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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의 어느날 아침의 똥과의 혈전
게시물ID : poop_138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멜옹
추천 : 8
조회수 : 1047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7/11/04 13: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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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회사 업무 때문에 평소 8시까지 출근하던걸 한시간 앞당겨서 7시까지 출근을 하게 되었다.
다섯시 반에 일어나서 씻고 밥먹고 6시에 출발하면 현장사무실에 6시 45분경에 도착하게 된다
보통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하고 세수하고 머리감고 밥먹고 배출하면 대략 30분 정도니 5시 반 기상이 마지노선이 되겠다
 
그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시계를 보니 5시 50분이다. 망했다.
5분만에 씻고 머리 감고 5분만에 밥먹고 옷입고 집을 나섰다
 
그래도 늦지 않았을거라는 안도감으로
출근거리 40km중 15km정도를 달려가던 중
집에 두고 와야할 것을 가지고 왔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 배아파.."
그렇다 난 집에 둬야 할 똥을 내 배에 저장한 상태로 출근중이었던 것이다.
 
난 일을 하기위해서 직장으로 가고 있는데 나의 직장은 지금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고 있었고
출근거리의 절반정도 간 상황이라 돌아가기도 그렇다고 돌파하기도 어려운데다가
달리는 도로의 80프로가 자동차 전용도로라 마땅히 해결할만한 곳도 생각나지 않았다
 
해결책을 끊임없이 갈구하던 중 가는길을 살짝 우회하면 하나로 마트가 있던게 생각이 났다
"그래 거기라면.." 마트까지 얼마남지 않은 거리를 달리며  난 나에게 부탁을 하고 있었다.
제발 잘 버텨다오 나의 문지기여
 
저 멀리 하나로 마트가 보이는 순간 난 문을 더 걸어잠그며 뱃속에서 날 압박하며 요동치는 난봉꾼들을 더 옥죄며 탈압박를 시도했다.
그들은 단 한번만 뚫어내면 되고
난 단 한번의 실수를 해서도 안된다.
 
난 이미 알고 있었다.
무사히 경기를 치르고 승리감에 취한 상상을 하는 순간 난 패배하게 된다는 것을..
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니라는거
누구나 다 공감할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다.
 
모퉁이를 돌아 하나로 마트 입구로 들어가면 최후의 결전을 치를 경기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
모퉁이를 돌아 입구를 보는 순간 굳게 내려진 셔터를 보며 좌절을 하게 되고 경기장 사정으로 결전을 치르지 못하게 된 나는 주변의 다른 경기장을 그제서야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야구로 치면 1점앞선 9회말 투아웃에 쓰리볼 노스트라잌 상황
축구로 치면 1점앞선 후반 45분에 페널티킥을 준 상황
난 급한 마음을 뒤로 하고 다시금 차분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며칠 지난이야기지만 지금도 잊을수 없는게 출퇴근할때 라디오를 듣는데 요즘 파업때문에 음악방송을 틀어주는 방송국이 있다
그 주파수를 맞추고 내 딸아이를 재우듯 내 속의 아이들에게 자장가를 불러주고 있었는데 정말 거짓말 같이 박신양버젼의 사랑해도 될까요가 나왔다
아름다운 가사와 따뜻한 멜로디로 나의 귀와 마음과 아이들을 위로해주겠지 라는 생각과 함께 노래의 첫마디가 시작되었다
 
"문이 열리네요~"
그렇게 문이 열리려 하고 있었다.
"그대가 들어오죠"
하지만 그대는 나가려 하고 있었다.
" 첫눈에 난 내 사랑인걸 알았죠"
이건 사랑이 아니라 고통 그 자체였다.
"내 앞에 다가와~"
오지마 오지말라고 나오지 말라고!
 
이쯤되니 노래는 더이상 들리지 않고 식은땀만 나오는 상황
그리고 내 배에서도 그 누군가가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어 "계세요?" 하려는 상황
 
뱃속이 싸늘하다..
포기하면 편해.. 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운전을 하는 이 자리에서 사태가 발생한다면 몇초간은 천국일테지만 그 이후의 모든 시간은 지옥일테지..
머릿속으로 지금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가동한채 눈으론 최후의 결전장을 스캔하고 있다.
 
아파트가 보인다.
그리고 그 앞에 상가건물이 보인다.
그래 너로 정했어 하며 차를 주차하고 시동을 끄고 문을 열면서 문쪽 수납함에 있는 주유소에서 받은 휴지를 덥썩 잡았다
 
바사삭
생각보다 얇다.
아니 비닐의 촉감은 그렇다 치더라도 뭔가 위화감이 든다
두께감이랄까 푹신함이랄까
그런 느낌은 오간데 없고
차가운 비닐의 마찰음과 반대쪽으로 전해지는 내 손가락들의 따뜻한 기운
그래 따뜻했다
내 손가락도 따뜻했고
내 배도 따뜻해져 왔다
 
머리는 끊임없이 마인드컨트롤을 시도하고 내 손은 끊임없이 차 안을 수색해나갔다
또 다른 휴지가 잡힌다
무..물티슈
주유소에서 받아서 그냥 쑤셔둔 3장가량 들어있는 물티슈가 찬란한 두께감을 뽐내며 내 따뜻한 손끝에 찬 기운을 뿜어내어 주었다.
 
출발이다
문을 열고 재빨리 차를 나섰다
그리고 빠르게 천천히 상가를 향해 다가갔다
 
출발이다
마음속의 이 외침은 나의 행동에만 영향를 미친건 아니었다.
내 뱃속의 적군에게도 강한 의지를 심어주게 되었다.
약 50여보를 걸어가야만 목표지점에 도달 할 수 있을거 같았다.
문제는 그 건물안에 화장실이 있는가
그리고 그 화장실의 문이 잠겨있진 않은가 였다.
 
한발자국씩 줄어들때마다
머릿속엔 조금만 더 이제 다왔으니 조금만 더를 새기고
난 배를 쓰다듬으며 그들을 달래려 했다.
 
하지만 그 쓰다듬음이 그들을 자극했나보다
동력이 없어서 약간의 휴식을 가진 그들이었던것인지 나의 손바닥 온기를 느끼자마자 갑자기 전투적으로 변했다
 
최후의 혈전
다행히 화장실도 있고 문도 열려있고 휴지도 걸려있다.
걸려있는 휴지까지 보고 안도를 하는 상황과 반쯤 내려간 나의 옷들
그리고 착석하는 순간
밖에서 수만마리의 비둘기들이 날라가는거 같다
푸다다다다닥
 
알수없는 알싸함으로 하늘높이 비상하는 수만마리의 비둘기들에게 인사를 하고나니 머릿속에 급격하게 퍼져나가는 엔도르핀으로 난 점차 극락의 세계로 인도되었다
짧은 시간이었겠지만 억겁과도 같은 혈투를 벌이고, 힘겨웠지만 어렵게 승리를 따낸 나에게 너무나도 감사해 하며 남아있는 비둘기들을 떠나보내기 위해 휴지를 뽑아드는 순간 어느새 저 하늘 높이 날아간 수만마리의 비둘기들은 한데 뭉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알고보면 인간의 조상은 원숭이가 아니라 코끼리가 아닐까?
 
그렇게 수만마리의 비둘기는 한마리의 코끼리가 되어 내 눈앞에서 사라져갔다.
 
2017년의 어느날
날 미치도록 승리하고 싶게 만든 그날
결국 난 승리하였고 앞으로도 승리만 할 것이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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