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아파트에 살 때 일이예요.
제 아파트는 1층이고, 우리집 정면쪽으로 집은 없고 나무들이 있었어요. 집 앞에 뒷길 같은 게 있는데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가끔 거실 블라인드를 걷고 바깥 풍경을 즐기기도 했어요.
그 날 오후에 블라인드를 걷고 바깥 구경하면서 거실에서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거실 유리문에 아이가 나타났어요. 5-6살 되보이는 남자앤데 아래위로 빨간 내복 같은 거 입고 있었고, 인도 파키스탄 계로 보였어요. (여기는 미국 서버브예요). 이상한 일이라서 좀 놀랐는데 어쨌든 애가 유리문에 붙어 있으니 문을 열어주었어요. 애가 우리 집 거실로 쏙 들어오더군요. 창 밖을 보니 어른은 아무도 없고요.
애가 저보고 "마미, 마미" 그러더군요.
전 무슨 일인가 많이 당황스러웠는데, 그래도 애한테는 침착하게 말했어요.
"엄마는 어딨어? 나랑 엄마 찾으러 갈까?"
그러니까 애가 고개를 끄덕여서 일단 전화기를 챙기고 같이 베란다 문을 통해 나갔어요.
그 때는 애 엄마가 여기 근처에 있겠지하고 생각했어요.
나가면서도 아직 어떻해야 할 지 모르겠는데, 아이가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후문 쪽으로 가더군요. 그 쪽으로 가면 숲인데. 그리로 가면 애 엄마랑 오히려 길이 어긋날 거 같고, 서로 길잃어 버리기 좋을 거 같았어요.
"여기 아파트에 살아? 어디 살아? 아파트는 이쪽이야. 너희 집 어딘지 알아?" 그러니까 애가 갸웃하더니, 집을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방향을 틀어서 단지 안쪽으로 들어가더군요.
애를 따라가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어요.
'엄마랑 놀이터에 왔다가 이 쪽으로 온건가? 엄마는 놀이터에 있나? 여기 근처에 있나?'
몇 미터 걸어서 넓은 데로 나왔는데 여전히 엄마는 안보여요.
그래서 얘가 미아라고 생각이 되었죠.
'경찰에 전화해야 하나? 전화기 챙겨와서 다행이네. 아니, 관리실에 가는게 낫나? 관리실에선 얘 가족을 알 거 같은데?"
그런데 쪼그만 애가 얼마나 잽싼지 금방 앞서가더군요. 일단 애를 놓치면 안 되겠다 싶어서 얼른 애를 따라갔어요.
애를 거의 따라 잡았는데, 저쪽 아파트 문에서 어느 여자가 뛰쳐나와서는 두리번 거리더군요.
아이가 "마미!" 그러면서 뛰어갔어요.
엄마인 것 같은데, 확인하러 저도 따라 갔어요.
아이 엄마한테 "내가 저 옆에 옆에 동에, 후문 옆에 사는데, 아이가 우리집 앞에까지 왔고 후문으로 나가려고 했다"고 했더니 깜짝 놀라더군요.
아이 엄마 말이, "아이가 자기 방에서 낮잠 자고 있었는데, 조금 전에 방문을 열어보니 아이가 없었고,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 밖에 나간거 같아서 찾으러 나왔다" 그러더군요.
그 아이는 낮잠 자다가 깼는데 엄마가 옆에 없어서 엄마를 찾으려고 잠결에 문 열고, 현관 문 열고, 3층에서 계단을 내려와서 아파트 두 동을 지나서, 후문까지 간 거예요. 그러고 보니 처음봤을때 잠이 덜 깬듯한 모습이었어요.
정말 위험할 수도 있었던 것이, 만약 얘가 후문도 지나서 나갔더라면, 거긴 아주 큰 숲인데 정말 찾기 힘들었을 거예요.
몇 년 지난 일인데도, 큰 사고가 없었는데도, 생각나면 가슴 철렁하고 잊혀지지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