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1월 2일 저녁 7시.. 어느 병원에서인가 사내아이로 태어났다.
내 머리속의 기억은 7살 이전, 단순 흑백사진같은 장면만 서너장 정도 머리속에 남아있다.
워낙 기억력이 좋지 못한 터여서 그런건지.. 어릴때의 기억이 잘 떠오르질 않는다.
엄마가 요리를 하시던 뒷모습, 어떤 여자 아이와 장난감 기차 레일 위에 놓여진 기차를 구경하던 기억,
한지붕 세가족처럼 살던 단칸방의 모습, 빨간 고무다라이에 담아놨던 물을 바가지로 퍼담아 손으로 펌프질을 해야
물이 나오던 그 옛날의 기억들이 고작이다.
그리고 내 머리속 기억의 시작은 7살이였던 내가 엄마와 작은 여관에 있었던 그 순간부터이다.
엄마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내 손을 잡고 집을 나와 버스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건너마을 여관에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잠깐의 기억이 끊겼을까. 아마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이후 기억은 아침이 되어있었고 큰이모가 나를 아버지에게
데려다주고 있었다.
그 후로 엄마는 볼수 없었다.
난 그렇게 엄마없이 아버지와 둘이 살게 되었다.
슬프진 않았다. 아니 엄마가 없다는게 슬프다는 걸 알지조차 못했다. 아버지가 잘해주셔서? 아니다.
난 학창시절을 보내는 동안 엄마의 부재를 느끼질 못했다.
뭐랄까. 친구들에겐 있지만 난 없는 것, 그렇다고 해서 내게 어떤 문제가 발생하지도 않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다른 친구들은 엄마가 있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냥 난 엄마가 없다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친구집에 놀러갔을 때 친구네 부모님들께서 내게 참 잘 대해주셨던 이유가
그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어릴때부터 무슨 일을 하든 그 책임은 내가 져야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때부터 아버지는 내게 말씀하셨다. '나는 내 인생, 너는 네 인생' 이라는 말을
항상 하셨다. 고로 잘되도 내 탓, 못되도 내 탓이라는 것이다.
나와 20살 차이나는 그 당시의 젊디 젊은 나이의 아버지는 내가 걸림돌이 되었으리라.
책임감을 키워주겠다는 명목으로, 방목이라 하지만 방치와 다를 바 없는 그런 유년 시절이였다.
하기사 무슨 일을 하든 내가 책임을 져야 하다보니 정말 책임감도 생기는 것 같긴 했다.
아버지께 감사하다 해야 하나. 지금 이 나이에도 책임감 하나는 자부할 정도니까.
그렇게 나는 기억도, 추억도 없는 어린 시절과 함께 엄마가 사라진 것처럼 7살의 어린 삶이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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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참 힘든 시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런 글이 무슨 도움이 될까 싶긴 한데요.. 왠지.. 이런 자취라도 남겨놓지 않으면
기억력이 좋지 못한 제가, 저에 대한 모든 걸 잊어버리게 될 것 같은, 그리고 잃어버리게 될 것 같은
불안함에 비롯되어 쓰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단 한분이라도 읽게 되신다면, 그래도 '이녀석이 왜 이런 글을 오유에 끄적거리나'
싶으실 것 같아 떠들어봅니다.
고민글에 적게 된 이유는 메모장같은 곳이라도 있으면 좋은데 못찾아서 ;;
네.. 지금 현 시점이 제 인생에서 고민이 되는 시점이라 그나마 여기가 맞는 것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한동안 제 기억속을 헤집으며 연대별로 하찮은 제 인생의 자서전을 써볼까 합니다.
야간일을 하면서 피곤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적어볼까 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몇번의 고비와 몇번의 기회가 찾아온다는데.. 몇번의 고비 중에서 이번 고비는 참 힘드네요.
나쁜 생각은 안하려고 합니다. 아니, 안하려고 노력중입니다.
그간의 눈팅으로 느낀 바로는 오유징어분들은 나쁜생각 하는 사람들 찾아내서 어떻게든 살려내시려 한다는 걸 느껴서 ㅎㅎㅎ
꽤나 귀찮아질꺼같아 그런 생각은 안하려고 노력중입니다 ㅎㅎ (농입니다 ^^;)
여튼 설명한다는 글이 프롤로그처럼 되어버렸네요. 매일매일 눈팅만 하는 오유.. 이제 자주 들러 일기쓰듯 써보려고 합니다.
모두들 행복하세요. 제 행복도 드릴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