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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플러터샤이 인 라스페가수스 -1-
게시물ID : pony_934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베타초콜릿
추천 : 2
조회수 : 70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0/22 22:13:55
오랜만이네요. 새로운 장편 팬픽을 써왔습니다. 이번에는 완결 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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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올인."

플러터샤이가 나지막히 말했다. 조용한 그녀의 목소리와는 반대로 테이블 주변의 포니들이 환호성을 질러댔다. 뜨거운 분위기는 도저히 식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성난 파도처럼 장안을 뒤덮었다. 태풍이 주위를 빨아들이듯 포니들을 끌어들였다. 오로지 테이블에 앉은 두 포니만이 태풍의 중심처럼 고요했다.

플러터샤이는 상대의 반응을 확인했다. 관심이 없는 척 무표정을 일관했지만 얼굴 근육이 움직이는것까지 면밀히 관찰했다. 더불어 그의 앞에 놓여있는 뒤집어져있는 패도 슬쩍 내려다 보았다. 하지만 상대도 쉽사리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머릿속에선 어떤 생각이 오가는진 몰라도 겉모습만은 오늘 점심 메뉴가 뭘까 가볍게 고민하는듯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상대의 감정을 읽다 자신의 감정을 들키게 될까 다시 아래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상대는 중년의 수컷 포니였다. 근처에서도 꽤 이름을 날리고 있는 포커 플레이어였다. 6마리로 시작하던 테이블은 어느 새 두 포니 만이 남게 되었고 두 포니의 대결은 쉽사리 승부가 나지 않았다. 칩은 플러터샤이가 더 우세하다곤 했지만 엎치락 뒤치락 하며 판돈이 점점 올라가는 통에 언제 뒤집어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녀에겐 지금 이 승부가 갈림길과도 같았다.

중년의 포니는 생각이 길어지는듯 쉽사리 결정하지 못했다. 중앙에 깔려있는 네장의 카드를 유심히 보다 다시 자신의 패 두 장을 슬쩍 살펴보다 중앙에 놓인 칩들로 시선을 옮겼다. 이미 커져버린 판이었다. 죽기엔 손실이 크고 따라가기엔 고민이 많이 필요했다.

플러터샤이는 오열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아냈다. 길었던 그간의 고생이 오늘 드디어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3개월이다. 3개월간의 시간들이 그녀의 시야에 보이는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견뎌왔을까 자기 자신도 감탄할 지경이었다. 그 때로 돌아가 다시 하라고 한다면 할 수 있을까. 그녀는 단호히 불가능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녀가 이제까지 무슨 짓을 해왔는지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대답이었다. 무슨 일을 겪을지 몰랐기 때문에 가능했던것 같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려왔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부가 아니었다. 그저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 뿐이었다. 오늘 목표액을 채운다면 망설임 없이 이곳을 떠날 수 있었다.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만 한다면 이곳에서 지낸 시간들은 그저 어린 시절 꾸었던 악몽처럼 희미한 기억속으로 보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따라와. 따라오라고.

그녀가 마음속으로 맹렬하게 외쳤다. 주위 포니들의 환호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필사적으로 외치고 있었다. 

플러터샤이는 승리를 장담할 수 있었다. 그녀가 천재적인 도박 능력을 가져서는 아니었다. 그녀는 생전 도박이라곤 해본적도 없는 초짜였다. 불과 몇달전만 해도 도박의 룰조차 몰랐다. 아마 아무것도 없는 그녀가 도박판에 뛰어들었다면 이미 탈탈 털려 맨몸으로 거리에 내던졌을 것이다. 이미 그랬던 적도 있었고. 하지만 그녀에겐 마법이 있었다. 마법을 가진 유니콘은 카지노 출입에서 봉쇄당한다. 하지만 마법을 가지지도 않은 페가수스인 그녀는 가지고 있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이곳에서 그녀가 믿고 있는것은 오로지 그것 뿐이었다. 잘난 것 없는 그녀를 여기까지 오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다.

그녀는 화끈거리는 눈을 발굽으로 비볐다. 이글거리는 태양과 눈싸움을 한 느낌이었다. 환한 빛 아래에 몇 시간을 앉아서인지 눈을 감고 눈을 아무리 비벼도 나아지질 않았다. 시야도 조금 흐릿해진 기분이었다. 그녀가 발굽으로 미간을 문지르다 목소리가 들렸다.

"콜."

맞은편에서 짧고 투박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녀는 단박에 눈을 떴다. 자신이 들었던 말이 환청인지 확인하려고. 중년의 포니는 자신의 남은 칩을 모두 중앙으로 밀어넣었다. 환호성은 더욱 더 뜨거워졌다. 태풍이 점점 커져 겉잡을 수 없이 번지는 것 같았다. 주변이 아무리 사나워도 그녀는 휩쓸리지 않았다. 그녀에겐 언제나 안전한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있었다.

플러터샤이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마침내. 온몸의 피가 가속하기 시작했다. 귀 뒤에서 펄떡대는 동맥의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주변은 더 시끌거렸지만 그녀는 오히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것만 같았다. 그녀는 끝까지 무표정을 일관하려 했지만 퍼져나오는 미소를 막을 순 없었다. 잘못했으면 소리도 지를 뻔 했다.

"꽤나 자신 있는 패 인가 보네요, 아가씨."

중년의 포니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하지만 입꼬리만 조금 올라갈 뿐 눈은 웃지 않았다. 초조해 보였다.

딜러가 플러터샤이에게 눈짓을 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패를 뒤집었다. 문양이 같은 7과 8. 패를 본 중년 포니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일그러졌다. 

그녀는 그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두 장의 5로는 이길 확률이 굉장히 희박하다는 계산이 바로 머릿속에 들어올 테니까.

