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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 모솔, 나는 비가오는 날을 원한다
게시물ID : love_3592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urcielago
추천 : 3
조회수 : 58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9/18 17: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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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유난히 비가 많이도 내렸다. 빗줄기 내리는 소리가 커널 이어폰을 뚫고 들릴정도였다.

 

대학교 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마치고 나오려던 것이 밤 9시쯤. 나는 입구에서 우산이 없어서 발을 동동구르는 과동기를 만났다.



S형몸매와 긴 흑발이 너무나 매력적인 그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인뮤지스의 경리같은 고양이상 얼굴을 하고 있었던거 같다.

 

과를, 학교를 대표할정도로 타고난 미모였고 술자리에서마다 남자동기들, 선배들의 추파를 한몸에 받는것 또한 일상다반사였다.

 

 

그런 그녀를 내가 안면을 트고 지내게 된것은 과내 동아리에 함께 들어가면서부터 알게되었다.

 

그녀와 나는 의외로 코드가 맞는 부분이 많았다. 어떤 작가의 책을 좋아하는지, 어떤 꿈을 가지고있는지, 그걸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서로에게 좋은 파트너 같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꿈에 다가가기 위한 작업물들을 공유했고 서로에게 냉정하면서도 따듯한 피드백을 주곤 했다.

 

모든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살갑게 대해주는것도. 그런 그녀를 보면서 이성적인 호감을 품는것도. 그것이 절대 이루어질리 없는 사랑이었음을 내가 자각하고 있는것도 전부.

 

 

나는 못생겼다. 

 

못생긴 남자의 삶이란 별볼일 없는 것이었다. 온세상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자라는 과정은 이제는 무덤덤한 것이 되었다.

 

무도회 속에서 살고있다고 생각하려 애썼다. 모두가 가면을 쓴 무도회, 가면너머 진실된 감정을 보여주지 않는 허울뿐인 장소와 세계. 그것이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이었다. 껍데기뿐인 말과 그 속에 들어있는 경멸을 이제는 알고있었다.

 

타인의 호의에는 항상 경계심을 품었다. 우호적인 감정보다는 피해의식이 앞서있었다. 저 사람은 내게 무엇을 얻어내려 하는가. 추한 얼굴을 하고있는 나에게 무슨 볼일이 있어서 찾아왔는가. 전부 알고있었다. 볼일이 끝나면 또다시 버려질 것도, 그 뒤에서 나는 자괴감과 고독감에 몸을 잔뜩 웅크릴 것 또한.

 

그럼에도 거절하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세상 사람들과 소통을 하기위한 유일한 수단이었다. 내가 가진 무기였다, 아주 향기로운 꿀을 바르는 것. 비록 일시적이나마 내게 소속감을 가지게 하는것.

 

대화가 그리웠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짧은 즐거움이나마 누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에게도 마찬가지일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그녀는 내가 가진 꿀을 전부다 발라내고도 나에게 찾아왔다. 아주 못난 얼굴을 한 나와 어울리는것이 절대 어울리지 않는 그림임에도 그녀는 나에게 매일같이 포근한 인사를 하고 전날의 안부를 물었다. 부모님에게도 느껴본 적이 없는 따스한 감정이었다.

 

처음엔 몰랐다. 내가 가진것이 또 무언가 있는것인지 살피기도 했고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를 떠올리며 온갖 망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물론 이제는 알수있다. 그것이 그녀가 가진 천성이었다. 세상의 시선에 때묻지않은 순수함이 남아있는 보기드문 사람이었다. 나의 겉모습따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가진 꿈에 대한 열정과 노력을 알아주었다. 나같은 사람은 정말 처음본다고 말해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이성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따위가 그녀에게 이런 생각을 하는것 조차 죄라는것을 알고있음에도 그녀를 여자로서 좀더 알고싶다는 욕정이 생겼다.

 

 

그렇게 나는 그녀와 크지않은 우산을 같이 쓰고서 도서관을 나왔다.

 

비를 맞기 싫다는듯 그녀의 어깨와 팔이 나에게 달라붙었다. 비는 점점 더 굵게 내렸다. 중간고사에 관해서 시답잖은 잡담을 하며 버스정류장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그녀는 문득 요즘 새로 일자리를 구한 아르바이트에 대해 말해주었다. 역근처의 영화관인데 여름철이라 그런지 커플들이 많이 보인다고. 그런 모습들을 볼때마다 자신도 누군가 만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괜찮은 사람이 있냐는 내 질문에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같이 영화관 아르바이트를 하는 3살 연상의 오빠인데 훈훈하게 생겼고 친절하다고.

 

익숙했다. 누군가 나에게 떨어져 나가는것은 항상 겪던 일이었음을 알고있다. 다시는 나와 엮일 일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면 슬픔은 절반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나는 아주 괘씸하게도 그 3살 연상의 오빠라는 사람에게 질투심을 품었다.

 

그녀를 이대로 떠나보내기 싫었다. 누군가의 연인이 되어 점점 그녀의 삶에 나의 자리가 사라진다. 그것만은 막고 싶었다. 길지않은 인생에 나를 처음으로 진심을 담아 바라봐준 사람이다. 또다시 홀로 남겨지는것이 두려웠다.

 

 

그녀가 탈 버스가 올때쯤 나는 그녀에게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다.

 

나는 너를 좋아한다. 사랑하고있다. 물론 나는 어울리지 않을 사람이라는걸 알지만, 그래도 말을 하고싶었다. 받아들이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네가 정말 좋다.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당황한 것이 한눈에 보였다. 버스는 이미 지나가버렸고 나와 그녀는 한참을 침묵한채 다음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해. 그건 받아줄수 없어.

 

다음버스를 타기전 그녀가 내게 남긴 말이었다.

 

이거는 우정과는 다른 문제야.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할께. 나는 너의 좋은 친구는 될 수 는 있어도 애인은 될 수 없어. 너를 남자로 볼 수 는 없어.

 

너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싶어하는지 알고, 그걸 위한 노력도 하고있어. 그건 너의 가장 큰 매력이고 너라는 사람을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드러나는 진가야. 하지만 이거는 다른 문제인거 같아.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 말은 받아들일수가 없어.

 

괜찮아. 나는 그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단호한 그녀의 말 속에서 한번만 생각해달라는 것조차 무의미한 일이었음을 알았다.

 

그녀는 그렇게 버스를 타고 떠나갔다. 그 뒤로는 나와 조금씩 서먹해지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던 그날, 버스정류장에서 꺼냈던 나의 말을 의식하듯이.

 

 

나는 비가오는 날을 원한다. 시끄러울 정도로 비가 거세게 내리는 날을 원한다.

 

온 세상이 내게 다시금 따가운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던 그날을 떠올리고 싶다.

 

나에게 착각은 유분수라는 아주 큰 교훈을 줬던 날임에 틀림없다. 그 날을 떠올리며 나는 내 주제가 어떤 것인지를 배울 수 있었다.

 

알량한 용기와 그로인한 대가를 치뤘던 날. 나는 다시금 보잘것 없는 나의 존재를 자각하게 된다. 빗소리에 떠나보냈던 그녀와의 일들 또한 생각하게 된다.

 

매우 아련하게 지나간 날들, 아픔도 있으며 즐거움 또한 있었다. 아마도 다시는 겪지못할 즐거운 추억의 날들.
출처 http://m.ygosu.com/board/love/78779/?searcht=&search=&m3=real_article&frombest=Y&page=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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