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일입니다.
지방 소도시에 사는데, 외국 유학 시절의 친구들이 서울에 여행을 와서 만나러 갔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저녁까지 같이 먹고 온다는 게 그만, 도착시간이 새벽 2시인 버스를 타게 되었습니다.
당시 자취하던 원룸이 버스터미널과 가까웠는데,
평소 겁이 많은 데다 워낙 심야라 길에 사람이 없으니 무서워서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체력이 원체 저질이었던지라 숨이 차서 잠시 걷고 있었는데, 그 때 마침 흰색 승용차가 제 옆을 지나가더군요.
그 새벽에 묘하게 속도가 느린 차라고 생각하는데, 점점 속도를 더 늦추더니
제가 서 있던 인도 옆에 차를 세우며 조수석 창문을 스으윽 내리고는,
"어디 가요?" 라고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나이대가 쉽게 추측되지 않는, 특징이 있는 듯 없는 듯 한데 소름이 돋는 목소리였습니다.
차 안은 어두워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으니 표정이 보일 리가 없는데, 목소리 만으로도 왠지 표정이 추측되는.
본능적으로 대답도 않고 마구 내달렸습니다.
쉬지 않고 집으로 달리면서도 경계를 늦출 수 없었는데,
원룸까지 오는 길에 그 차가 저를 앞질러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집으로 뛰어들어가고, 들어가자마자 모든 문을 잠그고,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 집 근처까지 쫓아왔을까봐 집에 불도 못 켜고,
잔뜩 경계하며 밖에서 나는 소리에 귀기울이다가 이내 아무 소리 안 나는 새벽의 평온함에 긴장이 풀려 잠들었습니다.
나중에서야 알았는데, 제가 그 남자를 마주친 곳은 어느 미제 사건이 있었던 장소였습니다.
그 당시로부터 2~3년 전에 20대 여성의 사체가 발견되었는데,
그 여성의 마지막 행적과 사체 발견지점을 선으로 이어보면,
제가 마구 달려 도망친 그 경로로부터 불과 50m쯤 떨어져있을까 말까한...
그 남자가 옛날에 그 여성을 살해한 범인인지 아닌지 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나도 비슷한 일을 당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