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저 프로그램 자주 보는데...
[난장판]이란 단어가 과거시험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어서 검색해보니 아래글이 나오더군요.
재밌는글이라 가져와봤습니다.
▲ <평생도> 중 '소과응시', 작가미상,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옛 그림을 재치 있게 해석하는 오주석이라는 젊은 미술학자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몇 해 전 지천명 문턱의 나이에 일찍 돌아가셨다. 그분이 이런 말을 했다. "선인들의 그림을 잘 감상하려면 옛 사람의 눈으로 보고, 옛 사람의 마음으로 느껴야한다"라고. 우리가 역사를 바라볼 때도 그의 말은 유효하다. 역사를 재해석하는 일은 그게 죽어 있는 역사를 보기 위함이 아니라 살아 있는 오늘의 역사로 견인하여 내일의 받침대를 튼튼히 세우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달리 오늘의 눈으로, 오늘을 사는 사람의 마음으로 다가가도 한 시대의 삶을 읽을 수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언젠가 나는 아주 흥미로운 옛 그림 하나를 발견하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껑충댄 적이 있다. 몇 번이고 눈을 씻고 봐도 틀림없는 우리 그림이었다. 딸이 보고 있는 교양서적에서였다.
<평생도> 가운데 '소과응시'의 한 장면을 그린 것인데, 누가 그렸는지는 모른다. 그냥 '작자 미상'이다. 어떤 이는 조선 최고의 민중화가 김홍도의 그림이라고 우겼지만, 그건 억지다. 김홍도의 <평생도>에는 이 그림이 들어 있지 않다. 김홍도가 그렸다면 적어도 오주석의 맛깔스러운 그림 읽기에 포함됐을 터이고, 그의 멋진 해설을 벌써 수많은 누리꾼들이 퍼 날랐을 것이다. 어디에도 없다. 아쉬움이 있다면 시대상을 실감나게 담아낸 이 풍속화에 대한 평가가 매우 궁색하다는 것이다. 역사자료로서 그 가치를 따진다면 김홍도의 풍속화에 떨어지지 않는다.
<평생도>란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기념이 될 만한 일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려놓은 그림을 말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다섯 종류의 <평생도>가 소장되어 있다. 19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진 이 그림은 '도편 26' <평생도>의 열 폭 중 하나이다.
그림을 보자. 지금으로 치면 사법고시 1차 시험을 치르는 소과(小科) 시험장의 광경이다. 엄한 시험감독관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아마 가까운 곳에서 엿 파는 노점 아낙과 노닥거리는 건 아닐까? 차일(遮日)을 비스듬히 세우고, 돗자리를 펴 자리를 깔고 앉은 선비들이 답안 작성에 여념이 없다. 제일 위쪽 뒤돌아 앉아 혼자 붓을 휘갈기고 있는 선비는 분명 합격라인에 들 것 같다. 나머지...글쎄올시다. 남의 답안지를 훔쳐보는 사람, 아예 시험 볼 생각은 하지 않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소임을 다한 멍한 사람, 자기 답안을 읽어주며 난상토론을 주도하는 사람, 친절하게 답을 가르쳐 주는 사람, 공자왈 맹자왈은 다 헛것이로다 선문답하며 탁주잔를 기울이는 사람. 한마디로 난장판(亂場板)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시험장의 분위기와는 아주 딴 판이다. 내가 보기에는 과거시험을 치르는 선비들이 아니라 장바닥에 모여 앉아 장기를 두거나, 아니면 촌장댁 마당에서 한양나들이 일정을 짜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수험생답게 초조하거나 긴장된 표정이 없다. 답답한 글방에서 벗어나와 시험장에 자리를 깔고 앉은 것만으로 무지 행복한 선비들이다. 조선후기 과거시험장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뜻하는 말로 '난장판'이란 유래도 나왔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은 자주 있지 않았다. 3년에 한 번 씩 치르는 식년시(式年試)가 정기시험이었다. 최종합격자는 33명. 정조 24년 3월 치러진 시험에는 이틀 동안 21만명 이상(당시 한양 성곽인구 20~30만명)이 소과에 응시했다는 기록이 있다. 어마 어마한 응시생이다. 이 사람들이 과거시험장(亂場)에서 저 <평생도>의 소과응시 장면처럼 시험을 봤다면 난장판의 유래가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난장판의 유래가 일치된 것은 아니다. 오일장과는 달리 특별히 개설된 부정기 장터를 '난장'이라 했고, 이곳에 전국의 온갖 놀이패와 투전꾼, 건달이 모여들고, 각종 연회가 베풀어지며, 사기·도박·싸움이 일어나는 등 이런 시끌벅적하고 무질서한 상황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박제가의 <북학의(北學議)>를 읽어보면 과거시험장에서 벌어지는 난장판의 수위를 가늠할 수 있다. <평생도>의 소과응시 광경이 오히려 너그럽게 그려졌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유생(儒生)이 물과 불, 짐바리와 같은 물건을 시험장 안으로 들여오고, 힘센 무인들이 들어오며, 심부름하는 노비들이 들어오고, 술파는 장사치까지 들어오니 과거 보는 뜰이 비좁지 않을 이치가 어디에 있으며, 마당이 뒤죽박죽 안 될 이치가 어디에 있겠는가? 