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5 혼자서 애나벨을 보고 왔습니다.
과거 컨저링을 극장에서 덜덜 떨면서 본 기억을 떠올리며, 일부러 늦은 시간대에 사람들이 많이 없는 상영관을 골라 갔습니다.
영화 보는 내내 저는 단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절 긴장하게 한 것은 을씨년스러운 저택도, 기괴한 인형도, 무뚝뚝한 주인 아저씨의 표정도 아니었습니다.
저를 공포로 몰아 넣은 것은 제 자리 뒤편에서 입체감 넘치게 울려퍼지는
팝콘 씹는 소리였습니다.
와그작 자그작 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암실에 가까운 영화관에서도
내 뒤편에 있는 새끼는 입을 있는 힘껏 벌리고 팝콘을 씹고 있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영화가 조용히 흘러가며 조금씩 긴장감을 조성하기 시작하는 때에도
제 뒤편에 있는 자는 와그작 자그작 팝콘을 씹었습니다.
입을 그대로 벌리고 힘차게 팝콘을 씹고 있었습니다.
긴장을 해서 그런건지 너무 놀라서 그런건지 입을 채 다물지 못한채 팝콘을 씹는듯 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언제 어디서 갑자기 뭐가 튀어나올지 신경쓰는게 아니라,
저 자식이 언제까지 팝콘을 씹어댈지가 신경쓰였습니다.
곧 팝콘이 다 떨어지겠지 하면서 어떻게든 버텨보았습니다.
그러나 팝콘이 무슨 화수분 마냥 계속 튀어나오는지, 아니면 어느 후기대로 사람들이 놀랄때마다 팝콘이 튀어나와서
그자식 팝콘 그릇에 채워지는건지, 팝콘 씹는 소리는 끊임 없이 OST가 되어 울려퍼졌고,
어느 순간, 계속 이자리에서 영화를 보다가는 팝콘의 망령에 혼절할 것 같아 자리를 옮겼습니다.
6줄 정도 앞으로 이동했는데도 불구하고 팝콘 씹는 소리는 들리더군요
그래도, 다행히 어느 순간부터는 들리지 않게 되어 무사히 영화를 다 볼 수 있었습니다.
저도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는걸 좋아하는데, 최소한 입은 다물어가면서 먹습니다.
근데 오늘 뒤에 앉아 있던 분께서는 아예 팝콘 먹방을 찍으시더군요.
그 분 덕에 아주 공포스러운 관람을 할 수 있었고, 다시한번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아, 그리고 중간중간에 영화에 지나치게 몰입하여 긴장하고 있는 다른 관객들을 편하게 해주려고
실소를 터뜨려 주신것도 감사드립니다(저같은 쫄보들은 어디서 웃을 부분이 있었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었지만 여튼 감사합니다).
ps. 개인적인 영화평을 덧붙이자면, '적당히 잘 만든 공포물'이라 생각됩니다.
공포영화에 대한 식견이 없어서 그런지, 기존의 공포 영화 공식은 모범적으로 적재적소에 넣었다는 느낌 정도는 들었지만,
참신하다거나 기존의 걸작 공포영화를 뛰어넘을 만한 영화인지는...모르겠네요
기대보다는 놀랄부분이나 긴장할 부분이 적어서 조금 아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