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퇴사를 말하고 오늘 마지막으로 회사 문을 나섰다. 여러 부조리와 굴욕의 순간들은 언급하지 않은 채 개인사정으로 대충 둘러대었다. 남은 기간을 좋지 않은 낯으로 일할 자신이 없었다. 늘 남을 겁내하고 사랑받지 못함을 무서워했었으니 퇴사의 이유가 명백히 회사였어도 회사라 말하지 못했다.
건물을 나서는데 코끝에 찬 기운이 스쳤다. 아, 가을냄새다. 어쩐지 해도 평소보다 조금 일찍 숨은 듯 했다. 간만에 보는 주황빛 하늘이다.
찬 바람의 간질거림을 느끼며 앞으로를 생각했다. 여태 세 번의 퇴사 경험이 있지만 앞날을 정해두고 그만둔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예전엔 이런 내가 무책임하다거나 우발적이라거나 대책없는 사람이라며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겼었지만 이제는 그럴 기운도 없다. 그리고 이미 나는 대외적으로도 한심한 사람이었기에 스스로를 비난하는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이상하게 이맘때쯤의 바람은 그냥 간질이는것이 아니라 어딘가를 저릿하게 한다. 세 번의 퇴사 시기와 꼭 맞물려서 일까. 이 시간쯤 지는 해와, 코에서 맹한 맛을 느끼게 만드는 이 바람은 내가 뭐든 될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하면서 또 너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야라는 말을 동시에 하는것만 같다.
한 해의 끝을 알리는 계절이 왔음은 기쁜일만은 아닌데. 이 바람을 처음 느낄때의 내 상황은 짜증나리만치 매년 똑같은데도. 반갑다. 따뜻한 봄바람보다도 더욱. 오늘은 뭐든 할 수 있을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