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옛날 사진들을 보다가 떠올라버린 흑역사때문에 이불이 너덜너덜 해질때까지 발로차고 뒹굴다가 쓰기때문에 음슴체로 쓰겠음.
체코 프라하에서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로 넘어가기 위해서 기차를 탔음.
기차 한칸에 3명 3명 마주보고 앉는 형식인데, 내가 앉은 기차칸에서 나를 제외한 다섯명은 영국 고등학교에서 단체로 여행온 제정신이 아닌 애들이었음.
코에다가 피젯스피너를 매달고 돌리다가 이마에 맞아서 울부짖지를 않나.... 움직이는 기차칸에서 자기가 태권도 잘한다더면서 태권도 시범보여준다고 다리 휘두르다가 바지가 찢어지질 않나...
난 고등학생들 똘기가 한국이 단연 최고인줄 알았더니만 진짜 한국의 고등학생들은 아무것도 아니었음.
내가 탄 기차 량(?)이 통째로 나를 제외하고 모두 같은 영국 고등학교에서 온 애들이여서 나에대한 호기심 때문인지 자기들끼리 계속 자리를 바꿔서 앉음. 그래서 나랑 같이 앉은 멤버들이 자꾸 바뀌었고, 여기서 사건이 시작됨.
어떤 한 여자애가 자기 가방을 두고 자기 다른 친구들이 있는 칸으로 잠깐 자리를 옮겼음. 그리고 그 여자애가 앉아있던 자리에 탑똘끼로 무장한 한 남자애가 앉았음. 잠시 후 그 남자애가 앉은 자리에서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하는거임. 처음엔 모두가 무시했음. 그런데 그 전화가 계속 울리는거임. 그래서 그 똘끼로 무장한 남자애가 가방을 슥 열면서 휴대폰을 꺼내고 화면을 보더니 "Oh Dad...why are you keep calling me?" 하는거임. 그러더니 나한테 휴대폰 화면을 가르키면서, 자기 아버지가 독일사람인데 자기를 너무 귀찮게한다. 혹시 내가 대신 전화를 받아주면 안되냐? 근데 난 그때까지도 그 휴대폰이 남자애껀줄 알았음. 내가 니네 아버지 전화를 내가 왜받냐고 싫다고 몇번 거절했는데 끝까지 계속 해달라고 하길래, 내가 "뭐라고 말해줄까? 화장실가서 자리에 없다고 해줄까?" 라고 했더니
그애가 "ㄴㄴ 한국어로 말해봐봐. 아무거나 날씨가 좋다던가".
딱 여기서 눈치채고 그만했어야 하는데 그때 내가 무슨생각이었는지 재밌겠다 싶어서 전화를 딱 받음.
그리고 말함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가 참 좋죠. 댁 아드님이 자꾸 저에게 전화를 대신받게 해서 제가 곤란하네요. 집에가면 따끔하게 혼내주세요"
라고 한국어로.
그리고 칸 안에있던애들은 웃다가 숨넘어갔음.
그리고 그 독일아저씨가 전화로 다급하게 영어로 대답함
"전화받는사람 누구냐 이건 내 딸 휴대폰 아니냐"
그때 뭔가 이상함을 느꼈음. 그리고 휴대폰을 남자애한테 돌려줌. 그리고 그 남자애는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꺼버림.
그러다가 20분정도 후에 여자애가 제자리로 돌아옴 그리고 휴대폰을 킴.
문자가 17통이 와있고 음성메세지가 7건인거임.
그리고 휴대폰을 켜자마자 그애 아버지한테 전화가옴. 그리고 그 여자애는 전화를 받았음.
처음에는 웃으면서 "Why papa?" 하면서 다정하게 전화를 받더니 점점 얼굴이 굳어짐.
체코 경찰에 자기 딸이 왠 이상한 언어를 쓰는 남자한테 납치를 당했다고 그 독일아저씨가 신고를 한거임.
그 여자애는 아니다 자기 친구가 장난을 친거였다, 아무일도 아니었다고 아빠한테 막 설명을 하기 시작했고, 걔 아빠가 화나서 뭐라뭐라 소리지르는게 스피커폰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들림. 그리고 그 여자애는 잠시 후 울기 시작했고 걔 아빠는 한참을 더 소리지르다가 전화를 끊음.
나는 미안해서 자꾸 미안하다, 고의가 아니었다, 하면서 그 여자애한테 사과했고, 그 여자애는 나한테 괜찮다면서 딱봐도 이 미친애가 해달라고 했겠지 하면서 일단 넘어감.
그리고 이 아저씨가 잠시 후 전화가 와서 나를 바꿔달라고 여자애한테 말함. 그리고 난 전화를 받았음.
받아보니 휴대폰 넘어로 독일아저씨가 현지 경찰로 추정되는 목소리랑 뭐라뭐라 대화하기 시작함. 그리고 독일 경찰이 전화를 받음.
그러더니 나한테 상황을 물어보고, 이름이랑 국적을 물어봄.
들뜬마음으로 여행하다가 체코에서 독일경찰한테 전화를 받으니까 너무 무섭기 시작함.
필자는 독일어를 꽤 오랜시간동안 배워서, 휴대폰 너머로 독일경찰이랑 여자애 아버지랑 말하는걸 얼핏 들으니 법적조치라는 단어같은게 얼핏 들림.
내가 장난질 잘못했다가 인터폴에서 나를 잡아가게 생겼다 싶어서 여자애 아버지한테 독일어로 막 용서를 구함. 나는 진짜 아무것도 몰랐고 단순한 장난이었다고.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아저씨가 한숨몇번 쉬면서 듣더니 나한테 학생이냐고 물음.
그렇다고 하니까 아저씨가 잠시 후에 자기가 많이 놀랐다고, 딸이 외국으로 여행을 가고 연락이 없어서 걱정중이었고, 그래서 전화를 했는데 왠 처음듣는 언어로 말을 하더니 전화를 끊어버리고 휴대폰이 꺼져있었다고.
내가 너무 죄송해서 울먹이면서 자꾸 사과를 했음. 그 마음 이해한다고....내가 잘못했다고.
그렇게 사과하고 아저씨가 알겠다고 전화를 끊었고 사건의 주범 남자애만 빼고 다들 숙연한 분위기로 기차를 타고갔음.
그 영국애들은 부다페스트가 목적지라 계속 타고 가고, 나는 브라티슬라바에서 먼저 내림.
페이스북 아이디를 받아서 계속 연락하기로 하고, 악수 한번씩 하고 그렇게 눈이 시뻘개진채로 브라티슬라바 중앙역에 내리니까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봄. 그리고 숙소에 와서 이불킥을 오질나게 했음.
그리고 얼마전에 내가 태그된 게시물이 하나 올라와서 보니까 그 여자애랑 탑똘끼 남자애 둘이 커플됬더라.
결론은 커플죽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