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초저녁부터 시작된 동창회는 새벽안개가 깔리는 순간에도 전혀 파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잠시나마 파할 분위기로 가는 것 같기도 했었다. 윤호 녀석의 화장실 이야기만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쯤 민주의 풍만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윤호는 고등학교 때부터 모두가 알아주는 오락부장이었다. 옆 반은 물론이고, 전교생이 윤호를 모르면 간첩이었다. 녀석의 소문은 다른 학교에도 자자할 정도였으니까. 그런 녀석이 입을 열기 시작하자, 다들 배꼽을 잡고, 자지러지기 시작했다. 그가 시작한 화장실 이야기는 릴레이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시계 방향으로 이어지던 이야기는 이제 곧 내 차례다. 옆자리에 앉은 윤주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긴장감에 식은땀이 흐른다. 나는 윤호와는 달리 숫기도 없고, 누구 앞에 나서는 체질이 못된다. 소심하다는 A형에다가 말까지 조금 더듬는다. 윤주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허공에 손가락질을 해대며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럴수록 긴장감이 배가돼 오금이 저려온다. ‘아 어떻게 하면 좋지. 난, 할 이야기가 없다고......’ 그렇지 화장실을 간다고 하면 되겠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내 이야기는 건너 뛸 테지. 그렇다면 이렇게 신나게 이야기 하고 있는 와중에 어떻게 말을 꺼낸담. 이럴 땐 저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 그렇다면 손을 들고...... “저기...... 화장실좀 갔다 오면 안될까?” “응?” 일순간 사위가 조용해졌다. 난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며, 두리번 거렸다. 윤호가 말을 꺼냈다. “뭐라고 했어 방금?” “화, 화장실좀 갔다 온다구......” “뭐?” “풉.......” 여기저기서 피식 거렸다. 이게 웃긴 일인가. “그런건 말 하지 않아도 돼.” “아....... 그래 다녀올게......” 윤호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화장실로 들어서려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전을 간질였다. “일일이 허락받고 다니는 곳인가 화장실이? 우리가 엄마도 아니고, 쟨 아직도 저러니?” “윤주야 듣겠다. 조용히 말해......” “야 윤주 니 이야기보다 이게 더 웃긴다. 화장실 에피소드는 이쯤하자.” “뭐!” “윤호 이야기에 배꼽좀 잡았다. 간만에 뒷골땡기는 이야기였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민호 이야기도 재밌었어. 무섭긴 했지만, 옆칸에서 목 매단 사람이 내려다보고 있으면, 난 오줌을 지릴걸?” “지려도 돼. 화장실이니깐.” 하하하. 하하하. 모두들 웃고 있다. 날 흉보던 윤주도 언제 그랬냐는 듯 호탕하게 웃는다. 갑자기 구역질이 났다. 화장실로 달려가는데, 안경을 낀 주점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피식 웃었다. 나는 화장실 빈칸으로 달려가 좌변기에 냅다 머리를 박았다. 고인물에 머리카락이 닿을 정도로 얼굴을 박자 그제야 살 것 같았다. 고개를 숨긴 꿩이 된 기분이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니 잠시는 괜찮을 것이다. 다시 고개를 드는 순간, 날 겨냥한 일침의 손가락들이 들이 닥칠 것이다. 나는 좌변기에 조용히 앉았다. 직사각면체의 조용한 공간. 편안하다. 잠시 쉬고 싶었다. 아니 이대로 자리가 파할 때까지 이곳에 있고 싶었다. 어차피 날 찾을 리도 없으니까. “아 씨바. 그게 아니라니까요. 성님!” 옆 칸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담배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천장에 뿌 연 담배연기가 그득했다. 아무래도 옆 칸의 남자가 담배를 피우며 일을 보는 모양이다. “나가 한방에 보냈지라. 나가 뭐라고 했소? 성님 괴롭히는 새끼는 다 죽여버린당께!” 귀를 의심했다. 다 죽여버린다니. 게다가 한방에 보냈다니. 내가 상상하는 그것이 맞을까. 설마 이건. 아니겠지. 아닐거야...... “뒷처리요? 지금 하고 있지라. 걱정붙들어 매쇼. 