중년 포니가 자신의 패를 뒤집었다. 두 장의 5였다. 역시나 그녀가 게임 시작부터 보고 있던 그 카드들이었다. 가운데 깔린 커뮤니티 카드는 순서대로 5, 7, 8, 7 이었다. 서로가 풀하우스지만 플러터샤이 쪽이 더 높은 패였다. 아직 한장의 카드가 남은 상태였지만 중년 포니가 이길 카드는 5 단 한장 뿐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포카드로 상대의 승리였다. 그 외의 모든 카드는 전부 플러터샤이의 승리다. 남은 44장의 카드 중 단 한장만이 나와야 그녀가 지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승리를 확정 짓고 있었다. 상대는 패배를 시인하고 있었다. 그녀는 주변을 보다 관중에 섞여있는 하얀색 갈기를 한 유니콘과 눈이 맞았다. 플러터샤이는 그녀를 향해 슬쩍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녀도 플러터샤이를 의식했는지 눈을 마주치며 미소로 응답해주었다. 미소가 옅게 떨리는 것으로 보아 아직 불안감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거의 이긴거나 다름없으니까. 그녀가 눈으로 말했다. 워낙 큰 돈이 걸려있으니 그럴만도 했다. 하지만 플러터샤이는 희박한 확률로 잃을지도 모르는 돈보다 확실한 확률로 얻을 돈 밖에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 밤이 마지막이다. 이미 그녀의 마음은 포니빌로 가는 기차에 타고 있는 듯 했다.

포니들의 환호성이 폭발했다. 정말로 폭탄이라도 터진것 같이 귀가 얼얼해 그녀는 양쪽귀를 접었다. 결과가 나온듯 했다.

플러터샤이는 문득 흰 갈기의 유니콘을 다시 봤다. 열광하는 포니들 사이에 유일하게 그녀만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플러터샤이가 보고 있단것도 알지 못하고 테이블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플러터샤이는 뭔가 잘못됐다는걸 직감했다. 온 몸에 기분 나쁜 소름이 돋았다. 그 직감이 너무나도 황당하고 바보같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환호성과 박수 갈채가 이어질수록 위화감이 번졌다. 이미 승리가 다름없던 그녀가 이겼다고 이렇게나 폭발적인 반응이 나올까? 주변의 상황들이 그녀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갑자기 태풍에 휘말려버리는듯 했다. 망망대해에서 발버둥조차 치지 못할 정도로 성난 파도가 자신에게 휘몰아치고 있는것 같았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테이블 쪽을 바라봤다. 4장의 카드 오른쪽에 마지막으로 깔린 카드를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스페이드 5였다.












1.

플러터샤이는 그녀의 친구들과 라스 페가수스로 여행을 왔다. 도착하고 나서부터 하루종일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트와일라잇이 완벽한 여행 계획을 세웠다며 리스트를 든 채 앞장서며 나아갔다. 나름대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여행 계획이었다. 래러티와 스파이크를 위한 보석 전시회 방문, 레인보우 대쉬를 위한 그랜드 캐니언 관광, 애플잭을 위한 로데오 공연 관람, 핑키 파이를 위한 유명 케이크 가게에서 식사, 플러터샤이를 위한 동물원 관람, 마무리로 밤에 도시에서 주관하는 불꽃놀이까지 알차게 구성되어 있었다. 다만 흠이 있다면 일정이 너무 빡빡했다는 것이다. 늦은 저녁 때 쯤 되어서야 그들은 숙소로 돌아오게 되었고 포니들은 녹초처럼 침대위에 축 늘어졌다.

"트와일라잇, 다음 부턴 쉬는 시간도 꼭 넣어줘. 하루 종일 걸어서 발굽이 퉁퉁 분거같아."

래러티가 침대에 누워 발굽으로 이마를 대고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 무섭게 스파이크가 그녀 옆으로 달려가 발굽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고마워, 스파이키."

래러티가 말하자 스파이크는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미안. 아무래도 스케줄에 맞게 모든 일정을 다 소화하려면 이 방법 밖에 없었어."

트와일라잇이 리스트에 호텔 도착이라는 칸을 체크하며 말했다.

"아냐. 그래도 굉장히 재밌었어. 오랜만에 다같이 여행해서 정말 좋았어. 이퀘스트리아를 구하지 않아도 됐고."

래러티의 말에 애플잭이 피식 웃었다.

"그러고보니 아까 올라오는 길에 여기 스파가 있다는 말을 들은것 같은데."

"스파라고?!"

애플잭의 말에 래러티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덕분에 발을 주무르던 스파이크가 침대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잘 됐네! 그럼 난 스파에 갈래! 가서 목욕도 하고 사우나도 하고 팩도 좀 해야겠어."

그녀는 신이 나 침대 밑으로 펄쩍 뛰었다. 플러터샤이도 래러티 만큼 거창하게 받을 생각까진 아니었지만 몸을 좀 씻고 싶었다. 그녀도 래러티를 따라나갈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그럼 난 핑키랑 거기 좀 갔다올게."

대쉬와 핑키는 어느 새 나란히 문에 서 있었다. 방안의 포니들이 모두 어리둥절한 얼굴로 대쉬를 쳐다봤다.

"어딜?

트와일라잇이 말했다.

"카지노 말야!"

핑키가 폴짝 뛰며 소리쳤다. 포니들은 더더욱 영문을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여기 호텔 1층에 카지노가 있다고 해서 말야. 핑키가 아까 가자고 해서 한번 가보려고. 어때? 너희들도 갈래?"

대쉬가 포니들에게 말했다. 포니들은 모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서로가 눈치를 보며 쉽사리 말을 꺼내지 않았다. 트와일라잇이 머리를 긁적였다.

"있지, 대쉬. 사실 카지노는 수학적으로 굉장히 불합리한 행동이야. 네가 카지노를 이길 확률은 50퍼센트가 안돼. 그래서 확률적으로 하면 할수록 넌 무조건 돈을..."

"그래. 범생이 빼고. 애플잭 넌 어때?"

대쉬가 트와일라잇의 말을 끊고 애플잭을 가리키며 말했다. 트와일라잇은 빈정이 상했는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거기 너무 시끄러워 보이는데. 요란하고 번쩍번쩍한 공간은 딱 질색이라."

애플잭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애플잭도 빼고... 래러티 넌 안갈꺼지?"

