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다보니 놀이터 앞동 저층에 집을 얻어 2년째 살고 있다
지친몸을 이끌고 주말에 낮잠이라도 잘라고 하면
꺄르륵 웃는 소리, 꺄악 소리에 머리가 찌근거렸다
특히 여름이면 아이들을 위해 분수대도 틀어주는데
아이들의 흥분상태는 최고조로 올라간다
아무리 더워도 나의 신체적 정신적 생존을 위해서 이중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얼마전 엄마가 우리집에 며칠 머물다 가셨다
잠깐 일을 쉬고 있는 나와 함께 하루종일 집에서 쉬고 있는데
- 너네집은 절간 같이 왜 이렇게 조용하냐
라는 말씀에 보란듯이 이중문을 열었다
깔깔거리는 아이들 소리가 바람에 타고 집안을 가득 채웠다
나도 좋아서 문 닫고 사는거 아니거든요 라고 말하며 엄마를 쳐다봤더니
- 애들 소리들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참 좋다. 집 좋네
라는 황당한 말씀. 엄마는 정말 기분좋은듯 웃고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어린시절 나와 젊은 시절 엄마 이야기
골백번은 더 들었던 이야기를 대충 흘려듣고
며칠 후 엄마는 당신이 살던 고층아파트로 떠났다
오늘 문득 살랑이는 바람을 쬐려고 문을 열었더니
어느날과 다름없이 아이들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어온다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젊은 날의 엄마와 아빠, 그리고 세상 걱정 없이 뛰어돌던 나와 오빠의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랑받으면 살고 있던 그때를 말이다
그시절 나를 떠올리면 오로지 '행복'이란 단어만이 떠오른다
그토록 행복했던 적이 있었을까..
문득 아이들이 그 행복한 시절속에 살면서 행복의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마음이 뭉클하면서도 질투심이 들었다.
나도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미친듯이 행복의 비명을 내지를 수 있을 텐데, 누구보다
크게 웃고 울고 사랑할 수 있을텐데..
'나는 어린애들 싫어'라고 외치고 다녔던 나는
사실 아이들을 질투하고 있었던게 아닐까
카페에서, 식당에서, 아무생각없이 꺄르르 웃으며 이곳저곳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그 모습을 '예의없다'라는 공격적 문장으로 포장한 채
나는 아이들을 부러워하고 있었던게 아닐까
걱정이 없으면, 또 다른 걱정을 만들어내는 강박적으로 예민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모든 것이 두렵고 모든것이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시내버스 뒤에 혼자 앉아있는 남자의 행동이 이유없이 두렵고
내 옆자리에서 메신저를 하고 있는 저직원의 메신저 속 주제가 나일까봐 두렵다
전화기 속에 오늘도 고객은 화가 난 채 이야기를 시작하고
팀장은 실적표를 들이밀며 화가 난 채 월요일 회의를 시작한다
이제 문을 열고 싶다
어리다는 이유로, 어른처럼 행동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나보다 약해보이는 아이들을 미워하고 증오하지 말고
더 나이 많고, 더 어른이지만 어른처럼 행동하지 못하는 강한 사람을 극렬하게 미워해보고 싶다
이제 문을 열고 싶다
그 아이들이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그 순간을 마음 껏 즐길 수 있도록,
그 해맑은 모습속에서 순수했던 내 자신을 찾아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