큰집에 가도 나가 갈텡께. 성님이 대타 시키는게 아니라, 나가 한 일이니까. 성님은 아무죄 없소. 알것소? 감동했소? 아따 끊으쇼. 에? 오긴 어딜온다 그러요? 나가 처리한다니까!” 다리가 저린다. 방금 까지만 해도 편안했던 이 좁은 공간이 점점 좁아져 내 몸을 짓누르는 것만 같다. 어쩐다. 저 남자의 말대로라면 난 살인자와 불과 몇 십 센티미터 떨어진 공간에 있는 셈이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그래 조용히 있으면 모를 거야. 조용히 있으면. 나는 옆 칸막이에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발아래서 뭔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아뿔싸! 남자의 그림자였다. 공공화장실은 칸막이가 조금 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남자의 그림자가 보인 다는건, 내 그림자가 보인다는 사실이기도 했다. 들키면 모든 게 끝장이다. 나는 천천히 다리를 움직였다. 좌변기에 왼쪽 다리를 올리면서 그림자를 주시했다. 순간 남자의 그림자가 멈칫했다. 동시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계속해서 그림자를 주시하며 두 다리를 모두 변기 위에 올렸다. ‘조심스레 일어나자. 그래서 조용히 옆 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 하는거야.’ 그렇게 마음먹으며 일어서려는데,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짙어진 담배냄새. 그리고 멈춘 그림자. “아야. 뭐허냐?” “으아아악!” 발이 미끄러져 좌변기에 왼발이 빠지고 말았다. 남자가 천장에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난 벽에 손을 짚고, 멍하니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면이 있는 얼굴이었다. 저녁부터 옆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던 세 남자중 한명이었다. 그 자리는 한참 전에 파 했는데...... “다......들은겨?” “뭐, 뭘요!” “뭐, 뭐긴! 전화통화 다 들었냐고 묻는거여” “아, 아니요!” “아따 쓰벌놈이 말더듬기는 거그 가만히 있어라. 오늘 저승보낸 아가, 혼자 갈 운명은 아닌가보다. 노잣돈 보다는 야. 길동무가 좋것제.” 그 말을 끝으로 순식간에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남자가 내가 있는 칸 문을 걷어찼다. 쿵! 그 소리가 내 심장이 터지는 소리같았다. 남자에게 잡혀 죽기 전에, 먼저 심장마비로 죽을 것 같았다. 어떡해야 한다. 어떡해야 한다. 갑자기 왼손 중지가 아려왔다. 손가락을 보니 피가 나고 있었다. 긴장한 탓에 손톱을 너무 심하게 물어뜯은 탓이었다. “어차피 뒈질 거 나와라 씨벌놈아. 문 열고 나오면, 장기는 안 팔 테니까.” 쿵! 남자가 또다시 문을 걷어찼다. 화장실 칸이 통째로 흔들렸다. 아무래도 곧 부서질 것만 같았다. 난 휴대폰을 누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바로 옆에 있는데, 전화하면 찾으러 오겠지. 신호음이 갔다. 억겁의 세월처럼 느껴졌다. 또다시 남자가 문을 걷어찼고, 문고리가 살짝 휘었다. 손이 떨려온다. 받아라 제발 받아라. 윤호야. 받아라. “여보세요?” “유, 윤호야. 나 화장실인데 잠깐만 와줄래?” “뭐야? 미친놈아. 아직도 그 주점 화장실이냐?” “뭐......?” “자리 파 한지가 언젠데, 아직도 거기 쳐박혀 있냐. 오바이트라도 하냐?” “그, 그게......” 말문이 막혔다. 수화기 넘어로 윤주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교태섞인 목소리가 이어지는 것 같더니, 곧 전화가 끊겼다. “씨벌놈아 신고허냐?” 두 손이 주체 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려온다. 공포와 배신감으로 정신이 아득해진다. 죽는다. 쿵! 문짝이 휘청거린다. 문고리가 ㄱ자로 꺾이고 있다. 잘해야 두 번을 버틸까. 배신감에 치가 떨린다. 차라리 경찰에 신고를 해야겠다. 시간이 있을진 모르지만, 시도는 해봐야 할 터다. “제발, 제발......” 1번을 누는 데도, 여러번 실패 했다. 겨우 ‘112’를 누르고 신호음이 가는 와중에도 격렬한 떨림이 지속됐 다. 그러다 결국 휴대폰을 손아귀에서 놓치고 말았다. “안돼!” 휴대폰은 문 사이에 떨어졌다. 쏜살같이 휴대폰을 향해 손을 내 던졌지만, 남자가 나보다 빨랐다. 남자가 잡아챈 휴대폰을 벽에 던졌는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아니지. 