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생포 왜성
지난달말 울산 무룡산에 백팩킹을 다녀오면서 내려간김에 잠깐 들른 서생포왜성입니다.
명절전이라 사람이 없는건지 중요도가 떨어져서 없는건지는 몰라도 방문당시 방문객이 우리뿐이었습니다. 학성공원의 울산왜성과 순천의 순천왜성, 자성대에 위치한 부산포왜성등을 다녀봤는데, 현재 남아있는 부분만 가지고 규모면에서 순천왜성과 견줄만 했습니다.
인근의 서생포진성이 왜란당시 훼철되면서 임란후 이곳을 서생포진성으로 사용하여 비교적 온전히 보전된감이 있습니다. 위치는 주변이 잘 조망되어 원래 서생포진성보다 위치상 더 좋았습니다.
구 서생포진성은 현재 흔적이 없고, 화정마을 뒷산으로 구전되기만 합니다. 실제로 산으로 올라가는 길도 없었습니다. 도상 600m떨어져 있는것으로 봐서 이일대의 군사적 이점은 임란전의 조선군이나 임란중의 일본군에게 모두 중요하게 인식된것 같습니다.
현재는 인근의 논밭이 원래 바다였던 점을 비추어 당시엔 성에서 바로 포구로 연결되어 조명군이 공략할때 어려움이 많았을것으로 생각됩니다.
방문당시 관리인께서 해주셨던 이야기가 마음속에 남아 이렇게 몇자 적습니다.
"임란당시 군사요충지이고 가토장군이 지은 일본성이다. 울산시내의 울산왜성과 더불어 중요한 거점이었다. 일본방문객들이 많이 방문해 주시고 계신다. 오시는 분마다 이렇게 잘 보존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칭찬이 자자하다. 국내에서 가장 잘 복원해 두었다."
요지는 이랬습니다. 한편으로 그간 다녀간 왜성들에서 저희 이외의 방문객은 극 소수였고, 잘 아는 사람도 드믄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인식하는 왜성은 이렇습니다.
임란시 왜놈들이 우리나라로 쳐들어와서 무고한 인근백성들을 끌어다가 노역으로 만들었고, 7년간 혹은 1~2년간 주둔하면서 우리나라를 괴롭힌 역사적 사실이며, 그 증거이다. 즉, 중국에서 731부대 관련 유물들을 보존하는 이유와 같은 이유로 봤습니다.
우리의 슬픈 역사이자 이를 몰아내고 다시 우리것으로 사용하는 극복의 역사로 인식하고, 그런연유로 인근지역을 방문하게되면 우리나라 유적지와 더불어 방문을 하게 됩니다.
때문에 축성의 목적과 이를 공략한 조명군의 활약상을 함께 찾아보곤 하는데요. 막상 찾아가보면 잘 복원하는것에 방점을 찍은듯한 인상이었습니다.
관리자분께서도 자랑삼아 이야기한 것일 테지만, 이 성이 이렇게 훌륭하다가 목적이 아니라 이 성이 이런역사적 사실의 증거라는데 목적을 두어야 하는건 아닐지....
일본인들이 와서 자신들의 조상이 이렇게 훌륭했다고 생각하는것은 어쩔수 없으나 우리입장인 너네들이 이렇게까지 우리를 괴롭혔다는 부분을 어필해야 하는것은 아닌지...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