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영화가 아기 낳기 한달 전 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기가 6개월이니 반년 넘게 영화관에 가지 못하다가 친정엄마가 오셔서 남편이 아이들을 재우고 엄마랑 영화를 보러 가래서 영화관 나들이를 했습니다. 바로 집 앞이 영화관이라서 아이들 재우자마자 뛰어들어가서 본 영화가 '택시운전사'였지요.
중학교 때였던 것 같습니다. 현장학습 같은 걸로 5.18공원에 갔는데 기념관 같은 것이 이제 막 설치 되어 있었습니다. 20년도 채 지나지 않았던 시기라서 자료는 무궁무진했죠. 갱지?같은 소재에 타자기로 적힌 듯한 오래된 책들도 있었어요. 책이 도서관같이 쌓여있었고 그 중 하나를 집어들어 휘리릭 넘겼는데... 중학생인 저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사진들이 펼쳐져있었습니다. 머리가 으깨져서 형체를 알기 힘든 사진,관들이 나열되어 있는 사진,피투성이가 된 채 팔과 다리가 꺾여져서 죽어 있는 사람들... 정말 충격적이라서 책을 화들짝 덮어버렸습니다. 그런데도 머릿속에서 그 모습이 사진찍은 듯 지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심지어 기념관 안쪽에는 그 날의 잔인함을 각인이라도 시키려는 듯 잔혹하기 그지없는 사진들이 크게 걸려 있었습니다. 저는 토할 것 같은 속을 잡고 밖으로 뛰쳐 나왔고,한동안 그 사진들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아서 악몽을 꾸거나 멍해져 있었지요. 그 뒤론 5.18 관련 자료들은 쳐다보지도 않았고 특히 사진자료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른이 되어서인지 시간이 오래돼서인지 여러 장면에서 그 때 그 사진이 기억났지만 무섭기보다는 눈물이 났고 마음 아팠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중학교때 받았던 충격이 떠오르면서 심장이 떨리긴 하더라구요.
저는 광주 태생입니다. 5.18 당시에는 없었지만 최루탄에 대한 기억이 있어요. 아마 6,7세였던 것 같은데... 광주사람들은 구 전남도청쪽을 시내라고 해요. 암튼 엄마와 시내 쪽에 택시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택시가 서요. 그러고는 돌아서 가야한다고 하더라구요. 엄마는 손수건을 건네며 입과 코를 막고 고개를 푹 숙이라고 했고 저는 고개를 숙였다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는데요. 택시 창문밖으로 본 그날의 풍경이 선명해요. 뿌연 최루탄 연기속에 달려다니는 전경들과 젊은 언니,오빠들.... 눈이 너무 맵고 힘들었었죠.
그밖에도 최루탄과 데모에 대한 기억이 있는데 그게 아마 전남대 총학생궐기대회나 여러 집회의 영향이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