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몸이 너무 좋지않아 병원을 찾았더니
대상포진이란다
온 살갖이 옷깃만 스쳐도 아프고
옆구리에 수포도 올라오고 심한 두통에 최악의 컨디션이다
남편은 무척 바빴었다
아이가 일어나기전 출근하고 잠든 후 퇴근하고
주말에도 출근하고 해외출장을가고..
나는 근 몇달을 홀로 일하고 살림하고 육아를 해왔고
그러다 이 사단이 난듯 하다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듯한 남편이
오늘 혼자 아이를 데리고 일박으로 친구들과 함께 놀러갔다
주말 내내 푹 쉬라며.
몸은 너무 아팠지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기분으로
에어컨 빵빵하게 틀고 제일좋아하는 이불 다리사이에 끼고
침대에서 낮잠을 자고있었다
어느순간 너무 덥기도 하고
뭔가 밖에서 달그닥거리는 소리가 나,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거실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시어머니와 시이모.
순간 정말 이상황이 이해도 되지않고
뭐가뭔지 꿈이 덜깬건지
남편에게 물어보고싶어도 핸드폰은 거실충전기에.
어쩔수 없이 슬그머니 나가서 놀란척 했더니
두분이서 일어났냐며 좋은 남편만나서 참 행복하겠다는둥
비아냥 거리신다
시어머니는 부엌에서 뭔가 달그락거리고 있고
시이모는 부엌바닥에 앉아 뭘 열심히 까고 계신다
내가 자는새 에어컨은 꺼져있고 거실문이 열려있어도 찜통인데
에어컨바람이 싫으시다며 하나뿐인 선풍기는
두분이 회전으로 쐬고 계신다
핸드폰을 찾아들고 남편에게 연락을했더니
남편도 어리둥절이다.
시어머니가 무작정 우리동네 찾아오셔서는
내게 전화를 해도 받지않으니
남편에게 전화를 하셨단다
남편은 내가 아파서 아이와 일박으로 놀러왔다고 했고.
시어머니는 반찬만들어 왔는데
비밀번호를 알려주면
냉장고에 반찬만 넣고 돌아가신다고 했고
남편은 내가 아파서 끼니굶을까 알려드렸단다
시어머니는 이때다 싶었는지 우리집에서 15분거리에
살고계시는 시이모까지 소환해
우리집을 점령하고 계셨던거다.
시어머니는 뭔가 만들고 계시는데
(남편에게는 반찬만들어오셨다고 했지만 반찬만들 재료를 사오시고
거짓말 하신듯) 당연히 본인 살림이 아니니
뭐가 뭔지 모르실거다..
내가 싱크대및 개수대와 거름망을 청소할때 쓰는 지저분한 수세미로
그릇이랑 수저등을 닦고 계신다
이름모를 나물이 불려져있는 저 그릇은
싱크대에 놓고 설거지하는 설거지통
식기 건조대 안 그릇위에 포개져 있는 저건
내가 음식물 쓰레기 물뺄때 쓰는 받침.
그 외에도 말린 수저만 담아놓는 통에
젖은수저들이 뒤섞여있고
난리가 난리가 아니다
시이모가 다듬고 있는 열무 아래 깔려있는건
내가 너무 아끼는 포스터.
얼마전 테이프 점착력이 약해졌는지 벽에서 떨어진걸
몸이 아프니 귀찮아서 나중에 붙이지뭐 하고
티비옆에 대충 둘둘 말아둔게 화근이었다
그 둘은 어디 색다른 장소에 놀러온마냥
깔깔대며 저들끼리 웃고 즐기기 바쁘다
난 나물 반찬은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남편이 무척좋아하지.
그 사실은 모두가 알고있고
아픈며느리 먹으라고 하고 있는건 아니라는 말이다
넌 아프다니 쉬고있으렴
이것만 하고 갈게.
근데 너 일어난김에 물어보자
일회용장갑은 어디있니
들기름은 어디있니
들깨가루는 어디있니
고춧가루는 어디있니
이건 소금맞니
왜 선반엔 라면이 냉동실에 즉석식품 투성이니
평소에 이런걸로 밥차려 주는거니
불편하게 그릇은 왜 이렇게 놓고사니
밥솥보니 너 현미밥먹니 아이에게도 이거주니
아이들은 현미먹으면 소화 안된다
냉장고에 반찬들이 죄다 사다먹는거더라
너 혼자있는데 에어컨 틀고있지마라
전기세 많이 나온다
뭐가 어디있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누가봐도 알아보기좋게 정리해야
살림 잘하는 사람이다
그.. 소설같은데서 보면 눈앞이 깜깜해지고
멍멍해지고 상대방 목소리가 울리고.
그건 연출이 아니었다
실제로도 그런 느낌이 들더라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냥 거실문 닫고 에어컨 키고
방안으로 들어가서 이불덮고 누워버렸다
에어컨바람이 들어와야하니
꼭 닫지 않은 문 너머로
적나라하게 흉을 보는 소리가 들린다
베게로 귀을 막고
남편에게 나 죽는꼴보싫으면
어머니 지금당장 가시게 하라고 카톡을 보냈다
잠시후 내가 뭘어쨌다고!
온갖 억울해하는 소리는 다 하시는 통화소리가 들린다
아이고 내가 이 꼴 보려고
이더위에 무거운짐 가지고와서 사서고생하나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옆에서 시이모는 뭐라뭐라 도리가 아니다
싸가지가 없다 뭐 그런말들을
나 들으라고 크게 말씀하시며
시이모랑 현관문을 크기 닫고 나가셨다
나가보니 온통 낭장판이다
당연히 뒷정리따위 해놓고 가셨을리 없지
몸이 더더욱 아파오고
머리는 더 징징 욱씬거린다
쓰레기봉투에 잡히는대로 다 집어넣어버리고
한쪽으로 밀어놨다
내일 남편이 오면 다시 분리수거
하고 나머지도 다 뒷정리를 시킬 셈이다
가득한 설거지감들도
나는 손댈 자신이 없다
뒤죽박죽 섞여버린 살림들도
정리할 엄두가 나지않는다
심장이 두근거려 잠도 오지않고
더러워진 집안에 있기 싫어서
친정으로 왔다
그냥 남편이 아이데리고 일박 놀러가서
아픈몸 쉬라 왔다고 했다
엄마밥 먹고 좀 자고 일어나니
아까보단 몸이 덜 아픈듯 하다
그냥 늘 시어머니는 내 목안의 가시같고
가슴에 얹힌 덩어리 같다
남편은 내게는 잘해주지만
능력이 좋다는 이유로 너무 바쁘고
또 고부간의 갈등을 적극적으로
중재해주지 못한다
시어머니의 암투병 이력때문에.
그냥 좋아하는 아들이랑 끔찍한 손주만 보고 사시면
될것같은데 내가 없이 시댁에 가면
니가 홀아비냐며 엄청 역정내신다
숨이 잘 안쉬어진다
잠도 잘 오지 않는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