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고양이를 좋아해서 아무 생각없이 구입한 책인데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정도를 생각하고)
생각보다 훨씬 난해해서 읽는데 꽤나 시간이 오래 걸려 버렸다.
소설의 내용이나 서술 방식은 상당히 혁신적이랄까, 여러가지 장치들이 촘촘하게 짜여 구성되어있다.
1819년에 쓰여진 소설이라는 사실을 논외로 하더라도 상당히 파격적이다.
자칭 천재 수고양이인 '무어'가 집에 있는 이면지에 자신의 자서전을 기술하였는데,
편집자의 실수로 인해 그 이면지에 실려있는 '크라이슬러'라는 인물의 전기까지 인쇄되어버렸다는 기묘한 설정이다.
이로인해 소설은 이 두 인물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이면지의) 크라이슬러 전기는 설정상 뒤죽박죽 여기저기 끼워져있는 탓에
마지막에 이르러야 퍼즐이 풀린다는 면에서 일종의 추리 소설의 냄새가 풍기기도 한다.
또한 수고양이 무어는 성장하며 암고양이 미스미스와의 사랑, 연적과의 결투,
집을 떠나 낮선 곳에서의 방황 등의 경험을 하는데 이는 시간순서는 다르지만 (이면지의) 크라이슬러 전기에서도 반복된다.
이때문에 무어와 크라이슬러는 마치 평행세계의 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수고양이 무어는 지적 허영심으로 가득차있지만,
현실적인(생존) 능력은 갖추지 못한 허풍선이 같은 인물들을 대표한다고 보인다.
이는 푸들 친구인 '젊은 폰토'와의 에피소드에서도 자주 옅볼 수 있다.
낯선 곳에서 굶주림에 지쳐있던 무어는 젊은 폰토의 도움(재롱)으로
간신히 소시지로 허기를 채운 뒤 이렇게 말한다.
"친애하는 폰토여, 소시지 파는 여자에 대한 자네의 모든 행동에는
나의 내적인 타고난 감각에 반하는 무언가가 있었다네.
모종의 굴종적인 아첨, 나는 자네가 그랬던 것처럼 그토록 비굴하게 구걸하려고 결심할 수 없을 걸세.
지독하게 배가 고플 때면 나는 마이스터 뒤의 의자로 뛰어올라가
나의 소망을 부드러운 그르렁거림으로 암시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그리고 이것조차도 선행을 청하기 보다는 나의 욕구를 보살핀다는,
그의 책무를 상기시키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