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5살에 군대를 갔다.
친구들의 "야 이나이에 친구 군대간다고 술마시러 나간다니까 엄마가 믿질 안으셔!" 라는 조롱을 뒤로하고
나는 해군에 입대했다.
해군은 자원입대이기 때문에 일찍 입대하는 녀석들이 많다. 그래서 25살인 나는 굉장히 나이가 많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
1. 훈련소 마치고 나서
함상 실습이라는 것을 했었다. 나는 해군이지만 배를 타지 않을 보직이었기 때문에 한 건지, 아니면 원래 다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에게는 유일한 승선의 추억이었다.
배를 타 보고 느낀 것: 배 안의 복도는 엄청 좁다. 배에서 주는 밥은 엄청 맛있다. 배가 겁나게 오래되었다. 등
배에서 생활하는 수병들에게 한번씩 오는 냄새나는 훈병들을 보는 것은 쏠쏠한 재미인 듯 했다.
그날도, 밥을 다 먹으니 몇명씩 줄지어 세워놓고는 여자친구 사진 있으면 꺼내 보란다.
나도 여자친구 사진이 가슴속에 있었기에 손에 들고 있었다. 슬금슬금 구경하며, 사진을 품평하며 다가오는 녀석들.
내 앞에 서더니,
"너.. 너는 몇살이야?"
"25살입니다. "
"아씨 우리 큰형보다 나이가 많네. 여자친구는 몇살이야?"
"24살입니다."
"누... 누님이시네. 그... 군생활 끝날때까지 잘 사귀시고 결혼 하세요."
그 녀석의 바람 덕분이었는지, 제대하고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2. 자대 배치 후
부대 특성상, 간부가 병 만큼 많았는데 그 중 덩치 큰 하사 하나가 나보다 딱 한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루는 한살많은 하사가 다가와 묻는다. "너 *** 학교 출신이라며? 누구누구 알아?"
"네!! 압니다. 그 형은 재수했지만 저랑 동기입니다."
"친해?"
"입학하고는 몇번 봤는데, 요즘은 못 본지 좀 되었습니다. "
"그 새끼가 내 선임이었는데, 나를 너무 팼어. 개X끼"
알고보니 병으로 입대하고 신분전환을 한 사람이었는데, 병 시절에 내 동기에게 정말 처참할 정도로 맞았던 것.
사실 친하다고 하면 나에게 잘해줄까 싶어서 거짓말로 친하다고 할까 했는데, 정직하길 잘했다.
3. 면회
여자친구는 면회를 자주 왔다. 끗발 없을 때는 눈치 보여서 면회 오라고 하기도 어려웠는데, 병장즈음 되니 자주 찾아와 줘서 좋았더랬다.
그날도 여자친구가 면회를 온다고 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면회소에 갔는데, 발걸음이 너무 가벼웠는지 좀 일찍 도착해 버렸다.
그래서 처음으로 면회 신청 일지(?) 인지 뭔지 하여간 인적사항 적고 하는 장부를 쓰는 걸 같이 보게 되었는데, 나와의 관계란에
[사촌누나] 라고 쓰고 있었다.
????????
이유를 묻자,
"다른 여친들은 다 20살 21살 이런데, 나만 나이가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개의치 않고 밥 먹고 잘 놀았다.
4. 제대
나와 함께 입대했던 동기들이 아침에 강당에 모여앉았다. 평소에 입던 셈브레이 당가리가 아닌 얼룩무늬 전투복을 입고. 마지막 날이다.
해군 지원부 부장이 나와서 일장 연설을 늘어 놓는다. 대령인데, 동기들은 별 달았는데 별 못달고 그냥 제대하게 된 아저씨였다.
하나마나한 이야기들, 수고 많았고 사회 나가서 어쩌고 저쩌고 해군의 긍지 등등등 서로간의 영혼없는 시간이 흘러가다가,
갑자기 공기가 바뀐다. "야 근데 니들 말야, ..." 하면서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자기도 곧 전역 한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하는데 사람이 인간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즐거웠다.
"근데 여기 나보다 형님도 한명 있네." 라는 핵폭탄 멘트를 날리기 전까지는.
뭔 소리인지 몰라서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나를 보고 웃고 있다. 내가 왜? 난 이제 27살인데 왜... 아직 서른도 안 되었는데 왜..
어리둥절 해 있는 나에게 친절히 설명해 주는 그 대령.
"얼마나 군생활을 열심히 했으면 뚜껑이 다 날아가셨어요. 형님"
군생활 중 스트레스로 인한 탈모도 보상받을 수 있는 그날이 오길 바래본다. 근데 너무 오래전 이야기라 나는 글렀다.
군대는 남들 가는 나이에 가세요. 그게 좋아요.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