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방탄소년단 글이 많이 올라오길래 그냥 적어봐요. 미국에서 3개의 대도시를 번갈아가며 살아봤으며 주로 20대 학생들과 교류해온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다른 지역에 사는 분, 다른 연령대인 분들은 충분히 저랑 다른 경험을 하셨을 수 있어요. 미국은 인구만 3억명이 훨씬 넘다 보니..
넷상에서는 지나친 국뽕은 지양하려는 정서가 있어서 그런지 해외에서 케이팝이나 한국 드라마 열풍에 대한 기사를 봐도 반신반의 하고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많이 계신 것 같아요.
지난 7년간 미국에서 한국 음악과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지켜본 입장에서 일단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대중적이진 않으나 수요가 결코 적지 않다, 라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메인스트림이 아니라고 무시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인구 수만 3억명이 넘다 보니 마이너라 해도 시장 사이즈가 굉장하거든요 ㅋㅋ 미국 아이튠즈 현재 인기 앨범 차트 3위가 방탄 신보라던지.. 케이팝이 매니아층 위주로 먹히는 장르라고 해도 임팩트가 있는 건 사실이에요. 세상에는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어떤 사람은 클래식을 파고 어떤 사람은 뮤지컬을 파고 어떤 이는 락큰롤을 파고 어떤이는 케이팝을 파고 그런 거죠 뭐. 매니아들만 좋아하는 거 아니냐며 까일 이유는 없는 것 같아요.
일단 2012년 전까지는 동양계 미국인 중에 매니아들 중심으로 알음알음 한류가 퍼져있는 정도였어요.
대학 들어가서 처음 만난 중국인 친구가 나도 모르는 한국 노래를 아이돌부터 발라드까지 가사를 다 외우고 있었고
다른 중국인 친구와 브라질 친구는 시크릿 가든에 빠져 살았고
또 다른 중국인 친구는 대학 입학 전 1년 내내 자기 고향 길거리에는 원더걸스 노래만 나왔었다고 했었고..
어떤 흑인 친구는 케이팝 광팬이라 한국어까지 배울 정도였고
학교에는 케이팝 댄스만 전문으로 커버하는 댄스 동아리가 있었고 (빅뱅, 동방, 슈주..)
동네 펍에서 빅뱅 노래를 틀어준 적도 있었고
동양계 미국인 남자애들은 빅뱅 태양의 스웩이 넘사벽이라며 유튜브를 무한으로 돌려봤고
어떤 백인 남자애는 슈퍼주니어 노래가 catchy 하다고 (후크가 중독성있다고?) 좋아했고
기숙사친구였던 다른 백인 남자애는 케이팝 광팬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주변 사람들에게 소위 "덕후" 취급을 당했었고..ㅠ (왜 얘만..)
그런데 2012년 강남스타일이 나왔고 2013년에 엑소가 으르렁을 대박내면서 판도가 좀 바뀐 것 같아요.
제가 방탄 팬이고 방탄이 음원으로 미국에서도 좋은 성적내고 있는 건 사실인데 솔직히 엄청 대중적이라고는 할 수 없거든요?
근데 강남스타일은 정말 정말 대중적이었어요 ㅋㅋ
대학가 클럽에서도 금요일 밤에 강남스타일을 틀어줄 정도였고 (저는 한국인이란 이유만으로 미국 친구들한테 떠밀려서 노래를 제일 크게 불러주고 무대의 중심이 되어야만 했던.. ㅋㅋㅋㅋ) 요즘도 강남스타일 얘기랑 서울 광장에서 단체로 강남스타일 춤 췄던 얘기는 종종 나와요. 한국에 여행이라도 가는 미국애들은 강남에 있는 강남스타일 기념물에서 사진도 한 번씩 찍고 가구요.
