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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9일
어두컴컴한 방 한구석에 먼지가 쌓인 채 낡아빠진 라디오에서는 잔뜩 잡음섞인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 애하는.. 국.. 여러분.. 오늘도... 께서는.. 현장의.. 참..함을... 비통..게 ...여기시..
하지만.. 걱정하...필요는.. 없습니.... 그분의 말씀은 항상 옳으십니다"
알아듣기 힘든 잡음이었지만,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 중 마지막 말 만큼은 확실하게 들려왔다.
"그분의 말씀은 항상 옳으십니다."
라디오만큼이나 낡아빠진채 먼지 쌓인 카메라를 닦고있던 늙은 사진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떡였다.
"..여러분 께서는 동요하시지 말고.. 언제나 ....와 나라를 ..해... 옥... ..오를.. 가...시기.. 바랍.."
얼마전에 있던 큰 사건에 대해 알려주던 라디오는 언제나말했던 멘트를 끝으로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암, 그분은 항상 옳으시지. 아무렴.'
사진사는 카메라를 연신 닦아대며 생각에 잠겼다.
당시 세계2차대전의 여파로 인해 온세계가 전쟁터였고
사진사의 나라 역시 전쟁 중이었다.
처음 전쟁이 일어났을때 그분께선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로 만들겠다는 약속을.
사진사는 그 연설을 듣자마자 나라에 대한 애국심으로 가슴이 끓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의 우려속에서도 청년들과 같이 직접 군대에 자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진사는 노쇠한 나이로 인해 입대하지 못했고
그저 전쟁터로 나가는 청년들을 응원할 수 밖에 없었다.
사진사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분의 말씀은 항상 옳으셨다.
사진사의 나라는 다른 침략자들을 비웃듯 언제나 승리했고 점점 더 커져갔다.
나라가 강대해지니 사람들의 생활환경 역시 좋아졌고 한동안 모든것이 꿈만 같은
시절이 찾아왔다.
전쟁 이전 초라했던 마을의 사진관은 어느새 5배나 넘는 큰 규모의 사진관이 되었고
나날이 전쟁중 자식들과 애인에게 보낼 편지에 넣을 사진을 찍기위해 북새통을
이루기 시작했다. 사진사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분의 말씀은 역시 옳으셨다.
이후 전쟁이 길어지기 시작하자
한통, 두통 날아오는 자식과 애인의 전사통지서를 받는 마을 사람들의 표정엔
하나 둘, 걱정과 의심, 그리고 슬픔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런것들과 달리 라디오에서 간간히 들리는
군인들의 소식과 나라의 승전보는 연일 점점더 목소리를 높혀갔다.
"우리의.. 용맹..군인들..은...마..에서..놈들...에게....를 영광.... 승리...였습.."
사진사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분의 말씀은 항상 옳으셨다.
이윽고 점점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자
비행기와 총을 만들기 위해 집안의 재물까지도 징발 당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고
얼마 전에 있었던 나라의 큰 재난까지 겹치자 사람들의 얼굴엔 미소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사진사는 그런 사람들이 진정한 애국심을 가지지 않은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생각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그런 자들이라고.
사진사의 환경또한 전쟁의 경과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기나긴 전쟁으로 인해 일반인들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사치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발길이 뜸해져 주문이 끊어진지 오래였다.
'나라와 그분이 원하십니다.'
아무도 찾지않던 사진관에 한 무리의 군인들이 찾아와 자신의 목숨같은
촬영장비들을 징발해갔을 때에도 군인들이 꺼낸 그분에 대한 말 한마디에 사진사는
작은 카메라 하나만을 남긴채 모든 촬영장비들을 기꺼이 그들에게 내 주었다.
결국 사진사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지만 라디오의 목소리는 그에게 삶의 희망을 불어넣었다.
"...께서는... 힘든..국...을..위해 앞으로... 여러가지...획을... 조...만... 버티시....";
사진사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분의 말씀은 항상 옳으셨다.
사진사는 농기구를 붙잡은 채 집앞의 작은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농사일은 사진을 찍는 일과 달리 너무나 힘들었지만 라디오에서 울리는 나라의 승전보와
간간히 들을 수 있는 그분의 목소리는 하루동안의 피로를 녹여주는 활력소가 되었다.