심한 경우에는 마치(어떤 것을 두드리거나 못 따위를 박는 데 쓰는 작은 연장)로 상대를 치고, 막대기로 상대를 찌르고 싸우며, 문에서 횡액을 당하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욕을 얻어먹기도 하며, 변소에서 구걸을 요구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하루 안에 치르는 과거를 보고 나면 머리털이 허옇게 세고, 심지어는 남을 살상하는 일이나 압사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온화하게 예를 표하며 겸손하여야 할 장소에서 강도질이나 전쟁터에서 할 짓거리를 행하고 있으므로 옛 사람이라면 반드시 오늘날의 과장(科場)에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북학의>는 정조 때 쓴 것이다. 이때는 우리 역사에서 '조선의 르네상스' 운운하는 시기이다. 이때에 이런 난장판이라니, 납득하기 어렵지만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과거시험장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온갖 부정행위가 난무했다. 시험 문제가 사전 유출되는가 하면, 채점관과 짜고 답안지에 미리 표시를 해두거나, 답안지 바꿔치기, 대신 써주기, 합격자 바꿔치기 등이 빈번했다. 그야말로 통제 불능이었다. 우리나라 시험 부정행위의 역사는 이토록 길었단 말인가.
집안의 흥망이 과거 급제에 달려 있던 시절, 신분 상승을 이루는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백성들은 과거 시험에 목을 매다시피 했다. 몰락한 가문을 일으키는 수단이 되었으며, 가난한 선비가 돈과 사랑과 명예를 모두 거머쥐는 보증수표가 되었다. 입신양명이 곧 조선시대 최고의 가치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과거시험은 수많은 폐단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백성들을 마약처럼 빨아들였다.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박제가는 또 <북학의>에서 과거 시험의 폐단을 뼈아프게 꼬집었다. 지금의 사법시험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청춘의 귀중한 시간을 모두 허비함으로써 심각한 사회문제를 낳았던 사례와 같은 논지다. 눈여겨볼 대목이다.
"(전하께서는) 농업정책에 힘쓰고자 하신다면 먼저 그것에 해로운 것들을 없애야 합니다. (그 중 하나로) 선비를 가려내야 합니다. 대비과(大比科)만 보더라도, 대과(大科)나 소과(小科)에 응시하는 자가 거의 10만 명이 넘습니다. 단지 이들뿐 아니라 이들의 부자 형제도 비록 시험에는 응시하지 않았지만 모두 농사일을 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심지어 이들은 농민을 부려먹기만 합니다. 이들은 날이 갈수록 농사일을 가볍게 여기고 과거시험만 더욱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조금이라도 자신을 내세우고 싶어 하는 자는 모두 과거시험장으로 몰려갑니다.
어쩔 수 없이 농사를 짓는 자는 모두 어리석은 일반 백성들로 남에게 부림만 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처자식들까지도 들로 몰고 나갑니다. 소 먹이고 씨앗 뿌리는 일, 낫으로 베고 방아 찧는 모든 일을 부인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황폐한 농촌의 조그만 고을에서는 다듬이 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으며, 온 나라 백성들은 자신의 몸뚱이를 가릴 수 있는 옷조차 없는 지경입니다. 태평세월이 백여 년이나 계속되었지만, 부녀자가 밭을 갈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배웠다는 사대부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옛날부터 그랬다'고만 말합니다. 어떻게 이런 사대부들을 단지 농사를 방해하는 자들이라고만 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은 농사를 망치는 몹쓸 자들입니다. 이런 무리가 전체 인구의 반을 차지한 지가 백년이 되었습니다. 지금 나라에서는 오로지 과거만을 중시하는 자들은 도태시키지 않으면서, 농사일에 힘쓰지 않는 백성들에게만 '너희들은 어찌하여 힘써 일하지 않느냐?'라며 꾸짖고 있습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직도 과거를 치르는 조선시대에 살면서 나라를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는 우려한다. 교육·입시제도, 국가자격제도만이 아니다. 조국과 민족 앞에 추태를 부리고 있는 대한민국의 지배권력이 더 난장판이다. 그 권력에 기생하는 비겁한 정치집단들, 발칙한 극우주의자들, 오만한 기득권자들이 우글거리는 이 시대가 더 난장판이다. <평생도>의 '소과응시' 그림에서 21세기 이 나라의 아침밥상을 생각한다. Ø굴렁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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