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하얀 고양이
게시물ID : panic_946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수컷수컷
추천 : 21
조회수 : 2221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7/08/06 20:11:11
  지금부터 소개할 T라는 인물은, 성격상 가학적인 면이 조금 있지만 그것이 그의 사회적 생활에 있어 큰 악영향을 끼치는 정도는 아닌, 오히려 그러한 면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여 직장에서 인정받는 상사이자 유능한 직원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었다. 다만 그는 사람을 향한 가학성보다는 동물을 대하는 가학성이 전문으로, 그렇다고 해서 죽음에 이를 정도로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약한 정도의 괴롭힘을 행사하는 것으로 쾌감을 느끼는 소프트한 새디스트였다.

T는 동종업계에서 일하던 여성과 결혼하여 가정을 가졌지만 자신의 캐리어를 지속하고 싶었던 아내의 바램으로 인해 아이는 가지지 않았다. 사실 그건 T가 오히려 바라는 바였으며, 그는 내심 자신에게 움직이지 못하는 작고 연약한 아이가 생기면 무슨 행동을 하며 자신의 쾌감을 충족시킬지 나름 불안했던 것이다. 자기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식에게도 가학성을 발휘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함 때문에 아이 생기기를 꺼려했던 T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에게 불쾌함을 느끼거나 그러한 쾌감을 느끼도록 하는 행위에 대해 거부감을 지닌 적은 한번도 없었다. 앞서 말했듯, 그는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학대하지 않고 남들이 보기에는 다소 심한 장난이라고 느낄 법한 정도로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면서 의심없이 다가오는 길고양이에게 전기충격기를 찌른다거나 하는 게 가장 심한 정도였고, 애완견의 입에 짖지 못하도록 하는 보조구를 억지로 착용시킨 다음 하루종일 굶기고, 그 앞에서 먹음직스런 고기를 굽는다던가 하는 정도였다. 개중에는 자칫 잘못하면 괴롭히는 동물의 생명이 위험할 정도의 장난도 있었으나, T는 나름 자신을 컨트롤하고 있다 자신하였고 피를 본 적은 한번도 없음에 자랑스러워했다.

T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고양이었다. 개도 나쁘지 않다 생각했지만, 그는 고양이 괴롭히는 것을 더욱 좋아했다. 개는 조금만 잘해주면 금세 마음의 긴장을 풀고 다가와 꼬리를 흔들었지만 고양이는 도통 그러지 않았다. 한번만 괴롭혀도 그 다음부터는 T를 경계하며 도통 다가오려 하지 않았다. 기껏 얻은 신뢰를 한순간 괴롭힘으로 잃어버리고, 다시 그 신뢰를 쌓기 위해 최선을 다한 뒤 급기야 다시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그 동물의 몸에다 스테이플러를 쏴버리는 순간 T는 사정해버리는 것이었다.

그를 잘 모르거나 한 지붕 아래 생활하지 않는 사람은 T가 사회에 충실하고 성실한 납세자이자 가정에 최선을 다하는 남자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아내는, 그와 살을 섞어가며 함께 생활해 온 여성은 T의 그런 가학성에 혀를 내둘렀다. 아닌게 아니라, 그녀도 자신의 아이를 키우며 젖을 먹여 키우고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길 원하는 평범한 여성이었으나 자신의 캐리어를 위해 아이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아이에 대한 모성애 대신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으로 그 애정의 빈 공간을 충족시키려 했고, T와 살기 시작하면서 고양이를 기르기 시작하였다. T라는 남자는, 자기 아내가 키우는 고양이에게 그런 가학적인 행위들을 하면서 아내에게 그 사실을 감출 줄 아는 남자였다. 평소에 그가 만족감을 느끼는 가학의 정도가 100이었다면, 아내의 동물들을 대상으로 한 것은 40에서 50정도로 줄여가며, 나머지 부족한 부분을 그대로 그 날 밤 자신의 아내에게 발산할 줄도 아는 영리한 남자였다. 그런 줄도 모르고, T의 아내는 한동안 자신의 남편이 정말로 자신을 사랑하며 이 결혼은 정말 잘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그녀의 동물들은 그러지 못했다.

아내가 키우는 고양이들은 그를 기피했고 그녀가 귀가하기 전까지는 침대 밑이나 장롱 위로 숨어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정을 알 리 없던 그녀는 그저 동물들이 자기를 더 좋아한다고 착각할 뿐이었다. 그러다 그녀가 T의 만행을 알게 된 계기는, 그녀가 유독 아끼는 고양이의 몸에 작은 생채기 같은 것을 발견하여 동물병원에 데려갔을 때였다. 벌레에 물린 것이 아닐까 의심했었지만, 병원 의사는 단조로운 어조로 그녀에게 말하였다.