대쉬는 별 기대는 안하는지 건성으로 물었다. 래러티는 갈기를 정리하는데 정신이 팔리다 반응했다.

"어? 어. 미안, 달링. 스파가 날 기다리고 있어서."

"난 가도 돼? 나도 가고 싶은데!"

스파이크가 공중에 팔을 흔들으며 말했다. 기대감에 찬 눈빛으로 대쉬를 올려다봤지만 트와일라잇이 옆에서 스파이크를 노려봤다.

"절대 안돼! 넌 아직 아기잖아! 그리고 다 컸다고 해도 도박은 절대로 못하게 할거야. 도박하면 집에서 쫓겨날 줄 알아!"

트와일라잇이 으름장을 놓자 스파이크는 슬며시 손을 내려놨다. 아쉬운듯 흘끗 대쉬를 보았지만 트와일라잇이 여전히 등대처럼 그를 내려다보고 있어 미련을 버렸다.

"플러터샤이, 넌 어때?"

마지막으로 대쉬가 플러터샤이에게 물었다. 플러터샤이는 흠칫 놀랐다.

"어? 난... 어..."

그녀는 우물쭈물 대답을 흐렸다. 솔직히 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카지노는 커녕 간단한 도박조차 해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도박이라고 하면 나쁘다는 이미지만 머릿속에 있었다. 누군가가 돈을 따면 누군가는 돈을 잃게된다. 엄연히 말하면 남의 돈을 빼앗는 곳이나 다름없었다. 돈을 잃은 포니는 어떤 기분일까. 절망적이고 허탈하고 어쩌면 돈을 딴 포니에게 분노를 느낄지도 모른다. 만약 플러터샤이가 그런 포니의 돈을 딴다면 눈앞에서 도둑질을 하는거나 다름없었다. 마음 편히 돈을 쓸 수도 없을 것이다. 차라리 래러티와 함께 스파에 가서 따듯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싶었다. 물에 잠기는 적당한 부유감을 느끼며 래러티와 잡담을 나누는 편이 훨씬 마음 편해보였다. 애초부터 그럴 계획이기도 했다.

"난 그냥 스파..."

"같이 가자 플러터샤이. 진짜 재밌을거야!"

핑키 파이가 어느새 그녀 앞에 다가오더니 양 볼을 발굽으로 모았다. 그녀는 핑키의 시선을 피했다. 핑키가 눈을 빛내고 부탁을 하면 거절 할 수가 없었다.

"어... 난..."

"스파는 포니빌에도 있잖아. 카지노는 여기에서만 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재미라고."

플러터샤이는 래러티를 흘끗 봤다. 그녀는 굳이 혼자 스파에 가도 상관이 없다는 눈치였다.

"알았어. 같이 가자."

그녀가 마지못해 말했다. 신이 난 핑키가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그럼 플러터샤이도 가는거지? 빨리 가자! 오늘 한탕 벌어야지!"

대쉬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금방이라도 뛰쳐나갈것처럼 가만히 있질 못했다. 핑키도 통통 뛰며 현관문으로 대쉬를 따라갔다. 플러터샤이는 침대에서 일어나 느릿한 걸음으로 그들을 따라갔다. 그녀는 수락하긴 했지만 딱히 기대하진 않았다. 게임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면 친구들이 하는 것을 구경 할 계획이었다. 괜히 쓸데없이 돈을 잃고 싶지도 않았고 다른 포니에게 돈을 따고 싶지도 않았다.

1층으로 내려 온 세 포니들은 접수원의 안내를 받아 카지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카지노에 가까워지자 소리가 점점 들렸다. 포니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종이 울리는 소리, 기계음들이 섞여 들렸다.

"빨리 가자. 핑키."

대쉬는 신이 났는지 앞장서서 날아갔다. 핑키도 그녀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플러터샤이도 그들을 따라갔다. 빨리 가고 싶은건 아니었지만 혹시나 혼자 떨어질까 두려웠다.

카지노에 들어서자 플러터샤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선 포니들이 바글바글했다. 포니빌 광장에서 행사를 할 때 모이는 인파보다 더 북적였다. 공간도 넓어 벽에 지도를 보여 줄 정도다. 입구에서도 어디가 끝인지 볼 수 없었다. 곳곳에는 테이블이나 기계들이 늘어서 있었다. 기계가 늘어진 곳에선 포니들이 앉아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고, 테이블이 있는곳은 테이블에 서너마리의 포니들이 앉아있고 테이블마다 정장을 입은 포니들이 한마리씩 보였다.

분위기도 그녀의 생각과는 달랐다. 화려하고 모든게 반짝거리고 세련되었다. 바닥은 깨끗하게 매끈거리고 도금이 돼있었다. 기둥에는 보석이 박혀있었다. 포니들의 기분도 대체적으로 신나보였다. 돈을 땄다고 좋아하는 포니는 있어도 돈을 잃었다고 절망하는 포니들은 없어보였다.

그녀의 생각과는 다르게 카지노는 포니들이 서로 돈을 걸고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카지노 직원들로 보이는 정장 차림의 포니들이 테이블마다 한 마리씩 배치되어 포니들과 게임을 하는것이다. 돈 역할을 하는 칩을 따서 카지노에 가져가면 그 만큼의 돈을 주는것이다. 그러니 돈을 잃어도 포니의 눈앞에서 돈을 빼앗는건 아니라는 것이다.

입구에 정장 차림의 몸집이 큰 수컷 포니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몇가지 간단한 확인 절차를 끝내고 통과시켰다. 그들이 지나간 통로 옆에는 통과대가 있었다.

"저기는 뭐야?"

플러터샤이가 대쉬에게 물었다.

"아, 저거? 저긴 유니콘 전용 통과대야. 유니콘은 마법으로 장난치면 안되니까 저기서 마법을 못쓰는 막을 씌우나봐. 이퀘스트리안 게임에서 쓰는거랑 같은 원리라는데 나도 잘은 몰라."

