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김대중 평전 읽다가 기억나는 부분이 있어서 옮겨 적어봅니다. (정확히는 다른 책에서 인용된 구절이지만.)
'나는 한때 공산주의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 적이 있었다. 공산주의가 참으로 우리나라의 독립과 국민의 행복을 위한 유익한 주의인가를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윽고 공산주의와는 깨끗이 결별하게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나는 무엇보다도 민족의 독립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데 당시 접촉하고 있던 공산주의자들 가운데는 민족의 독립보다도 소련에 대해 충성을 다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8.15 광복 직후의 공산주의는 그런 면이 두드러졌다. 때때로, 그들의 입에서 '우리의 조국 소비에트 만세' 또는 '붉은 깃발만이 우리의 진정한 깃발'이라고 하는 따위의 말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의 민족주의적인 감정은 자극되었다. 나의 반발심이 자연히 표면에 나타나게 되자 그들의 미움을 사게 되었고, 급기야는 그들로부터 점차 떨어져 나가게 되었다.'
-김대중,행동하는 양심으로, p.36, 37-
비록 김대중이 독립운동가는 아니었지만, 민족주의자들에게 사회주의자들이 어떻게 보였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민족주의자에겐 민족의 독립, 민족의 국가가 최우선 과제였지요. 반면 사회주의자들한테는 국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노동자들의 이상향을 건설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소련을 추종한 것에 대해 비판을 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소련은 (실상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겉으로는 15개국의 연맹체였고, 밖에서 보기에는 사회주의자들의 이상향을 실현한 것으로 보였으니, 설사 사회주의자들이 이 소련을 조국처럼 생각하더라도 사상적으로는 그리 무리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독립후 연방에 가입할수도 있는 일이었고요. 물론 민족주의자들은 그들과 목적지가 전혀 달랐으니, 이들의 주장이 사실상 소련에게 나라를 팔아먹는거 아니냐고 생각할 여지가 있었죠. 거기다 나라는 중요하지 않으며 소련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이 협력해 이상향을 만들자는 주장은 어찌보면 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 사람들이 협력해 서양과 맞서자는 대동아 공영권과 사상적으로 비슷하게 들릴수 있었습니다.
즉, 대동아 공영권이 그랬던 것처럼 사회주의는 명분이고, 실상은 소련에게 나라를 갖다 바치는게 아니냐는 것이었고, 그렇기에 많은 민족주의자들이 사회주의자들을 매국노라며 친일파와 동급취급을 했죠. 김구 선생님이나 신익희 같은 분이 사회주의를 매도하며, 백의사 같은 단체로 김일성을 수류탄으로 죽이려 시도한 것 같은 백색테러를 이데올로기에 빠져 민족의 분열을 초래했다고 비난하는 경우도 있던데, 사실 이렇게 본다면 민족주의자들은 결코 사회주의자들을 용납할 수 없었던 입장이었던 거죠. 그들의 입장에서는, 또다른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