그렇게 손에 맞지않는 농사를 지으며 하루 하루를 보내던 사진사에게
어느날 교회의 장로가 앞으로 다가올 종교행사의 사진을 찍어달라며 촬영을 의뢰했다.
셔터보다 농기구가 더 익숙해져버린 사진사에겐
교회의 의뢰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 너무나 달콤한 이야기였다.
장로에게서 약간의 음식과 돈을 약속받은 사진사는 8월 9일 오전 7시 경 암실에서
작은 카메라를 챙긴 채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자신의 집을 나섰다.
행사의 시작시간은 오후였지만 너무나 들뜬 사진사는 개의치 않고 주변의 풍경들을
연습삼아 카메라의 앵글에 담으며 길을 걸어갔다.
한시간이 지났을 무렵 그는 걸어가던 길을 잠시 멈춘 채 생각에 잠겼다.
바로 하늘이 문제였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언제든 비를 쏟아내릴것만 같았고
날씨가 좋지않아 자연광에 대해 고심하던 사진사의 귀에 천둥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르르릉"
낭패였다. 만약 사진을 찍다 비가 내린다면 제대로 사진을 못찍을 텐데...
" 우르르르르릉- "
천둥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기 시작하자 사진사는 문득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천둥소리가 가까워진다니..?'
그의 머리속에서 얼마 전 라디오에서 들었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군의 비행... 공습이 점.. ...거세지.... 소리가...대피...'
잘 들리지도 않는 낡아빠진 라디오에서 들었던 그 이야기와 얼마전 나라에 있었던 큰 재난의 이야기들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의 싸이렌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사진사는 곧 소리의 정체를 깨달았고, 황급히 주변의 큰 나무를 찾아 머리를 눕힌채 몸을 숙이기 시작했다.
그가 잔뜩 겁먹은 채로 하늘을 쳐다보자 먹구름 사이로 바로 적군의 비행기가 육중한 소리를 내며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마치 하늘을 찢는듯이 크게 울려퍼지는 소리는 점점 사진사의 귀를 때리기 시작했고 사진사는
나무밑에서 공포에 벌벌 떨며 몸을 숙일 수 밖에 없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하늘에서 울려퍼지던 비행기 엔진소리와 함께 마을에서 울려퍼지던 싸이렌 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공포에 떠는 자신의 모습을 누군가 보진 않았을까 걱정하던 그는 잠시동안
주변을 살피곤 바지를 털고 일어섰다.
곧이어 방금전의 소란으로 인해 행사가 취소될 것을 우려한 사진사는 곧장
마을로 달려갔다.
뜨거운 8월의 날씨로 인해 달리는 사진사의 얼굴엔 온통 땀투성이가 되었고
간만에 빼입은 정장 또한 푹푹 젖어갔다.
그렇게 한달음에 마을 입구에 도착한 사진사는 품안에 사진기를 꼭 쥔채로 거센 숨을 몰아쉬며
헉헉대고 있었고, 사진사가 저 멀리서 달려올때 부터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마을처녀 하나가 병에 담은 물을 사진사에게 건냈다.
"여기 물이요."
허겁지겁 물을 마신 사진사는 거칠어진 숨을 고르기 시작했고 그녀에게 말을 건냈다.
"고맙소."
"무슨 말씀을요."
"혹시 오늘 행사는 어떻게 되었소?"
사진사가 물어보자
"그렇지 않아도 장로님이 마을사람들을 다 광장으로 부르셨어요."
멋쩍게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 사진사의 눈에
그제서야 주변의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온 마을사람들이 광장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늙은 남자와 여자, 꼬마아이들과 앳되보이는 처녀들.
이미 입영한 젊은 청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제외하면
거진 모든 마을사람들이 모인듯 했다.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광장 중앙으로 모이기 시작했고 연신 방금 전
사태에 대해서 서로 웅성거리며 이야기를 떠들어대어 매우 시끌벅적했다.
"모두들 잠시만 조용히 해주십시오."
원중앙에 서있던 장로가 헛기침을 하며 크게 소리치자
웅성거림은 곧 잦아들었다.