이 씨벌놈아 우리 둘이 있는데 다른 사람 끌어들이면 안돼지. 곧 문짝이 뽀개질거 같은데, 어때? 이제 텨 나오는게?” “저, 저기요. 저 아무것도 못 들었거든요 진짜로!” “못들었다고?” “네. 진짜로......” “그래? 그람 나가 쪼까 선심 써서 살려주면 되는 건가?” “그, 그렇죠.” “그, 그런가?” “하하하. 노여움 푸시고, 선생님은 갈길 가시고, 저도 갈길 가고......” 칸 막이 사이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럼 이렇게 하지.” 잠깐의 정적을 깨고 남자가 말을 꺼냈다. “나가 말이지 쪼까 전에 사람을 죽였지라. 한 열방 줬나? 워메 어찌나 피가 뜨끈한지, 목이 말라 칼구녕에 혀 찔러 넣고, 쪼까 빨았더니, 달큰한 게 직이더만. 자 이제 돼았지? 나가 말 다 해줬으니까 들었지? 이제 군말 없이 뒈져라 씨벌놈아!” 쿵! 문짝이 덜컥거렸다. 풍전등화처럼 위태롭게 느껴졌다. 어떻게 하면 좋지. 도대체 저 미친놈으로부터 어떻게 빠져나가야되지. 갑자기 민주가 보고 싶어졌다. 내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그녀 뱃속에 자라는 내 아이.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마음이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지금 이곳에서 탈출 하는 것은 소중한 것들을 지키는 것. 그렇게 생각하자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았다. “그만 좀 차. 이 씨발새끼야!” 내 외침에 남자의 그림자가 주춤했다. 나는 용기를 내어 변기 위에 서서 바깥을 내다보았다. 남자가 어이없는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손에는 방금 전에 살인할 때 쓴 것처럼 보이는 칼이 들려 있었다.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는 걸로 봐선 남자의 말이 거짓 같지는 않았다. 피를 보자, 다시금 심장이 두방망이질 쳐댔다. 나는 최대한 허세를 부려야 했다. 아니면 저새끼를 죽이던지. 타개책은 손에 꼽을 만큼도 없다. “동업자 끼리 왜이래?” “뭐? 동업자?” “그래 넌 어디서 굴러먹은 새낀진 모르겠지만. 들어는봤냐? 직업여성 만 노린다는 연쇄살인범.” 나는 며칠 전 뉴스에서 떠들어 대던 연쇄살인범을 이용하기로 했다. “뭐? 그게 뭐 이 씨벌놈아.” “그런데 이 씨발놈이 입이 걸레냐!”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나오는지 나도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거울이 있다면, 욕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싶었다. 욕을 먹긴 했어도, 누군가에게 하는건 난생 처음이었다. “오라, 그 형씨가 너란 말이지? 뉴스에도 뜨고, 신문에도 대문짝하게 난 그 연쇄살인범 형씨가 너란 말이지?” “그래 이 씹새끼야! 그러니까 문좀 그만차고 시체나 처리하란말야. 입 싹닫고, 사라져 줄테니까!” “근데 이거 미안해서 워쩌냐? 내가 죽인 형씨가 그 형씬데?” “뭐?” “넌 그만한 연쇄살인범이 몽따주 하나 없을 것 같냐? 한번 면상좀 봐라야. 옆 칸에 모셔놨으니까.” 아뿔싸. 몽타주. 그래 녀석의 말대로 그 범인은 몽타주 전국팔도에 다 뿌려졌을터다. 사실 이 가게 들어오기 전에도 전봇대에 붙여져 있는 걸 봤다. 근데, 뭐라고? 옆 칸에 뭐가 있어? “옆 칸에.......?” “그래 옆 칸에 내가 모셔뒀지. 낄낄.” 나는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면서, 몸을 기울였다. 조심스레 옆 칸을 내려다보았다. “이, 이.......” 차마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참혹한 광경이었다. 목에만 여러개의 자상이 있었다. 부릅뜬 두 눈 때문에,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분명히 연쇄살인범이 틀림없었다. 이런 우연의 일치가 또 있을까. 시체는 다리가 구부러져 무릎을 꿇은것처럼 되었고, 허리는 변기 때문에 꺾여 있었다. 그 상태에서 얼굴은 허공을 보고 있었다. 힘 없이 축 쳐진 시체의 옷이 눈에 익었다. 그렇다. 이 시체도 아까 저 남자와 함께 술을 마시던 사내중 하나다. 시체가 살아 있을 때 썼을 모자가 지저분한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기가 맥히지? 핏자국도 하나도 없고 말여, 나가 이래보여도, 사람 많이 죽였제. 시체처리는 일도 아니제. 크레파스로 치면 은색, 금색 두 개씩 들은 걸로다가 한상자 정도는 쥑였제!” 쿵! “그러니까 너도 살 생각은 말아라잉!” 