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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크레바스
게시물ID : panic_947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건전만화
추천 : 14
조회수 : 124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8/11 21:33:56
  오늘도 자정을 넘겨 현관문을 열었다. 

학생이 술담배나 하고 다닌다 욕할지 모르겠지만, 난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싫다.

집에서 나는 우울한 냄새도, 무기력한 아빠의 모습도 진절머리가 나서 더는 참기가 힘들다.

그나마 같이 어울려주는 친구들이 있어 잠시나마 현실을 잊을 수 있다는게 다행이다.

 아빠는 열심히 살았다. 어릴 적 아빠의 기억은 언제나 늦은 귀가 후 지친 어깨 뿐. 그래도 지금처럼 무기력하진 않았다.

내가 아는 한 아빠는 가정과 직장 두 가지 밖에 모르는 천하에 재미없는 사람이었다.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셨을때, 아빠는 말 수가 더욱 줄었다. 

언제나 눈뜨면 식탁에 올려진 만원짜리.

그게 아빠의 존재이유 같아서 아침마다 기분이 더러웠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렇지 않다.

귀가 시간이 늦어도,  술에 취해 휘청휘청 들어와도, 교복에서 담배 쩐내가 진동을 해도 누구하나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난 익숙해졌다.


몇 달 전 부터인가 식탁에 돈은 사라졌다.

아빠는 방구석에 처박혀 잠만 잤다.

내가 집을 나서는 그 시간동안 아빠는 뭘 할까?

뭘 하든 알아서 살겠지 신경쓰고 싶진 않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함께 할 시간이 많아졌지만 뭘 해야 할지 배우지 못했다.

그냥 예전처럼 대면한 사이가 편하다.


그리고

얼마 전 아빠도 죽어버렸다...


평생 일밖에 몰랐으면서 능력은 없었던걸까?

코딱지만한 공장에서 오십 가까이 일해놓은 결과가 고작 다 낡아빠진 전세주택 하나다.

그마저도 회사가 망해버려 불러주는 곳 하나 없었는데 그 따위 직장이 뭐라고 가족도 돌보지 않고 인생을 바친걸까.

그딴게 뭐길래 밥까지 굶고 죽어버릴 정도로 상처받은거야?

어차피 괜찮아. 

아빠는 하루에 만원 짜리 가치밖에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누워만 있던 아빠가 없을 뿐인데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아빠가 누웠던 자리에 조용히 누워본다.

너무나 외롭고 고독했다.

조용히 고개를 돌려보니 현관문이 보인다.

아빠는 내가 나가고 들어오는걸 지켜보고 있었구나.

눈물이 너무 많이 흘러 베개가 다 젖었다.

뉴스에서 최저시급이 어쩌구 하던데 아직도 만원이 안된다고 하더라.  

아빠는 그 아까운 청춘을 그 아까운 시간을 돈으로 바꿔왔구나.

식탁에 놓여진 만원짜리가 아빠의 청춘 한 시간보다 비쌌다는걸 왜 그땐 몰랐을까.


문득 얼마전 티비에서 본 크레바스가 떠오른다. 

아빠도 크레바스에 빠진걸까.

산송장같았던 아빠지만 마음속으로 목이터져라 살려달라 외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손을 내밀어 줄 유일한 사람이었다면, 그걸 진작 알았다면 아빠는 그 깊은 절망의 골짜기에서 살아날 수 있었을까?

휴대폰으로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처음 휴대폰을 샀을때 저장했던 아빠의 번호.

한 번도 뜨지 않았을 내 이름이 아빠 휴대폰에 적혀있다.  

'이쁜내새끼'


받지 않는 전화기에 대고 흐느끼며 속삭인다

"아버지...사랑합니다."






출처 효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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