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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가 본 불교의 미신들
게시물ID : science_653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루빠
추천 : 4/10
조회수 : 2416회
댓글수 : 25개
등록시간 : 2017/08/27 14:02:02
불교는 두 가지 집단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대승불교, 하나는 소승불교라고 합니다.
물론 이 말은 대승불교가 만들어낸 언어입니다.
하나의 불교 집단에서 '계율을 유연하게 가지겠다'라고 뛰쳐나가면서 우리는 '큰 수레'다 라는 의미로 마하야나, 대승이라 말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너넨 '작다'라는 의미로 소승이란 프레임을 씌웠습니다.
기존 있던 승단은 그에 반발하면서 '전해 내려오는 법을 이어간다', '장로들로부터 전해 내려온 법'을 지닌 집단이라고 상좌부라고 지칭합니다.

비슷한 예로 정치적으로는 '새정치' 프레임이 있겠네요;

한국은 대승불교 문화권에 속합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승의 끝이죠.

왜 불교에 미신들이 판치게 될까요?

기독교와 불교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절대적 가치'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선 '신', 불교는 '법' 입니다.
이 절대적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집단이 나뉘게 되는 이유도 바로 '해석'의 차이일 뿐이죠.

요즘 한국에 유행하는 불교의 흐름은 바로 '초기불교'입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인도로 '바른 법'을 찾고자 떠나지 않아도 세계의 모든 정보를 집에서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인터넷 킹왕짱 짱짱맨)
2500년 전의 불교를 체험하긴 힘들지라도 초기 불교가 어떠한지, 원래 불교의 법은 어떤 것인지 찾아볼 수 있는 것이죠.

지금 초기 불교의 시선으로 보면 대승불교는 불교가 아닙니다.
물론 불법이 존재하기는 하나, 해석을 자기 마음대로 하기 때문에 온갖 미신과 판타지가 섞여 있습니다.

지금부터가 본문이 되겠네요.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기구들 - 목탁, 징, 종, 북, 전부 원래 불교에 없던 것들입니다.

원래 불교에선 소리를 '가시'로 취급합니다. 선정, 혹은 삼매라는 명상을 하는 데 아주 방해가 되기 때문에 승원에선 소리를 나지 않게 하는 게 예의이죠.
불교의 비구는 '걸식하는 자' 입니다.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옷으로 쓰는 '가사', 걸식하는데 쓰는 '발우' 앉거나 눕는데 쓰는 '자와구' 병자를 위한 '약'
이 4가지를 제외하고 소유해선 안 됩니다. 승가의 소유물에는 제외되는 것이 있지만 필수품이 아닌 이상 비구나 승가 모두 받으면 안됩니다.
특히 요즘은 어머님들이 절에 가서 찬불가를 부르기도 하고, 스님들이 북을 난타 뺨치게 치기도 하는데 전부 옳지 않은 일입니다.
허용될만한 소리 내는 기구는 하루 한 끼 드시는 스님들을 위해 시간을 알리는 조그만 종이 될 수 있겠지요.

108배, 1000배 등등의 육체노동

이 괴랄한 운동은 언제 생긴 것인지 저도 궁금합니다. 불교의 수행법은 명상입니다. 그 외엔 선행이지요. 수행이 될 순 없습니다.
명상의 종류는 여러 가지지만 각각 탐,진,치를 없애는 수행, 혹은 탐진치 세 가지를 없애는 수행인데
절은 이 세 가지를 없애는 수행이 아닙니다. 운동이지요.
절은 존경한다는 의미로 예를 표시하는 행동인데 이걸 불상에 미친 듯이 하는 것은 신도들을 바르게 지도할 줄 몰라서 시킨 것이 유래 같습니다.
아무짝에 쓸모없어요.

부적, 염주

이것은 도교에서 유래된 것 같습니다. 완벽한 미신이지요. 원래 불교에 없습니다.
과학적인 측면에서 불교를 깔만한 것은 많겠지만 특히 비과학적인 주문, 주술 같은 것은 빼박인데
점을 치는 것은 비구계에도 하지 말라고 붓다께서 정해놓을 만큼 이런 것들은 아주 사이비입니다.

상좌부 불교에선 '보호주'라는 것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대승에서 하는 '수리수리 사바하' 같은 알아먹지도 못할 것들이 아니라
다 일반적인 언어로 하는 말입니다. 자세한 것은 자비경, 축복경, 등등을 검색해보시길..

천도제, 49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장례문화죠. 절의 주 수입원이기도 합니다. 물론 초파일(부처님오신날)에 연등 팔아서 1년을 버티기도 하지만요.
이 제사들의 허점을 말하려면 불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불교는 사실 영혼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궁극적 물질과 정신은 서로를 의지하기 때문에 따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눈을 감아도 앞이 안 보이는데 하물며 죽었는데 앞이 보일 리 없죠.
사람이 죽으면 바로 다음 생으로 태어납니다. 중간과정이 있다는 이야기는 영혼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고정된 실체가 윤회한다는 힌두교의 논리입니다.

불상에 음식을 올리는 것

불교의 전통에선 불상은 존재하지 않지만 붓다 시절부터 보리수, 아라한을 화장해 모셔놓은 탑, 혹은 불교의 상징에 예를 표했습니다.
그것은 존경의 의미로 선업을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발전해 불상이 만들어지고 불상을 꾸미고, 향을 올리긴 하지만
음식은 부처님이 아직 실존한다는, 와서 먹으라는, 제사의 의미가 있기에 제대로 된 행위가 아닙니다.

각종 보살과 아미타불, xx불 등등 - 힌두교적 미신입니다.

소원성취 - 불교는 탐욕을 없애는 종교지 탐욕을 키우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복의 요소가 있긴 한데 방법이 잘못되었습니다.

수명이 길길 바라면 살생을 하지 말고, 성공하길 바라면 남의 성공을 기뻐하고, 부유해지길 원한다면 기부를 하고 도둑질을 하지 말며
똑똑해지길 원한다면 음주와 취하는 것을 금하고 명상을 하거나 불법을 듣고, 사람들에게 사랑받길 원한다면 잘못된 성행위(강간)를 하지 않는 것
목소리가 맑고, 사람들의 신뢰를 얻으려면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이처럼 불교는 명확합니다. 두루뭉술한 것은 다 가짜죠.
불자가 아니라도 5계를 지키는 것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선업이 됩니다.

과학적인 측면에선 물론 종교 자체가 미신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진실에 접근하는 방식은 불교를 믿는 사람에게도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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