케이팝이 뭔지도 모르거나 "남자애들이 화장하고 나와서 춤추는 이상한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의 인식을 조금이나마 바꿔줬었던 것 같아요. 케이팝에서 이런 cool한 것도 나올 수 있구나 하는 ㅋㅋ (미국애들은 좀 독특하면 다 쿨하다고 함)
그렇다고 일반 대중에게 케이팝이 엄청 특별한게 각인된 건 아니고 그냥 유행 한 번 휩쓸고 지나가고 또 잊고 그런거죠 뭐 ㅋㅋ
그리고 엑소의 으르렁을 기점으로 Kpop = choreography (안무)라는 공식이 더 확실하게 자리잡힌 것 같아요. 그 전에도 케이팝 안무 좋아하는 사람들은 있었는데 으르렁이 한 차원 레벨을 높여준 거에요. 아시안계 미국인이나 소수 비-동양계 마니아층 말고도, 춤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케이팝이 엄연히 하나의 댄스 장르처럼 자리잡았어요. 물론 그 사람들은 음악 자체가 좋은 거보다 안무 배우려고 동영상 보고 노래 듣는 거지만요.
제가 생각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뮤비의 퀄리티에요. 외국인들은 케이팝을 주로 유튜브를 통해서 접하게 되는데
제가 보기엔 우리나라 아이돌들 뮤직비디오 정말정말정말 X 1000000 잘 만들거든요. 최근 몇년간 계속 발전해왔고.. 2,3년만 지나도 뮤비들 퀄리티가 눈에 띄게 더 좋아져요. 고퀄리티 뮤비로 눈을 사로잡고 멋있는 군무까지 더해지니까 더 임팩트있게 다가가는 것 아닐까 해요..
마지막으로, 미국에서 메인스트림이라면 대부분 힙합, EDM, 팝 이런 장르이고 보이밴드는 백인 그룹이라도, 아무리 인기가 많아도, 완전히 대중적이라고 하기엔 뭔가 좀 그런.. 분위기가 있거든요. 근데 제 지론은 어딜 가도 보이밴드에 대한 수요는 있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전부터 웨스트라이프, 백스트리트보이즈, 핸슨즈, 원디렉션, 조나스브라더스 이런 그룹들이 뜨문뜨문이라도 나온 거고 크게 히트치고 인기를 얻은 거죠. 이 그룹들은 모두 인기도 엄청 많았지만 게이같다고 욕먹고 음악적으로도 까이기도 엄청 까였어요ㅠㅠ (게이같다는 게 절대 욕이 되어서는 안되지만 미국에도 개념없이 악플 다는 사람들은 많이 있답니다..) 이쁘장한 어린 남자애들이 나와서 발랄한 노래 부르는 걸 싫어하거나 무관심인 사람도 많지만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은 거죠. 방탄이나 엑소도 마찬가지일테구요. (방탄이나 엑소도 사실 이쁘장한 남자애들이 화장하고 춤춘다고 까이기 십상인데 그나마 칼군무랑 뮤비 덕분에 일단 한 번이라도 뮤비를 직접 본 사람은 반응이 괜찮은 편인 듯.. 거기다가 방탄 엑소 두 그룹 노래 모두 밑에 깔린 비트가 진짜 괜찮아요. 미국에서 잘 먹히는 스타일의 비트. 덥스텝 느낌이라던지 라틴 음악이랑 느낌 비슷한 뽕삘 나는 비트라던지. 은근히 그루브타면서 춤추기도 좋은 비트. 음알못이라 이 정도로만 묘사를 ㅠ)
하튼 방탄이던 엑소던 싸이던 해외에서 인기 얻고 있는 걸 굳이 의심하고 부정하고 깎아내릴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케이팝이 미국을 정복했다거나 대세라는 듯이 과장해서 생각할 필요도 없어요. 케이팝 마니아층이 점점 더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구나, 특히 안무는 정말 인정받고 있구나, 케이팝이 컨셉/음악/뮤비/안무를 모두 포괄하는 하나의 패키지같은 문화로 발전했구나, 정도로 좋게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