"날카로운 것에 긁혔네요."

T의 아내는, 굳이 의사에게, 자신의 집 화장대나 책상 모서리에는 모조리 안전 스펀지를 붙여두었다고 덧붙이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귀가한 남편에게 차가운 눈초리를 쏘아붙이며 따졌다.

T는 순순히 자기 죄를 고백하였다. 전기충격기로 살짝 지지거나 일부러 발톱을 짧게 깎고, 샤워부스에 가둔 뒤 물을 틀어버리는 등 사소한 장난일 뿐이었다고 말이다. 고양이 몸에 상처가 난 것은 아마 얼마 전 고양이 발톱을 자르다 고양이가 자신의 손등을 할퀴기에 화가 나서 들고 있던 발톱깎이를 휘둘러버려서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T로서는, 이런 상황에서 도리어 위증을 하거나 부인을 하면 오히려 상황이 악화될 것이라고 해서 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그의 자백에 오히려 더욱 화를 내었다.

그 날 밤 싸움은 경찰이 올 정도로 심각하였다. T는 홧김에, 생전 처음으로, 그녀의 고양이를 그대로 아파트 베란다 밖으로 던져버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그 사건 이후 

T는 전보다 아내에게 자상하고 다정하게 대했으며 아내가 그것을 금방 받아들이지 않아도 인내를 갖고 계속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 달, 두 달 동안은 가식적인 모습이라며 그를 기피하던 아내도 계속되는 T의 반성에 서서히 마음을 열었고, 두 사람은 싸우고 100일째 되던 날 합방을 하였다. 다음 날, T는 아내의 권유에 따라 죽은 고양이 대신 다른 고양이를 기르기로 하였다. 입양하기로 결정한 뒤 T는 아내와 함께 반려동물 훈련소를 매주 방문하여 필요한 훈련도 받고, 관련 서적도 탐독하며 두 번 다시 그러한 실수는 저지르지 않기로 다짐하였다.

그리고 약속된 입양일, 새로운 고양이를 향해 무한한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케이지에서 고양이가 나오는 순간

그는 헉 하며 숨을 되삼키고 말았다. 케이지에서 모습을 드러낸 고양이는, 그날 밤 그가 홧김에 던져버린 고양이와 판박이였던 것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 고양이의 목덜미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검은 색 반점이 있었는다는 것인데,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그저 평범하게 검은털이 자란 것이었지만 T가 보았을 때, 그 검은 털은, 그가 전기충격기로 지졌던 부위에 났던 것이었다. T의 아내는 죽었던 고양이가 다시 온 것이라며 감격해 했지만 T는 꺼름칙한 기분이 드는 것을 숨길 수 없었다. 하지만 애써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평온을 깨버리고 싶지 않았기에, T는 애써 웃으며 자신의 불안을 감추었다.

새로 입양된 고양이의 이름은 헤카테로 정했다. 헤카테는 금세 T의 가정에 적응하여, 입양된 지 하루만에 골골 거리며 T의 아내에게 애교를 부렸고 좁은 곳에 숨거나 하는 일 없이 언제나 T와 T의 아내 시야에 있었다. 아내는 정말 착하고 순한 아이가 왔다며 기뻐했으며, T는 자신이 죽여버린 고양이와 똑같이 생긴 헤카테가 자신의 다리 사이를 지나며 제 털을 부빌 때마다 온 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거 같았다. 헤카테가 놀아달라며 울 때마다 T는 헛구역질이 올라왔고, 특히 아내가 있는 앞에서 그것을 참느라 억지로 헛기침을 하며 자리를 피하곤 했다. T는 직감적으로, 자기는 이 고양이와 잘 지낼 수 없으리라 깨달았다.

그런데 이 헤카테라는 녀석은, 지금까지 겪었던 동물들과 전혀 다르게 행동했다. T가 일부러 피하고 어려워해도 그에게 다가갔던 것이다. T의 아내는 정말 잘된 일이라며, 헤카테는 하늘이 가져다 준 아이임에 틀림없을 것이라고 감동해 마지 않았다. 반면 T로써는 매일이 죽을 심정이었던 것이, 이 하얀 고양이는 T가 어디에 있든 소리없이 다가가 그의 눈과 자기 눈을 마주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새빨간 혀를 날름거리다 냐아아 하고 낮게 울었다. T의 가슴에 대고 꾹꾹이를 할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T는 헤카테가 자기 심장을 뽑아가기 위해 그 위치를 가늠하는 것처럼 가슴이 철렁했다. 그래서 아내가 보지 않을 때마다 헤카테를 밀어내고, 급기야 발로 차기도 하였으나 발차기에 밀려 장롱에 쿵 소리가 나도록 몸을 부딪혀도 헤카테는 하악 한 번 거리지 않고 T에게 사뿐사뿐 거리며 다가갔다.