"다들 여기 모이신 이유는 굳이 설명안해도 다들 아시겠지요?"
장로는 주위를 둘러보며 이야기를 계속 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 적군의 비행기가 우리의 마을을 지나쳐 다들 많이 놀라셨을겁니다.
하지만 방금 전 우리의 군대가 성공적으로 적군을 후퇴시켰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러니 모두들 개의치 마시고 오늘 있을 행사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장로의 말을 듣던 마을 주민들의 얼굴엔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아울러 무례하게 우리 영공을 침범한 적군의 비행기를 격퇴한 그분의 군대를
위해 국가를 제창하겠습니다."
장로가 그렇게 운을 띄우며 국가를 선창하자 모든 마을 주민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사진사 역시 목청높여 그분과 나라의 군대를 위해 국가를 부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분은 항상 옳으시다.
"멍청한 놈들!"
마을광장이 떠나가라 울려퍼지던 국가를 부르던 사람들 사이로 술에 취한 한 남자가
비틀거리며 욕지기를 뱉어대자 순식간에 고요가 찾아왔다.
낮부터 거나하게 취한 남자의 모습은 꼴볼견 그 자체였다.
낡은 군복과 여기저기 붕대로 몸 여러군데를 둘러싼 흔적, 그리고 보이지 않는 팔 한쪽
얼마 전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온 상이군인이었다.
"댁들이 뭘 알아? 그분의 군대? 지랄들 하고있네!"
상이군인의 거친 욕설은 온 마을사람들의 표정을 찌푸리기 충분했지만 그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격퇴같은 소리 좋아하네. 다 거짓부렁이야. 애초에 우리는 그놈들 비행기를 제대로 잡지도 못해.
그냥 못 쫒아간거 뿐이겠지. 그분이고 나라고, 라디오에서 그새끼들이 하는 소리는 죄다 거짓말 뿐이야."
상이군인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 사이로 그를 욕하는 소리가 하나 둘씩 터져나왔다.
"조용히 해! 병신 같은 새끼야!"
"목숨이 아까워서 혼자 도망쳐온 겁쟁이 새끼!"
"차라리 전쟁터에서 죽어버리지 그랬냐!!"
하나 둘 터져나오던 상이군인은 향한 욕설은 어느덧 마을사람들 전체로 퍼져나갔고 언제
주웠는지 모를 돌맹이들이 상이군인에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사진사 역시 성난 표정으로 상이군인을 노려보고 있을 무렵
"뭣들 하는 겁니까. 그만들 두시오!!"
그 모습들을 바라보던 장로가 크게 소리쳤다.
"아무리 그래도 그분과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쳤던 영광스런 군인입니다. 그를 존중해주시오! 그리고 당신 역시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쳤던 사람이라면 이런 자리에서 그런 험한 말을 하는것은 적절치 못.."
"웃기지마.. 댁들은 몰라.. 우리가 무엇을 봤는지.. 무슨 짓을 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아는지.."
비틀거리던 상이군인은 말을 제대로 끝맺지도 못한 채 고꾸라졌다.
"저분을 병원으로 아무나 데려가시오.
소란은 이쯤에서 정리하고 어서들 행사 준비의 마무리를 서둘러 마쳐주시기 바랍니다."
장로의 말에 마을주민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련의 일을 바라본 사진사는 그 상이군인이 맘에 들지 않았다.
어째서 감히 그분과 나라를 위해 싸우는 군대를 욕할수 있는가.
하물며 그분과 나라를 위해 헌신한 군인의 신분이었던 자가..
사진사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분의 말씀은 항상 옳으셨다.
하지만 사진사에게 더 이상 그런 생각에 잠겨있을 시간은 없었다.
카메라를 한동안 만지지 않아 굳은 손을 풀기위해 움직여야 했다.
그는 다시 주변의 풍경을 뷰파인더에 담기 시작했다.
온전히 사용할 수 필름이 몇개 남지않아 사진을 찍지못해 사진사는 아쉬웠지만,
카메라의 셔터를 만지며 뷰파인더 너머로 풍경들을 담는 것 만으로도
몇년 전 사진관을 운영하며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을 때를 떠 올리기에 충분했고
사진사는 마치 홀린듯 풍경들을 눈에 담아보았다.
