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같은 때, 장마중에 비 그치면 아침인지 저녁인지 잘 분간이 안 되는 그런 날 있잖아. 누군가 놀려줄라구 얘, 너 학교 안가니? 그러면 정신없이 책가방 들고 뛰쳐나갔다가 맥 풀려서 되돌아오지. 내게는 사춘기가 그런 것 같았어. 감기약 먹고 자다 깨다 하는 그런 나날.
막연하고 종잡을 수 없고 그러면서도 바라는 것들은 손에 잡히지 않아 언제나 충족되지 않는 미열의 나날. 나는 그녀가 해를 떠오르게 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던 말을 그제서야 실감했지만, 내가 그런 상대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나는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섰지만 그녀와 얘기할 때에는 가끔씩 가슴속이 뜨거워지곤 했다.
- 『개밥바라기별』, 황석영, p.212
사실 주인공 준이의 이야기 중에서 그렇게 대단한 성찰에 해당하는 부분은 아니지만..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부분에 크게 와닿는가 봅니다.
가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