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을 빼곡히 채운 사람들, 그들은 저마다 눈깔을 굴려 책을 씹어 삼키고 있다. 개중에는 좋은 학점, 좋은 직장을 위해 노력할 때보다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 저녁으로 무엇을 먹으면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지에 관심이 많은 학생도 있다. 왜냐, 우리는 살기 위해 먹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먹기 위해 살아가기 때문이다. . . 도서관 한켠을 차지하던 얼굴이 꼬질꼬질하고 수염이 거뭇거뭇한 한 청년이 벤치로 나와 주린 배를 부여잡는다. 꿈도 뭣도 없는, 가진 것이라고는 전역증 한 장 달랑 손에 쥔 빈털터리 복학생. 이런 처지에 공부가 다 무어냐. 담뱃갑에서 돛대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지핀다. 한숨 담긴 연기 따라 어릴 적 추억이 피어난다. 한때는 그에게도 성공하고자 했던 꿈이 있었다. 무엇이 성공인지도 몰랐던 어린 시절, 덕망 높고 훌륭한 은사님과 약속했던 것처럼 반드시 성공하기로. 그의 어린 시절에도 가난이라는 수식어는 항상 꼬리처럼 붙어 다녔다. 남편을 일찍이 떠나보내고 어머니께서 이른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허드렛일로 어린 자녀 둘을 키워내셨다. 겨우 마련한 몇 푼으로 뼈만 남은 족발 한쪽이라도 손에 쥐고 오시면 서로 먹겠다고 다투던 어린 오누이, 오빠 조금 더 먹이라며 동생을 나무라시던, 당신은 배를 곯아도 인자하게 웃으시던 어머니의 미소. . . 어머니가 일을 나가시면 오누이는 허기를 잊기 위해서라도 재밌게 놀아야 했다. 늘쌍하는 소꿉놀이 모래 위에 차려진 진수성찬...... 언제나 먹어 볼 수 있을지 모를 푸짐한 매운 족발이 눈앞에 아른거리자, 오빠는 군침을 삼켰다. 그리고 동생은 눈물을 훔쳤다. 잔뜩 야윈 동생, 뭐라도 먹을 것이 있었더라면......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엄마를 마중 가자며 동생을 달래고 일으켜 세운다. 작은 손에 더 작은 손을 쥔 채 무작정 길을 나선다. . . 걷다 보면 당연히 배는 더 주려온다. 주머니 속에는 오직 살구씨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소년은 무언가를 결심한다. . "너희 둘뿐이니?" . "네, 엄마가 먼저 가서 시켜먹고 있으랬어요. 매운 족발 하나 주세요." . 꼬질꼬질한 차림의 남매를 보고 사장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다. 옆 동네 이 씨 아주머니의 아들딸이 이곳까지 왜 왔을까 싶다가 대충 사정을 아는 사장은 어린 것들이 가여워 족발을 내어준다. 허겁지겁 족발을 집어먹는 아이들. 애처롭게, 그리고 흐뭇하게 바라보던 사장. 잠깐 한눈파는 사이 점원 하나가 낌새를 챈 듯 아이들에게 다가선다. 족발을 내려놓으며 눈빛이 흔들리는 아이들...... . "얘, 너 돈 있니?" . "네...... 있어요. 엄마가 줬어요." . "보여줘 봐. 너희처럼 하고 돈 안 내고 먹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래." . 크게 당황하며 안절부절못하는 아이들을 보자 점원은 확신했다. 아이들을 자리에서 일으켜 세우려는 찰나, 사장이 왔다. . . "내가 해결할 테니 자네는 족발 삶긴 것 좀 확인해봐." . 그리고는 놀란 아이들에게 엄한 사람인 양, 돈도 없이 먹으러 온 거냐 마음에도 없는 혼쭐을 낸다. 짐짓 쥐어박는 시늉을 하자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들. . "오늘 먹은 족발 값은 어떻게 할 거냐." . 잠시 간의 울먹임. 소년은 주머니에서 있던 살구씨를 꺼내 보인다. 떼가 낀 손바닥 위에 덩그러니 놓인 살구씨 하나. . "제가 지금은 돈이 없지만 커서 꼭 성공해서 아저씨한테 족발 값을 꼭꼭 열 배로 갚을게요. 그때까지 이 살구씨를 맡길게요. 저 정말 거짓말 안 해요 저한테 정말 소중한 살구씨에요. 아버지가 주셨던 마지막.. 살구에 있던 거에요. 돈이 생기면 꼭 살구씨를 찾아갈게요." . 애초에 돈을 받을 생각이 없었던 사장은 오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 "마저 먹거라. 아저씨가 살구씨를 정말 좋아해서 이번만 넘어가는 거야. 꼭꼭 이다음에 성공해서 되찾으러 오너라." . . 담배 연기가 아려서일까. 아니면 눈물 나게 맵던 족발 맛이 생각나서일까. 청년은 괜스레 눈물을 훔쳐낸다. 옛날 생각에 다시금 이를 악물고 "사장님 감사합니다!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를 외쳐본다. 어리둥절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연인들에,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서 도서관 한켠에 다시 몸을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