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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에 대항한 조선시대의 여군 “예청”
게시물ID : history_138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래된유머
추천 : 14
조회수 : 1737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4/01/29 20:34:39
조선시대에도 여군이 존재했다는 사실! 알고계신가요?
모두 아시듯 조선시대 해안가에 거주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왜구는 두려움의 존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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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해안가의 마을을 침입한 왜구>

시시때때로 해안가 인근한 마을에 침투하여 노략질을 일삼고 부녀자와 아이들을 납치해갔기 때문이죠. 그래서 부산 등의 해안도시에는 지금도 과거 왜구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건설된 성터들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남방에 위치한 제주도 역시 그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왜구의 침입이 끊이질 않았다고 합니다.
때문에 제주도 역시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방어시설을 축조하고 관군을 두어 방어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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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의 침입을 방어하였던 제주 읍성의 성터>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관군의 수로는 왜구의 침입에 대한 방어가 어려웠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제주에 거주하는 관민들 또한 집마다 당번제로 번을 서게 되었고, 여성들 또한 이에 동참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임무를 수행한 조선시대의 제주 여군을 “예청”이라고 일컬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제주 여군 “예청”은 문헌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는데 남사록에는 “성을 지키기 위해 민간에서 건강하고 씩씩한 부녀자를 뽑아 화살받이터에 세웠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남사록(南?錄)
1601년(선조34년)에 안무어사로 제주에 파견되었던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의 제주 기행문
그리고 아직도 제주도에는 “예청”이 활동하였던 성터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 관련자료 제주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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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성지에 대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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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제주읍성 성터>

※ 제주읍성 : 제주목사가 근무하던 제주목 관아와 그 주변을 둘러싸던 성. 
1555년(명종 10) 1천여 명의 왜구가 침략했던 을묘왜변을 계기로 확장되었다.
과거(1910년) 읍성철거령과 개발로 인해 대부분의 성터가 사라져 아쉬웠지만 아직까지 남아있는 조용하고 고즈넉한 성터를 통해 과거 “예청”의 활약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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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조선시대 제주도의 여군 “예청”은 호국정신에 귀감이 되었고 이러한 전통이 이어져 6.25전쟁 시에는 제주도 여성이 “최초의 여성 해병”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대한민국 여군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출처:남벌 http://www.japwar.com/bbs/board.php?bo_table=06&wr_id=253&page=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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