그들은 우선 교환소로 갔다. 게임을 하기 위해선 돈을 이곳에서 쓰는 칩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플러터샤이는 게임을 할 생각이 없었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포니들끼리 돈을 거는 게 아니라면 가볍게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여기는 최저 베팅이 1비츠야. 그래서 1비츠부터 칩으로 바꿀 수 있어. 플러터샤이 넌 쫄보니까 한 10비츠만 바꿔."

대쉬가 말했다. 그게 좋을거 같다고 플러터샤이가 대답했다. 그녀는 할 줄 아는 게임도 없고 돈을 딸 수 있을거란 생각은 안했다. 괜히 더 큰 돈 잃지 말고 적당히 즐기는게 안전했다.

플러터샤이는 노란색 칩 하나를 받았다. 가운데에 10이란 숫자가 써있고 아래에 작게 호텔의 이름이 써있었다. 테이블에 가서 딜러 포니에게 말하면 1비츠 짜리로 바꿔줄거라고했다. 칩은 총 5종류가 있다고 한다. 1비츠 짜리는 흰색 10비츠는 노란색 100비츠는 빨간색 1000비츠는 초록색 10000비츠는 보라색 이었다. 플러터샤이는 칩을 빤히 봤다. 어쩐지 이렇게 보니 전혀 돈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걸 잃는다고 해도 돈을 잃었다는 느낌은 전혀 들것같지 않았다.

플러터샤이는 칩을 안장 가방에 넣었다. 그 틈에 핑키와 대쉬가 칩을 받았다. 핑키는 초록색 칩 2개를, 대쉬는 3개를 받았다. 플러터샤이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녀는 자기가 색깔을 착각했나 다시 봤지만 칩에는 1000이라고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대, 대쉬. 대체 그게 얼마야. 괜찮겠어...?"

그녀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그녀가 고심해서 바꾼 노란색 칩보다 무려 100배의 가치가 있는 물건들이었다. 그들의 발굽에 든 칩의 가치를 생각하면 저절로 몸이 덜덜 떨렸다. 

"야, 걱정마. 우린 이 돈을 몇배로 불려서 올거니까."

대쉬가 대수롭지 않다는듯 칩들을 튕겼다. 플러터샤이는 그녀의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3000비츠 가치의 칩은 가지고 다니는것도 조마조마 할 것 같다.

"그럼 뭐 부터 할까, 핑키."

"룰렛! 난 돌아가는걸 보는게 너무 좋아!"

"좋아. 가자."

대쉬가 앞장 서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핑키는 그녀의 뒤를, 플러터샤이는 핑키의 뒤를 쫓아갔다. 그들이 간 테이블에선 룰렛이 한창이었다.

플러터샤이는 우선 포니들이 하는것을 지켜봤다. 테이블엔 숫자들이 적혀있는 커다란 판이 있었다. 테이블에 앉은 포니들은 각자 칩을 들더니 숫자판 위로 칩을 마구잡이로 올려놓기 시작했다. 숫자판 옆에는 돌아가는 룰렛이 있었다. 룰렛에도 숫자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딜러는 룰렛 안으로 작은 공을 굴렸다. 돌아가는 룰렛판과 반대 반향으로 작은공이 빠르게 주위를 훑어가며 돌아갔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딜러가 벨을 울렸다. 포니들이 더 이상 테이블에 칩을 올리는 것을 멈췄다. 아마 저게 신호인거 같았다.

테이블의 모든 포니들이 룰렛이 돌아가는것에 집중했다. 그녀도 공이 움직이는 것을 멍하니 지켜봤다. 공은 서서히 회전력을 잃더니 23이라고 적힌 빨간색 공간으로 들어갔다. 포니들이 제각각 반응을 보였다. 웃는 포니도 있었고 아쉬운듯 인상을 찡그리는 포니들도 있었다. 어떤 포니는 종이에다 23이라는 숫자를 적었다. 종이에는 숫자들이 빼곡하게 적혀있는걸 봐선 이제까지 나온 숫자들을 기록하는 것 같았다. 딜러는 테이블에 놓인 대부분의 칩들을 치우고 남은 칩들을 보더니 테이블에 쌓인 칩뭉치에서 칩을 꺼내 테이블에 얹어주었다. 그렇게 칩들을 얹어주자 두 포니가 각각 칩을 가져갔다.

여기까지가 게임의 한 사이클 같았다. 그 이후론 그녀가 본 광경을 반복했다. 대충 어떤 방식인지는 알것같았다. 룰렛에 나올 숫자를 예상해 칩을 걸고 맞추면 돈을 받는듯 했다. 하지만 그 외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숫자가 적힌 칸 가운데에 칩을 올리기도 했지만 칸과 칸 가운데 선에 올리기도 했고 네 칸이 모인 점 위에 올리기도 했고 숫자판 주변에 적힌 글자에 올려놓기도 했다. 어떻게 하는지 모르니 그녀는 그저 계속 지켜보기만 했다. 대쉬는 어느새 딜러에게 1000비츠 짜리 칩을 100비츠 짜리로 바꾸고 칩을 걸고 있었다.

"대쉬, 이거 어떻게 하는거야?"

플러터샤이가 귓속말로 그녀에게 물었다. 대쉬는 칩 올려놓기에 정신이 팔렸는지 그녀를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냥 숫자 맞추는거야."

대쉬의 설명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플러터샤이는 핑키에게 다가가 같은 질문을 했다.

"숫자는 총 0부터 36까지 있어. 그리고 숫자마다 색깔이 있는데 빨간색과 검은색이 반반씩 있어. 0은 색깔이 없지. 그리고 판에 칩을 걸 수 있는데 숫자 하나를 걸고 맞추면 35배, 두개를 걸고 맞추면 17배, 네개를 걸고 맞추면 8배를 받는거야. 그리고 주변에 있는 칸에는 확률에 따라 각각 2배 혹은 3배를 받는거고. 그리고 여러곳을 동시에 거는것도 가능해. 이해했지?"

