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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복원에 관해서....(4)完
게시물ID : history_2900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육지에사는어부
추천 : 13
조회수 : 1002회
댓글수 : 17개
등록시간 : 2017/10/24 21:52:18
이글이 마지막이 되겠네요.
 
강진에 있는 전라 병영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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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병탄되면서 훼철되어 내부엔 민가가 들어서고 했다가 현재는 내부를 걷어내고 훼철되기 전의 상황으로 복원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2년전 방문당시의 모습입니다.
2018년도까지니까 올해중으로 완공이 되거나 늦어도 조만간 완공 소식이 들리겠죠. 강진군 병영면에 있고, 지명의 유래도 병영성에서 왔습니다. 하멜이 살던 곳도 이곳 병영성입니다. 성 주변으로 민가의 담들이 당시의 모습그대로 였습니다. 하멜관련 이야기도 많이 남아 있고요. 주변에 보면 군단위의 면소재지에서 흔히 보이는 쇄락의 모습이 많이 보였습니다. 빈상점이나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주변이 전부 농토이고 왕래가 드믄곳입니다. 인구유출이 많은 곳이죠.
 
방문당시에도 관광객은 저희 가족뿐이었고, 그나마도 8월 땡볕이라 저혼자만 둘러보았습니다. 바로 옆 하멜전시관에서 에어컨 바람 쐬시느라 구경을 가자고 하여도 고개를 절래절래....쩝
아무것도 없으니 복원을 한다해도 방해 받지 않고 되겠지만 자칫 잘 꾸며진 세트장만 되는건 아닌지....
 
부여로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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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입니다. 현재 복원공사가 한창입니다. 능산리고분군 바로 옆을 지나갑니다. 산진에 보이는 너른 복원지는 능산리사지 자리로 유명한 백제 금동대향로가 발견된 곳이기도 합니다. 왕릉의 수호사찰겸 제를 올리는 목적으로 조성된 사찰로 추정됩니다. 공주, 부여, 익산에 산재되어 있는 백제 유적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복원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국내(남한)에서 드믈게 장성의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수도 사비를 방어하는 마지막 방어선이죠. 부여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길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백제가 멸망한지 1400년이나 되어 그동안 소실된 것들이 많으나 구릉지에 위치한 장성은 아직 흔적이 남아 있던 모양입니다. 남단인 염창리에서는 흔적을 찾지 못했습니다만 북단인 쌍북리에는 청산성이라고 조선시대에도 사용되던 산성터가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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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의 수도였던 관북리유적내에 위치한 부여 동헌입니다. 조선시대 건물이죠. 백제의 건축물이 있던자리에 조선시대에 다시 만든 관청입니다. 부여하면 백제로 바로 연상되기에 조선시대의 건물은 중요도가 떨어지는지 방문객이 적었습니다. 부여를 찾은건 부여 동헌이 목적이 아니라 부소산성을 비롯한 백제 유적이 주 이유겠죠.
 
수원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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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한가운데 있음에도 내외부로 자연스러웠습니다. 원형이 많이 보존된 느낌이고, 상당히 잘 만들어진 성의 느낌....국내 성들에서 느끼지 못한 이국적인 느낌도 많이 받았습니다. 건축기법이 세련됬다고 할까요. 마치 서양의 성들을 보는 느낌이 많았습니다. 산책로겸 성곽길은 모두 막힘이 없었고, 왕래하는 사람들도 괭장히 많았고요.
1월의 을씨년스러운 날씨임에도 주변 상가나 왕래하는 이들에게선 활기가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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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의 일부를 뚫어 차도가 이어져 있지만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구가 조화로운 공간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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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 만들어진 당시 각 성문 앞에 서던 장들이 현대에도 시장으로 존속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옷차림과 건물들의 외형만 달라졌을뿐 200년전의 모습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사는 방법엔 변화가 없었습니다. 성내에도 저자거리에 해당하는 식당가가 존재하고 사람들이 다닙니다.
 