남자의 발길질에 드디어 문고리가 떨어졌다. 쇳덩어리인 문고리가 이리도 쉽사리 떨어지다니. 나는 남자가 문짝을 밀치고 들어오려는 순간 바닥에 떨어진 문고리를 들고, 변기 위에 올라섰다. 죽기 아님 까무러치기다! “야이 씨발 새끼야!” 소리를 지르며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예상치 못한 나의 공격에 남자는 들고 있던 칼을 휘둘렀다. 허나 내가 조금 더 빨랐다. 이종격투기로 치면 마운트 자세로 돌입한 내가 문고리를 쥔 손으로 남자의 면상을 갈겼다. “이 씨발 새끼가. 왜 사람을 괴롭히고 있어. 왜! 왜! 왜!” 퍽. 퍽. 퍽. 남자의 눈이 점점 뒤집어 지는 것 같았다. 다시한번 남자의 면상을 한방 먹이려는데, 머릿속에서 섬광이 튀 며, 옆구리에서 아찔한 고통이 느껴졌다. “아악!” 남자가, 내 옆구리에 칼을 꽂아 넣은 것이다. 피가 주체 할 수 없을 만큼 불컥불컥 솟아나왔다. 피를 보자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진짜다.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 내가 주춤하는 사이 남자가 휘청거리며 일어섰다. 나는 주저앉은 채로 남자를 노려보았다. “이 씨벌놈이...... 죽는가 알았네. 주먹이 쪼매 맵다싶더니. 쇳덩어리를 들고 있네. 고것이 뭐여. 문고리여?” 남자가 다시금 칼을 들었다. 그리곤, 혓바닥으로 방금전까지 내 피였을 그것을 할짝였다. “맛있구마잉. 공포에 옴짝달싹 못하는 사람 피 맛은 역시 다르제. 어떻게 회를 쳐 줄까나. 이히히히.” “이, 이 씨발놈아!” 나는 소리를 지르며 손에 쥔 문고리를 남자의 면상에 냅다 던졌다. 운이 좋게도 남자의 얼굴에 명중한 건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가 뒤로 고꾸라졌다. “억!” 남자의 거구가 쓰러지자 쿵 하는 소리가 울렸다. 남자의 몸이 얕게 떨리고 있었다. 쉽사리 일어나지 못하는 걸 보니, 일이 잘 풀리는 듯 했다. 아무래도 남자는 머리부터 바닥에 꽂혀, 뇌진탕 증세를 보이는 듯 했다. 여유를 부릴 새가 없다. 저렇게 경련하는 와중에도 남자는 칼을 손에서 놓치지 않는다. 나는 주춤 주춤 일어섰다. 쓰라린 고통이 옆구리를 관통한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지만, 이를 악물었다. 일어서자 남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두 눈을 까뒤집고, 거품을 물고 있다. 아무래도 내가 아직 죽을 운명은 아닌가 보다.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제 나도 친구들과 함께 할 이야깃거리가 하나 생긴 셈인가. 나는 옆구리에 손을 얹고, 주춤 주춤 걸었다. 화장실 입구에서서 돌아보았다. 남자는 여전히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려는 찰나, 누군가 바깥에서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어.” “어?” 안경을 낀 주점 주인 이었다. “아니 주점 주인 이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시끄러운데 한번 들여다보질 않아요......” 난 안도한 나머지 다리가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주점 주인은 천천히 화장실로 들어서더니 말했다. “저거 당신짓이에요?” “예? 아, 뭐...... 그것보다, 저 미친놈이 살인범이라구요. 얼른 112에 신고해요. 그리고, 화장실 마지막 칸에 시체가 있어요. 그놈도 살인범인데. 아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얼른 신고부터 해요.” 내가 이렇게 말을 잘했던가. 아무래도 난 이 일을 계기로 조금 더 외향적인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주점 주인이 조금 이상하다. 휴대폰을 꺼내고, 신고를 해야 할 텐데, 천천히 거품을 물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간다. “당신이 이랬단 말이지요......” “그렇다니까요?” “하...... 녀석도 참. 내가 온다니까. 혼자서 일처리를 하겠다더니......” 주점 주인이 남자의 손에 들린 칼을 빼들고, 일어선다. 그리고 주저앉은 내게 천천히 다가온다, “이토록 시끄러운데 왜 한 번도 안 들어봤냐고 했나요? 그거 아시나? 가게 셔터는 내려진지 오래됐답니다.” 욱신거리던 옆구리가 편안해진다. 아드레날린이 전신을 또다시 휘감기 시작한다. 이야깃거리가 하나 더 늘어날 지도 모르겠다. 출처 : 웃긴대학 공포게시판 '코요태와방3'님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