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는 하필이면 지금의 검찰총장인 대사헌 재직 시절 금덩이를 뇌물로 받았다.
(중략)
뿐만 아니다. 황희는 뇌물을 받고 재판에 개입하는 탐관오리였다.
또 재산 형성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것은 그가 관직 근무 기간에 비해 너무 많은 노비와 토지를 소유했기 때문이었다. 과거에는 토지와 노비가 부의 척도였다. 노비가 많았다는 것은 노비를 이용해서 경작할 수 있는 땅이 많다는 의미였다.
황희는 또 다른 분야에서도 대형 스캔들을 일으켰다. 바로 여성 문제였다. 그가 살인 용의자인 여성을 자기 집에 숨겨주는 조건으로 수년간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세종실록>에 기록돼 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51442&PAGE_CD=ET000&BLCK_NO=1&CMPT_CD=T0000 청렴결백의 대명사 황희는 잊어버리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