그 선민주의적 의미를 작동시킨다. 동시에 이것은 ‘진짜’ 이스라엘은 이슬람과 적대하는 존재라는 함의도 수반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이 자주 사용했던 용어인 ‘진실한’이라는 표현을 연상하게 된다. 박대통령은 통합을 얘기할 때조차 국민을 나누었고, 자기편에 있는 이들에게도 ‘가짜’와 ‘진실한’ 지지자를 나누었다. 이는 박근혜 메시아니즘과 태극기집회의 극우기독교적 상징이 선민주의 관점으로 서로 겹쳐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무튼 이렇게 태극기집회가 열리는 그 광장에는 극우적 기독교의 흔적이 깊게 새겨 있다. 그것은 태극기집회를 통해 형성되고 있는 한국사회의 극우주의적 기획의 중심에 개신교 극우세력이 있음을 의미한다.
극우주의, 다시 꿈틀거리다
개신교계 극우NGO들의 젊은 기획자와 선도적 행위자들, 그리고 노년의 개신교 ‘광신도’들은 태극기집회에서 목사들과 그들에 의해 동원된 신자들의 빈자리를 완벽히 매웠다. 그들에 의해 광장은 ‘극우+개신교’적인 냄새가 넘쳐났다. 목사와 동원된 교회 신자들이 주도했다면 개신교 색깔은 잘 드러났겠지만 극우주의의 기조가 이처럼 도드라지게 나타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2017년의 태극기집회 때에 처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얼마 전부터 점점 짙어지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극우성향의 개신교 목사들의 역할도 간과할 수 없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최근 극우주의 성향의 목사들, 특히 대형교회 담임목사들은 매우 기민하게 신자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즉 개신교 교세가 위축 국면으로 이행하고 있는 시기에, 교회 성장의 축은 이데올로기적으로 극우주의에서 중도보수로, 문화적으로 성장주의에서 웰빙주의로 옮겨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추동한 것은 ‘수평이동 신자들’이다. 자산수준, 교육수준, 문화수준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이들이 교회를 찾아 떠나거나 떠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떠돌이 신자들을 유취하기 위해 혹은 떠돌아다닐 위험성이 농후한 이들을 붙잡아두기 위해 목사들은 교회의 낡은 형식을 개혁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그러니 부패와 무능, 권력농단으로 탄핵당한 대통령을 지지하는 행보를 하려니 교인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물론 그렇다고 목사들이 할 수 있는 게 없지는 않다. 가장 흔하고 대표적인, 그리고 가장 쓸모 있는 것은 후원이다. 앞에서 목사들은 활동이나 발언에선 교인들의 눈치를 본다고 했지만, 교회재정의 운영에 있어서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범위가 매우 넓다. 특히 대형교회의 경우 거의 대부분 재정을 불투명성하게 운용하는 탓에 평교인들은 고사하고 대부분의 장로들조차 재무상황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여 대형교회 목사들은 재정을 활용하는 데 있어서는 놀라울 정도로 자유롭다. 그래서 극우성향 목사들의 경우 극우NGO 같은 기관들이나 태극기집회 같은 사건들을 금전적으로 후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교회에는 언론계, 학계, 법조계, 경제계, 정치계 등에서 활동하는 고위직 인사들이 많은데, 그들 중 극우성향의 인사들은 목사들과 함께 극우기관들과 활동가들에게 다양한 지원활동을 벌인다. 특히 이러한 활동들은 불법, 탈법적인 경우가 많은데 교회를 매개로 하면 활동의 불온성이 어느 정도 세탁되는 효과가 있다. 그런 점에서 극우성향의 목사가 있는 대형교회는 극우NGO나 활동가들에게 매우 강력한 후원조직이 된다.
이상과 같은 활동조직과 활동가, 후원조직, 그리고 그들을 엮고 있는 교회라는 법의 사각지대, 나는 최근 이러한 조합이 한국개신교 내에서 구축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러한 조합은 한국개신교 내에 최적화된 극우주의 세력을 형성하는 메커니즘으로 발전하고 있는 중에 있다. 더 나아가 태극기집회에서 보듯 극우주의적 개신교 조합은 한국사회의 극우주의 운동을 개신교가 주도하도록 하는 기반이 된다.
이 대목에서 대중신비주의 현상을 주목하게 된다. 비록 박근혜의 탄핵으로 대중신비주의적 메시아니즘은 크게 상처 입었지만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그렇기엔 대중의 절망과 고통의 늪은 깊고 넓다. 절박한 고통이 있는 곳에, 그리고 그것에서 벗어날 기회가 봉쇄된 그곳에 대중신비주의 신앙은 싹트고 자라나는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0년대 말 독일에서 절망적 고통에 시달리던 대중 사이에서 고통으로부터의 구원을 갈망하는 대중신비주의적 종교현상이 확산되었다. 그런데 인종주의적이고 선민주의적인 예언자들과 그 조직들이 여기에 증오의 영을 불어넣고 정치종교적 세력화에 성공함으로써 나치즘이라는 극우주의 체제가 탄생되었다.
어쩌면 이와 비슷하게 위에서 언급한 한국의 극우적 개신교의 활동가조직, 활동가, 후원조직이 끼어들어 신비주의에 빠진 대중에게,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신들의 신비한 힘에 의지하게 된 대중에게 이데올로기의 갑옷을 입히고 증오의 영을 불어 넣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대중신비주의는 공격적 극우주의로 태어나고 있다. 아니 아직은 맹아 단계다.
우리가 대중의 고통과 절망의 질곡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인 노력을 방기한다면, 또 극우적 개신교의 증오의 카르텔을 개혁하기 위한 교회 쇄신운동에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아직은 맹아 단계에 있는 극우주의는 얼마 가지 않아서 무시무시한 폭력의 체제로 성장할게 될지도 모른다. □
출처 | <당대비평> 편집주간 및 한백교회 담임목사를 지낸 김진호의 논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