핑키의 말이 너무 빨라 전부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간에 나올 만한 곳에 돈을 걸면 되는거였다. 핑키는 게임에는 관심이 없는것 같았다. 그녀는 돌아가는 룰렛판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공이 돌아가면 그녀의 눈도 공에 따라 돌아갔다. 오히려 게임을 하러 온게 아니라 룰렛판이 돌아가는 것을 보려고 온것 같았다.

그녀는 세네판 정도 더 지켜본 뒤에 어느 정도 감을 잡게 되었다. 숫자를 직접적으로 맞추는 것 보단 홀수, 짝수나 검정, 빨강쪽에 거는 편이 좋아보였다. 물론 그 만큼 얻는 배율도 적어지긴 했지만 그녀는 가진 돈이 적기 때문에 기회가 적었다. 희박한 확률로 큰 돈을 바라는것 보단 안전하게 하는것이 우선이었다.

플러터샤이는 빨강 쪽으로 10비츠를 걸었다. 대쉬는 여전히 하나만 걸려라 하는 식으로 온갖 숫자에 칩들을 흩뿌리고 있었다. 표정이 살짝 안좋은걸 보니 손실이 있는 모양이었다. 올리고 나니 심장이 쿵쿵 뛰었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빨간 칸 안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자신의 칩 하나가 초라해보였다. 이제 베팅은 끝나고 결과만을 나오길 기다렸다. 확률은 거의 반반이었다. 이긴다면 10비츠가 2배가 되고 진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게 되는것이다.

그녀는 옆 자리에 앉은 핑키에게 팔짱을 끼어 기댔다. 그녀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하는 도박이었다. 온몸으로 현실을 깨닫고 나니 버틸수가 없었다. 가만히 보고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감정이 솓구쳤다. 뭔가 엄청난 일탈을 저질른것 같은 죄책감과 한순간에 돈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그리고 미약한 기대감이 뒤섞였다. 칩을 걸고 하지만 저 칩은 진짜 돈과 같은 가치를 가졌다. 도저히 서있을 수 없을 정도로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칩을 거는 저 포니들이 대단해 보였다.

딜러가 공을 룰렛으로 돌렸다. 플러터샤이는 입술을 질끈 물었다. 공이 속도를 잃고 자리를 찾아가려 하자 눈을 질끈 감았다. 

"21 홀수 빨강."

딜러 포니가 말했다. 플러터샤이가 숨을 헉 하고 삼켰다. 온몸의 감각들이 그녀를 깨우는것 같았다. 갈기 끝부터 꼬리 끝까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것이 느껴졌다. 

"플러터샤이, 축하해! 맞췄어!"

핑키가 그녀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녀는 룰렛을 다시 확인했다. 쇠공은 빨간색 공간에 안착되어 있었다. 온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뭐라 말은 하고 싶은데 입이 제 기능을 하고 있지 않았다. 

딜러는 노란 칩 하나를 그녀가 걸었던 칩 옆에 놓아두었다. 그녀는 칩을 다시 가져왔다. 불과 1분도 안돼서 벌어진 일이었다. 하나였던 칩이 둘이 되서 돌아온 것이다. 그녀는 이 기분을 기쁨으로 표현해야 할 지 혼란스러웠다. 룰렛이 돌아가기 시작했을 때 아찔한 감정이 아직도 뇌리에 박히는 것 같았다. 자기가 고른 숫자가 맞았을 땐 그 아찔함이 짜릿함으로 폭발하는 것 같았다. 평소의 그녀의 생활에서 느낀 적 없는 감정이기에 몸이 적응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흥. 나도 빨강에 고를걸."

대쉬가 콧김을 뿜으며 말했다. 1000비츠 짜리 칩은 어느새 2개 밖에 남지 않았다. 몇 판 사이에 벌써 천 비츠나 잃은 것이다. 플러터샤이는 대쉬가 존경스러웠다. 자신은 10비츠 딴 것 만으로도 몸을 못 가눌 정도인데 천비츠를 잃은 대쉬가 오히려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 대담함이 토끼와 사자 정도 차이였다.

플러터샤이는 그 이후에도 빨강이나 검정 둘 중 하나만 골랐다. 두 번의 승리를 맛본 후 다시 세 번의 패배를 맛봤다. 세 번의 패배가 나온 이후로 그녀의 눈 앞이 깜깜해지는것 같았다. 그 동안 대쉬는 한 숫자가 대박이 터져 35배를 받았다. 원금 회복은 물론이고 1천비츠나 더 남았다. 핑키는 돌아가는 룰렛에만 정신이 팔려 한 게임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한두번 전진했지만 그 후 다시 그 만큼 후퇴를 했다. 결국 여러 게임이 지났지만 그녀의 수중에는 10비츠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플러터샤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룰렛 테이블에서 나왔다. 다른 곳에는 어떤 게임들이 있나 궁금해졌다. 생각만큼 무서운 곳이 아니란 생각이 들자 나들이를 나온 포니처럼 들뜨기 시작했다. 게임은 생각보다 여러가지가 있었다. 주사위를 이용한 게임도 있었고 카드를 사용하는 게임들도 있었다. 규칙은 모르지만 그녀는 우선 카드를 이용하는 테이블 중 하나에 앉았다. 그녀의 왼편에는 두 마리의 포니가 나란히 앉았다.

"베팅해주세요."

딜러 포니가 말했다. 그러자 플러터샤이의 옆에 있던 포니들이 칩을 들어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규칙은 몰랐지만 우선 다른 포니들이 하는대로 따라하면 되는것 같았다. 그녀는 10비츠 짜리 칩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딜러는 능숙하게 카드 뭉치에서 카드를 꺼내 한 장씩 나누어 주었다. 각각의 포니들은 자신의 자리 앞에 앞면으로 카드 두 장씩 받았고 딜러는 한장은 앞면, 한장은 뒷면인 채로 놓여져 있었다. 그녀의 카드는 3과 5였다.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진 전혀 몰랐다.

"힛 올 스테이."

