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 답변 기준 20만이 청와대의 자충수인 큰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사실 정부에서 시민 청원이라는 시스템을 만들고 답변하는게 단지 민심을 살피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높은 이 시기에 시민 청원이라는 형태는
정부가 국정을 주도하는데 있어서 또 하나의 굉장히 유용한 도구가 되죠.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높다 = 시민의 니즈와 정부의 정책 방향이 대체로 일치한다'이기 때문에
시민 청원은 '정부가 추진하고 싶지만 정치역학상 먼저 꺼내기는 어려운 사안'에 대한 좋은 명분을 주는 시스템입니다.
잘만 활용하면 정치적으로 굉장히 좋은 수죠.
정부나 여당이 먼저 운을 띄우면 야당이 물어뜯고 언론이 물어뜯을만한 사안이라도
시민 청원에 올라오고 거기에 대답한다는 형식이면 간단히 우회할 수 있는겁니다.
문제는 (아마도 여성징병 청원에 대한 답변을 피할 요량으로) 20만이라는 엄청난 기준을 정해버렸죠?
이로써 시민 청원이라는 시스템은 앞으로 식물인간이 된겁니다.
20만이라는 숫자가 우습게 느껴지시는 분은 없으시겠죠?
이번에 소년법 청원이 20만을 넘긴 것은 끔찍한 살인사건이라는 이슈가 있었고
이에 대해 언론이 집중적으로 보도를 하여 이슈화시켰고
여기에 더불어 이 사안은 정치 성향이나 이념, 지역, 계층 등에 의한 논란의 여지가 별로 없는 이슈였기 때문입니다.
즉 "이슈화될만큼 충격적인 사건+언론의 집중보도+정치적 논란의 여지 없음" 3중첩의 힘으로 20만을 넘은 것이고,
이는 반대로 이야기하면
"이슈화될만큼 충격적인 사건+언론의 집중보도+정치적 논란의 여지 없음" 정도의 조합이 아니면
앞으로도 20만을 넘는 청원은 나오기 어렵단 이야깁니다.
자, 그런데 청와대가 자기 입으로 20만을 기준으로 삼았으니
앞으로도 정부의 입장에 유리한 청원이라 할지라도 20만이 안 되면 답변을 해 주면 안 되겠죠?
앞으로 여당이나 정부 입장에서 "이 청원이야말로 정국 돌파를 위해 좋은 키다!"라고 느껴지는 청원이 있어도
그 청원이 20만을 넘지 못하면 답변을 하면 안 됩니다.
즉 청와대는 자기 손으로 자기 발에 족쇄를 채운 겁니다.
"20만을 넘는 청원에만 답변하겠다"는 조건은
역으로 "아무리 좋은 내용의 청원이라도 20만이 넘지 않으면 답변해선 안 된다"라는 엄청난 제약이 되는거니까요.
20만이라는 숫자가 정말 왠만한 이슈가 아닌 이상 넘기 어렵다는걸 생각하면
시민 청원이라는 좋은 정치적 돌파구를 자기들 손으로 족쇄 채워서 식물인간 만든거예요.
앞으로 두고보면 이게 얼마나 바보짓이었는지 깨닫게 될겁니다.
정말 자신들의 기준대로 20만 이상 청원만 답변한다는 원칙을 지킨다면
소년법 이슈 정도의 큰 사건이 터지지 않는 한 앞으로 한동안 시민 청원이라는 시스템은 유명무실이 될 것이며
만일 청원 내용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그 원칙을 깨고 20만을 채우지 못한 청원에 답변을 한다?
.......그러면 그야말로 현 정부는 쉴드 불가가 되는거죠.
"20만 이상"이라는 말도 안 되게 높은 기준에 대한 현재의 불만을 더 키우지 않고 잠재우려면
최소한 앞으로도 20만이라는 기준을 칼 같이 지키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야 "정부 입장에 유리한 청원이라도 20만을 넘기지 못 하면 답변하지 않았다"라는 형평성이라도 내세우니까요.
그리고 이 기준을 칼 같이 지킨다면.....
어디 앞으로 시민 청원 중에서 20만을 넘는게 몇 개나 나오는지 봅시다.
*현 정부 비판한다고 일베니 알바니 국정원이니 뭐니 몰이하고 싶으시다면 최소한 제 아이디 눌러서 지난글보기라도 합시다.
제가 지금까지 베오베에 글을 25번 보냈는데 그 중 11번이 시사게에 쓴 글이었고
당연히 전부 문통과 민주당을 지지하거나 이명박근혜 정권/(구)새누리/안철수/국당을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