어느덧 그가 정신을 차렸을 무렵엔 한적한 마을 교외에 서 있었다.
여전히 날씨는 무더웠고 갈증을 느낀 사진사의 눈앞에 마침 상점하나가 보였다.
서둘러 상점의 문을 열 그의 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도 그분께서 말씀하시길 현재의 상황에 모든 국민들은 염려치 마시고 언제나 나라를 위해.."
자신의 집에 있던 낡아빠진 라디오에서 나오던 소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깔끔한 소리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희망찬 메세지는 그에게 여전히 큰 힘이 되어주었다. 앞서 일어난 상이군인의 말은 역시
정신나간 겁쟁이의 헛소리에 불과했다. 사진사는 생각했다.
그분의 말씀은 항상 옳으셨다.
그렇게 차가운 음료를 마시며 라디오를 듣고 있던 사진사는 순간 자신이 마을에서 너무 멀리 빠져나온것을 기억하곤
상점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계는 11시 정각을 가르키고 있었고 사진사는 상점주인에게 음료값을 계산한 뒤 황급히 가게를 빠져나왔다.
서둘러 교회로 돌아가지 않으면 촬영하기로 한 약속시간에 늦게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사진사는 다시 한번 마을로 달려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순간 너무나도 익숙한 소리가 그의 귀를 때리기 시작했다.
" 우르르르르릉- "
또 다시 들려오는 비행기 소리
하지만 사진사는 아까전의 나무를 붙잡으며 공포에 떠는 추태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이번에도 역시 그분의 군대가 적군을 격퇴시킬테니
그렇게 울려퍼지던 소리를 뒤로한채 사진사는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달랐다.
하늘이 일순간 환하게 빛났고 곧이어 엄청난 굉음이 사진사의 귀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사진사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영문도 모른채 주저 앉았다.
아니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극심한 진동이 땅을 울리자 주변의 건물에 있던 유리창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지기 시작했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인가? 어리둥절해 하며 사진사가 땅바닥에 몸을 맡긴 채 생각했지만
곧이어 열기를 품은 매서운 바람이 사진사의 등을 덮치자 그는 정신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무슨일이 일어난지도 모른채 쓰러져 있던 사진사의 귀엔 온통 삐이이이 거리는 이명만이 가득했다.
그렇게 귀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사진사에게 거슬리는 이명이 잦아들 때 쯤
그의 너무나 익숙한 지직거리는 라디오 소리가 들려왔다.
잔뜩 찌그러진채로 온데가 성한대 없는 라디오는 방금전까지 자신이 있던 상점가에 있던 바로 그 라디오였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사진사는 힘겹게 눈을 뜨며 자신의 카메라를 먼저 찾기 시작했다.
다행이 품안에 고히 모셔둔 카메라는 무사했다.
사진사는 곧 정신을 차리고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라디오에선 그분과 군대를 찬양하는 소리가 거슬리는 잡음을 내며 들려왔지만 사진사의 귀에는
들려오지 않았다.
눈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본 사진사의 머리속엔 이제 그분과 그분의 군대에 대한 생각이나
오늘 찍을 교회의 행사같은건 안중에도 없게 되었다.
사진사는 실성한 사람처럼 입을 벌린채 조용히 35mm 롤필름을 카메라에 끼워 넣은 뒤 눈앞의 광경을 뷰파인더에 담았고
하늘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이윽고 엄청난 통증이 사진사의 몸을 훑었다. 그리고 사진사는 참을수 없을 만큼 졸리기 시작햇다.
그의 등엔 수많은 유리조각들이 박혀 그의 발밑엔 피웅덩이가 고여있었다.
사진사의 눈 앞에 있던 찌그러진 라디오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방금 전 11시경.. 나가사키에 침범한 적군의 정찰기를.. 천황폐하의 용맹한...군대..가.. 격퇴 했.."
눈앞의 광경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라디오의 소리를 듣던
사진사는 쓰러지기 전 속으로 생각했다.
그분의 말씀은 항상 옳으셨나?
6일 뒤인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천황 히로히토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패배를 인정했고
9월 2일 무조건 항복문서에 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