딜러가 그녀를 보며 말했다. 그녀는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뭔가를 해야 하는건가? 룰렛처럼 그냥 걸기만 하고 가만히 지켜보는게 아니라 뭔가를 해야하는 지는 꿈에도 몰랐다. 그녀는 자신의 카드들을 바라봤다. 대체 딜러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유추조차 되지 않았다. 하필이면 테이블의 가장 오른쪽에 있는 그녀에게 순서가 먼저 갔다. 적어도 두번째 였다면 보고 따라할 수 있는데 그럴 수 도 없었다. 이제 와서 규칙을 모르니 알려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핑키라도 데리고 올걸. 그녀는 불안하게 눈을 굴렸다.

"힛 올 스테이."

딜러 포니가 다시 한번 그녀에게 말했다. 뭔가 재촉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식은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때리기는 싫으니까 가만히 있을게요."

그녀가 작게 말했다. 그녀는 자기도 무슨 말을 하고있는건지도 몰랐다. 혹시 말로 하는 게 아니라 다른 걸 의미하면 어쩌나 조마조마 했다.

플러터샤이의 옆에 있던 수컷 포니가 그녀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비웃음이 담긴 그의 표정을 보자 그녀는 얼굴이 화끈거리다 못해 쥐가 나는것 같았다. 뭔가 잘못한게 틀림 없었다. 그녀는 지금이라도 테이블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딜러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그녀의 옆에 있는 포니에게 같은 말을 했다. 다행히 뭔가 잘못한거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포니가 자신을 보고 비웃었다고 그녀가 착각한 것 일 수도 있었다.

그녀의 옆에 있는 포니들이 하는걸 지켜보고서야 그 말의 의미를 알게되었다. 힛은 카드를 한장더 받는다는 의미이다. 스테이는 카드를 받지 않고 차례를 넘기는 의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게임의 규칙을 이해할 순 없었다. 룰렛보다 더 복잡해 보이는 게임이었다. 그녀는 괜히 아무것도 모르고 테이블에 앉았다고 후회했다.

딜러는 포니들에게 한번씩 묻더니 자신의 뒷면 카드를 뒤집었다. Q와 3 이었다. 딜러는 카드 한장을 더 뒤집더니 이번엔 9가 나왔다. 옆에 있던 수컷 포니가 활짝 웃으며 발굽을 쳤다. 아무래도 게임이 끝난것 같았다. 딜러는 포니에게 줄 칩을 꺼내고 있었다. 딜러는 플러터샤이에게도 칩을 하나 주었다. 그녀는 어리둥절하며 칩을 보았다. 뭘 한건지 모르는 사이에 그녀가 이긴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이 게임은 그녀에게 너무 복잡했다. 다시 친구들이 있는 룰렛으로 돌아가려 자리에서 일어나려했다.

"블랙잭 처음 하시나봐요."

그녀의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흰색 갈기의 암컷 유니콘이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플러터샤이는 멍하니 그녀를 쳐다봤다.이런 화려한 관광 도시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유니콘이었다. 갈기부터 털, 꼬리 전부 새하얬다. 긴 갈기는 머리 뒤로 동그랗게 말고 귀에는 조그마한 진주 목걸이를 달고 있었다. 흰색 털의 유니콘은 흔했다. 그녀의 친구 래러티도 흰색 털이기도 하다. 그래도 갈기와 꼬리까지 흰 털인 포니는 처음 봤다. 첫인상도 래러티와 전혀 달랐다. 래러티가 부드러운 하얀 천이라면 이 포니는 차가운 눈처럼 느껴졌다. 그런 이질감이 드는건 눈동자 때문이었다. 날카로운 눈도 그랬지만 검은 눈동자가 그녀의 털과 상반되어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커다란 검은 눈은 그녀의 시선을 꼼짝없이 붙들고 있는것만 같았다. 그녀의 노려보기를 당하는 동물들의 심정이 이러할까. 

"제가 알려드릴게요. 한번 다시 해보세요."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솔직한 심정으론 다시 핑키와 대쉬가 있는 테이블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굳이 규칙을 알려주겠다는 친절한 포니를 거절하고 싶진 않았다.

그녀는 이번에는 칩 두개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방금 전과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그녀는 앞면으로 된 카드 두장을 받았다. 그리곤 딜러가 그녀에게 아까와 같은 질문을 했다.

"힛 하세요. 11이니까. 최대한 21에 가깝게 만드는게 이 게임의 목표에요. 21을 넘어가면 지게 되고요."

흰색 갈기의 유니콘이 옆에서 말했다. 플러터샤이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지만 그렇게 했다. 딜러는 그녀에게 10을 주더니 순서를 넘어갔다. 게임이 끝나고 그녀가 또 이겼는지 걸었던 칩 만큼의 칩을 주었다. 어느새 칩이 네 개가 되어버렸다.

"운이 좋으시네요. 한번 다시 해보세요."

흰색 유니콘이 말했다. 그녀는 큰맘먹고 네 개의 칩을 모두 걸었다. 딜러가 카드를 나눠줬다. K와 J였다. 플러터샤이는 그녀를 흘끗 쳐다봤다. 그녀는 카드를 한번 보더니 싱긋 웃었다.

"진짜 운이 좋으시네요. 이번엔 스테이 하세요."

플러터샤이는 그녀가 말한대로 했다. 결과는 그녀의 승리였다. 네 개의 칩이 여덟 개로 불어났다. 한번의 패배가 있었지만 두번의 승리로 단숨에 칩이 20개로 늘어났다. 그녀는 기쁘기보단 덜컥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삽시간에 불어나는 칩들이 그녀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른 포니에게는 몰라도 200비츠는 그녀에게 충분히 큰 돈이었다. 그 이상 돈을 걸고 하기엔 그녀의 담력은 부족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흰색 유니콘이 그녀를 올려다 보았다.

"가시게요? 분위기 탔을 때 좀 더 해보시지."

"아, 저... 괜찮아요. 친구들도 있고 해서 이제 가봐야해요."