통닭을 시켜먹으면서 맛이 있던 없던 옛기분도 나고 그랬습니다. 200년전 아무개도 성 앞의 시장을 지나 팔달문으로 성내로 들어가 두리번거리다 주막에 들러 장국 한그릇에 탁주 한사발 하고 행궁앞을 지나 장안문으로 나가 의왕 안양을 거쳐 서울로 올라갔을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결론을 짓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문화재 복원은 그안에 사람이 살지 않는 전시관이 아니라 과거에도 현재에도 사람들이 살아가고 또 앞으로도 살아갈 공간으로서의 역활에 충실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잘꾸며 놓고 보기좋게 만드는것도 좋겠지만 복원물을 보면서 과거의 어느한 시점을 상상하게 만들고, 역사적 이야기가 현재 나의 이야기로 이어지게 해주는 것이 더 중요한것이 아닐까요.
 
원형그대로의 복원에 치중한 나머지 사는사람이 불편하거나 방문객에게 이질감을 준다면 누가 찾아오겠습니까. 또한 이미 없어진것들을 현재의 가치있는것을 없애가면서 복원한들 그것이 진정 옛것과 같은것일까요.
유럽의 300년전 건물을 지금도 시청으로 사용한다던지, 1000년전 만들어진 다리를 지금도 사람들이 이용한다던지 하는 모습이 그 문화재가 갖고있는 원래의 모습아닐까요?
 
전주의 한옥마을이 성공한 이유는 과거의 모습을한 현재가 녹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수원화성 방문 당시 화서문 옆 편의점에서 커피한잔을 놓고 한참을 앉아서 바라봤습니다. 조선시대 성곽과 커피가 의외로 잘 어울리더라고요. 추워서 그랬는지 천원짜리 커피맛도 참 좋았고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사찰을 복원해 둔들 사람냄새가 없다면 그저 전시물일뿐 아닐까요. 익산의 미륵사지에 가서 본 석탑들이 어색한것은 미륵사라는 대사찰의 수많은 승려들과 그 사찰을 방문하는 인파가 없기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경주의 불국사에 가서 본 다보탑과 석가탑은 미륵사의 석탑보다 규모는 작아도 현재에도 수많은 인파와 그 사찰의 승려들이 있기에 아름다움을 더욱 발휘하는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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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의 객사인 금성관입니다. 방문당시 사람들이 객사마루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마치 조선시대 관리가 된듯한 기분을 느끼며 어디서 가야금연주가 들리는듯한 착각에 빠져 한동안 멍하게 있던 기억이 있네요. 다만 나주가 대도시가 아니어서인지 금성관 앞의 곰탕집들은 문전성시를 이뤘어도 이곳은 좀 한산한 감이 있었스니다.
 
전주객사인 풍패지관은 번화가 한복판에 있어 내방객들이 많았습니다. 쇼핑하다 쉬어가기도 하고, 그냥 쉬기에도 좋았고요.
 
과거에 사용되던 건물이 현재에도 시민들의 휴식처로 혹은 생활공간속으로 들어가 있다면 그것이 더 아름답지 않나요?
 
다니다 보면 보존의 목적으로 입장자체를 막고 먼발치에서만 구경하게 하는곳이 많습니다. 액자속의 그림처럼....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전공자가 아니고 그냥 돌아다니는것이 좋아 두루 유람하고 다니는 입장에서의 글입니다. 전문가분들의 고견을 청합니다. 아울러 비전문가분들의 의견도 듣고자 합니다. 각자의 생각을 알려주셔요.
 
 
 
 
 
 
 
마지막으로 병자호란의 패배로 남한산성에서 항복하고 송파나루(현 석촌호수)에 나와 청나라에 항복하고 치욕의 역사를 기록해둔 삼전도비 사진을 올리면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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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었던 강가 범람원이었던 이곳은 현재 국내 최고높이의 어떤 건물앞이 되었습니다. 나루터는 오간데 없고 도심 한복판이 되었고, 더이상 패전의 역사를 기억하는 이는 드믈어졌지만 400여년전 우리는 굴복했고, 치욕을 맛봐야만 했습니다. 사람들은 노예로 끌려갔고, 국토는 유린당했으며, 왕은 무릎꿇고 빌어야만 했습니다.
 
조잡한 생각을 몇자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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