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의 이유가 둘 사이의 갈등이나 다툼때문이라면, 대개 그런 이별은 그렇지 않은 이별에 비해 그 후폭풍이 크지 않다. 싸우고 헤어지는 그 당시에야 물론 화나고 슬플테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고 감정의 파고가 잔잔해지면 다툼으로 헤어진 연인들은 제법 쉽게 제자리를 찾아간다.
몇몇의 경우를 제외하면 싸움은 결코 한 사람만의 잘못만으로는 일어나기 어렵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는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아서 일 수도 있고, 이 헤어짐이 가져다 줄 아픔과 분노가 비단 나 혼자만 느끼는 것이 아님을 다소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인것 같기도 하다.
요컨대 내게도 이별의 책임이 있을때 더 쉽게 이별에 수긍하게 되고, 상대도 나 못지않게 화나고 힘들었음을 알게 될 때 더 쉽게 이별에 덤덤해지는 간사한 나의 모습을 지금껏 나는 여러번 보아왔다.
문제는 어느날 갑자기 사고처럼 찾아온 이별이다.
그동안 꾹꾹 참아온 헤어짐을 말해야 했던 상대의 외로움과 슬픔을 알 방도가 없는 내게는 이런 식의 이별은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같은 기분이다.
"어제만해도 우리 잘지냈잖아" "나는 아직 너를 사랑한단말이야" 따위의 지질한 말들을 한바탕 쏟아내고나서도 그 떨리고 황망한 감정은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잘못한것도 없이, 설령 잘못이 있었다손치더라도 그 잘못을 알아챌 시간마저 없이 나를 떠난 상대를 보며 곱절의 슬픔과 억울함을 나는 느끼게 된다.
똑같이 이별을 투입한 함수값의 결과가 한 사람에게는 후련함으로, 한 사람에게는 어느날 세상의 반절이 사라진 슬픔으로 산출되는 이 불공평함마저 느낄때에는 세상 모든 슬픔이라도 짊어진듯 끝없이 침잠하게 되는것이다.
더욱이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며 내 일상과 비일상의 곳곳에 빠짐없이 상대의 흔적을 묻혀놓은 사람에게는 이 세상 전부가 슬픔을 유발하는 방아쇠가 된다.
상대방도 좋아하길 바라며 데려갔던 나만의 단골맛집, 헤어지기 아쉬워 일부러 늦게 예매했던 심야의 영화, 상대방이 알려주기 전까지는 한번도 들어본적 없던 인디밴드가수 등등의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이 이 지독한 알러지의 원인균이 될줄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던 시간들을 우리는 보낸것이다. 그렇지 않았던들 상대의 기호와 나의 취향을 있는대로 섞어가며 서로가 서로에게 물들어가기 위해 안달했을리, 만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