그녀는 자신이 딴 10비츠 짜리 칩 20개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맨 처음 게임은 그녀가 딴 칩이었지만 나머지는 흰 유니콘의 도움을 받았다. 비록 그녀의 운이 좋았다곤 했지만 그래도 유니콘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하진 못했을것이다. 그녀는 칩 두 개만 자신의 안장 가방에 넣었다. 나머지 칩은 흰색 유니콘의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자신을 도와준 포니에게 돌려주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받을 자격이 있었다. 흰색 유니콘이 놀란듯 플러터샤이를 올려다봤다.

"저, 알려주신 덕분에 게임을 이길 수 있었어요. 그러니 이 칩은 당신꺼에요. 고마워요."

플러터샤이가 수줍게 말했다.

"이게 왜 제꺼죠? 순전히 당신 운이 좋아서 딴거에요."

유니콘은 플러터샤이의 의도를 모르겠다는듯 말했다.

"전 그냥 너무 고마워서..."

그녀는 고마움을 표현하려는 의도밖에 없었다. 당연히 칩을 받아들일 줄 알았건만 생각보다 차가운 반응에 플러터샤이는 주눅이 들었다. 유니콘은 그녀를 보며 생각에 잠기다 말했다.

"주신다면야 감사히 받을게요."

유니콘이 칩을 자신 쪽으로 가져가자 플러터샤이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친절하신 분이네요."

유니콘은 그녀를 보며 피식 웃었다.

플러터샤이는 다시 룰렛 테이블로 돌아갔다. 방금 있었던 일을 얘기해주고 싶어 신이 났다. 하지만 아까 룰렛 테이블에는 그녀의 친구들이 없었다. 그녀가 주위를 두리번 거리자 복도를 걷고 있는 핑키와 대쉬를 발견했다. 고개를 푹 숙인채 힘없는 걸음걸이를 한 대쉬의 모습이 보였다.

"플러터샤이! 너 어디 갔다 왔어? 중간부터 안보이던데."

핑키 파이가 플러터샤이를 보자 말했다.

"그냥 다른 테이블에는 뭐가 있나 한번 가봤어."

핑키는 흥미가 생기며 활짝 웃었다.

"정말? 그래서 어떻게 됐어? 이겼어?"

플러터샤이는 수줍게 웃었다.

"응. 10비츠 따서 지금 20비츠야. 어떤 친절한 분이 도와주셨어."

그녀는 대쉬를 슬쩍 보았다. 둘 사이의 대화에도 전혀 반응을 안하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대략 어떤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너희들은..."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쉬는 2천 비츠 잃고 난 한 게임도 못해서 그대로야."

그녀의 예상이 맞았다. 2천비츠를 한순간에 잃게 된다면 아무리 대쉬라도 낙담은 하기 마련이다. 핑키는 아무래도 룰렛이 돌아가는 것만 보고 있고 게임은 안한것 같았다.

"세상에! 그럼 플러터샤이가 여기서 유일하게 돈을 따서 가는거잖아?! 대단한데 플러터샤이?"

핑키가 헉 하고 놀라며 소리쳤다. 플러터샤이의 볼이 붉어졌다.

"에이, 많이 딴것도 아니고 10비츠 밖에 안땄는걸."

"아냐, 아냐. 그래도 우리 중엔 1등인걸. 게다가 넌 카지노에 처음 왔잖아. 대단한거라고. 안그래, 대쉬?"

핑키가 웃으며 대쉬의 옆구리를 툭툭 찔렀다.

"몰라. 망할 카지노에 다신 오나 봐라."

대쉬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대쉬가 게임을 할 의욕을 잃어 셋은 다시 환전소로 갔다. 칩을 돈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대쉬만 신경질적으로 알수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플러터샤이는 자신의 발굽에 들린 비츠들을 기분좋게 바라봤다. 설마 이곳에 와서 돈을 따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는 스스로 운이 있냐 없냐 따지면 운이 없는 축에 있다고 생각했다. 매사에 뭐든 소심해 기회가 있을 때 기회를 잡는 법도 몰랐다. 비록 10비츠 뿐이었지만 이건 그녀의 인생이 마냥 불운한건 아니라는 자신감의 증표 이기도 했다.

셋은 다시 카지노를 나와 복도를 걸었다. 시끄럽던 소리가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카지노 재밌었지, 그치?"

핑키가 통통 뛰어다니며 말했다.

"아니. 최악이었어."

대쉬의 기분이 조금 풀렸는지 다시 앞을 보고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표정은 어두웠다.

"난 생각보다 재밌었어. 오길 잘한거 같아."

플러터샤이가 말했다.

"그치? 오길 잘했지? 나도 룰렛이 돌아가는걸 보는게 너무 좋아! 다음에 또 오고싶어."

핑키가 흥분했는지 소리를 높히며 말했다. 

"글쎄..."

플러터샤이는 다시 이곳을 올 것 같진 않았다. 재미는 있었지만 이번 경험은 평범한 그녀의 삶에서 어쩌다 한번 쯤 저지를 일탈같은 것 일 뿐이었다. 친구들과 같이 와서 오게 된 것 뿐이지 혼자서 이곳을 일부러 방문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다음에 이곳을 오게 되면 돈을 잃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도 들었다.

스파에 가지 못해 아쉬웠지만 호텔 욕실도 충분히 호화스러웠다. 플러터샤이는 샤워를 하고 불이 꺼진 호텔방을 조심스럽게 돌아다녔다. 다섯 마리 포니와 한 마리 아기 드래곤이 커다란 침대 두 개에서 옹기종기 자고있었다. 빡빡한 일정 소화로 피곤한지 모두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어둠을 더듬으며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그녀도 피로가 몰려 금새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호텔에서 식사를 하고 곧장 포니빌로 가는 기차를 탔다. 플러터샤이를 제외한 나머지 포니들은 기차안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전 날 쌓인 피로가 아직 풀리지 않은듯 했다. 그녀의 옆자리에선 핑키 파이가 플러터샤이의 무릎을 베고 새근새근 잠들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핑키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플러터샤이만은 여행의 마지막 여운을 즐겼다. 그녀는 출발하는 기차의 창문에서 멀어져가는 관광도시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건물 하나하나 포니들 하나하나 모두 화려했던 그곳은 그녀와 참 어울리지 않는곳이었다. 아마 혼자서 이곳에 왔었다면 이렇게 즐거운 경험은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친구들과 함께 있었기에 진심으로 즐길 수 있었다.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갈 때 였다. 집에는 돌봐야 할 동물들이 넘쳐났다. 그녀는 종종 일이 있을 때 집을 비우곤 한다. 집에 먹을 것을 남겨두고 그녀의 애완 토끼 엔젤이 나머지 동물들을 잘 돌봐줄 수 있기에 크게 걱정 할 필욘 없었다. 그래도 걱정을 완전히 덜 수 있는건 아니었다. 하루 집을 비우는 동안 동물들이 심심했을 것이다. 자기 전 항상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지 못해서 기분이 안좋을수도 있었다. 통제 할 포니가 사라지니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었을수도 있었다. 그녀는 집에 돌아가면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이내 창문 밖의 관광도시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번 역은 포니빌입니다."

"얘들아 다 왔어. 일어나."

플러터샤이가 포니들을 깨웠다. 서로의 등에 기대어 잠이 들었던 포니들이 하나 둘 하품을 하며 일어났다.

"벌써? 깜빡 잠들어 버렸네."

래러티가 눈을 비비며 말했다. 나머지 포니들도 잠이 덜 깬 얼굴로 자리에서 나와 기지개를 폈다.

"스파이크. 우리 귀염둥이. 잊지말고 짐칸에 내 짐 찾고 나오렴."

래러티가 스파이크의 비늘을 쓰다듬고는 제일 먼저 나왔다.

"알았어, 래러티! 걱정마!"

스파이크는 짐칸에 산더미 처럼 쌓여있는 래러티의 짐들을 혼자 짊어지고는 휘청거리며 나갔다.

"너희들 어떻게 할거야? 나랑 애플잭이랑 핑키는 농장에서 사이다 마시면서 뒷풀이 하기로 했는데. 같이 갈거지?"

대쉬가 말했다.

"미안... 난 공주 업무가 쌓여있어서. 휴가 때문에 밀어둔 일을 끝내야해."

트와일라잇이 말했다.

"나도 집에 먼저 가볼게. 동물들을 봐야해서."

플러터샤이도 덧붙혔다. 대쉬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별말없이 기차를 나섰다.

포니들은 터미널에서 인사를 하고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다. 플러터샤이는 무심코 하품이 나왔다. 어제 꽤 늦은 시간에 잠이 들어 잠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나도 기차에서 잠깐 잠이나 잘걸. 그녀는 눈가에 찔끔 흐른 눈물을 닦았다. 

그녀는 느긋하게 하늘을 날았다. 안장 가방에는 동물들과 같이 먹으려고 산 쿠키가 들어있었다. 선물을 보자마자 달려들 동물들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간단하게 티타임을 즐기고 낮잠이나 자야겠다 생각했다.

멀리서 그녀의 오두막이 보였다. 오두막에 가까워지자 그녀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졸음이 단박에 날아가는 광경이었다. 그녀는 속도를 높혔다. 오두막은 그녀가 바로 어제 아침 마지막으로 집을 떠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창문이며 문이며 집에 드나들 수 있는 출입구가 전부 나무 판자로 막혀져 있었다. 심지어 쥐들이 드나드는 쥐구멍 까지도 전부 막혀있었다. 그녀는 서둘러 지상으로 내려왔다. 미친듯이 집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동물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걸까? 밤 사이에 누군가가 집에 들어오려고 하기라도 한걸까? 수상한 포니가 주위를 배회해서 동물들이 힘을 합쳐 문을 막았다거나... 아니, 그렇다면 밖이 아니라 안에서 문을 막아야 정상이었다. 게다가 밖에서 문을 전부 막아버리면 안에 있는 동물들은 나오지도 못할것이다. 그렇다면 동물들이 아닌 누군가가 밖에서 문을 막은걸까. 대체 누가?

그녀는 창문으로 가 집 안을 살펴보았다. 불은 켜져있지도 않고 판자로 창문을 모두 막은 탓에 어두컴컴했다. 어렴풋한 형상으로는 움직임은 없었다. 동물들이 안에 있다면 그녀를 보고 밖으로 나왔을 것이다.

"엔젤. 얘들아. 안에 있니?"

그녀가 불안함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답은 없었다. 어두컴컴한 집안에선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린 그녀는 창문에 기대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동물들은 다 어디 간거지? 집은 왜 이 모양이 되있는거지? 의문을 차근차근 풀기엔 그녀의 가슴이 미친듯이 요동쳤다. 하루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왜 하필 그녀가 집을 비운 날에 이런 일이 일어난걸까. 퍼져가는 의문만큼 불안감도 번져갔다. 동물들이 자기를 놀래켜줄 깜짝 파티를 준비했다는 가정조차 할 수 없었다. 어떤 일인지 짐작은 할 수 없었지만 좋은 일이 아니란 것만은 확신했다.

플러터샤이의 어깨가 들썩이더니 얼굴이 일그러졌다. 흐느낌이 목에서 흘러나왔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내고 싶었지만 그녀는 억지로 참아냈다. 그녀는 다리에 힘을 줘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기력하게 우는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도움을 구하던지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던지 해야 했다.

그녀는 나무 판자를 살펴보았다. 못을 깔끔 하게 박은 솜씨로 보아 동물들이 한 짓은 아니었다. 게다가 나무 판자는 2층 창문에도 박혀 있었다. 분명 포니가 한짓이 분명했다.

그녀는 문득 정문 앞에 덮힌 판자들 위에 쪽지 하나가 붙혀있는걸 발견했다. 판자 위에 있는걸로 봐선 누군가가 문을 막고 붙힌듯 했다. 그녀는 서둘러 붙혀있는 쪽지를 뜯어 읽었다.

그녀의 눈이 써있는 글을 읽어내려가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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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는 플러터샤이가 사기도박하는 팬픽임
MIT수학천재들의 카지노 무너뜨리기 란 책을 읽고 아이디어를 떠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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