T는 문득, 헤카테는 T가 자기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저러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고양이란 동물이 그 정도로 영악한 동물이었단 말인가? T는 오랜 경험을 통해, 고양이는 자신에게 상처 주는 사람을 기억하고 있다가 피해다녔으면 다녔지 결코 사람의 감정을 읽고 그것을 역으로 이용할 지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혹여, 헤카테에게는 지능이 아니라 어떤 목적이 있어서 자신을 이토록 괴롭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던져 죽인 고양이의 시신을 직접 치웠고, 화장하고 남은 재를 직접 받았다. 그리고 그 고양이는 중성화 수술까지 마쳤던 개체이기 때문에, 행여라도 헤카테가 그 죽은 고양이와 혈연 관계에 있을 리는 없었다. 있었다고 한들, 늘 집안에만 있었던 고양이가 어찌 다른 고양이와 그런 소통을 했단 말인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그의 불안과는 다르게, 그는 여전히 회사에서 능력있고 성실한 직원이었고 그의 아내도 그와 마찬가지로 그녀 캐리어의 최고점을 매번 갱신하고 있던 터였다. 어느 날 T의 아내는 몇 백억 원을 호가하는 계약의 성사가 달린 해외출장의 담당자로 결정되었다. 그녀는 고작 일주일 정도라고 하였지만 내심 T와 헤카테가 걱정되었는지 자신의 부재 중 해야 할 일을 리스트로 만들어 T에게 당부시켰다. 헤카테의 병원 진료, 진드기 약 투약일, 그리고 갑자기 아플 때 24시간 진료하는 병원의 전화번호까지. T는 아내가 귀가하기 전까지, 필히 이 괴상한 역학관계를 바로 잡고 말겠노라고 결심했다. 그리고 아내가 출국장을 나서는 것을 직접 확인하고 난 뒤 바로 실행에 옮겼다.

다시 그때의 그 시절로 돌아가, 시작은 가장 기본적인 회초리와 전기충격기이었다. 헤카테는 T가 휘두르는 회초리에 맞아 비명을 지르며 장롱 위로 몸을 숨겼다. 그러나 T가 회초리를 숨기고 자리에 앉자 언제 그랬냐는 듯 5분도 되지 않아 T의 곁에서 다가와 골골 거리며 애교를 부렸다. T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숨겨둔 전기충격기로 헤카테를 지졌다. 헤카테는 이번에는 조금 심각하게 큰 소리를 지르며 도망갔다. 하얀 고양이는 그제서야 뭔가 깨달은 듯, 가장 높은 곳에 몸을 숨긴 채 벌벌 떨며 T를 두려워 하기 시작했다. T는 그 순간 몇달 동안 참아온, 죄악으로만 여겼던 그 이전의 쾌감을 양껏 느끼며 발기했다. 어째서 이런 쾌락을 잊고 살았던가, T는 그날 밤 잠을 자지 못했다.

그 다음 날, 무사히 도착한 아내가 안부 전화를 걸었고 헤카테는 전화기 너머 아내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다가왔다. T는 능청스래 연기를 했고 아내는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자, T는 경계를 풀고 다가온 헤카테를 향해 스테이플러를 쏘았다. 나중에 간식으로 유혹한 뒤 스테이플러를 뽑아내 증거를 없애버렸음은 두말 할 필요 없음이다. 또 헤카테를 좁은 케이지에 집어넣고 케이지 위로 소프트볼을 던져 때렸다. 헤카테는 공이 케이지에 맞을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케이지 안에서 이리저리 부딪혔다. T는 들썩거리는 케이지를 보며 천천히 자위했다. T에게는, 아내의 부재가 매우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내의 귀국일이 되었다. T는 매우 아쉬워하면서도 헤카테에게 다시금 잘해주고자 간식 캔 뚜껑을 열었다. 그러나 헤카테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하얀 고양이는 어젯밤 찬물을 세게 틀어놓은 샤워부스에 한 시간 가둬 둔 뒤부터 물조차 마시러 내려오지 않았다. 마지막은 좀 심했나, 라고 자문하며 T는 아쉬운 입맛을 남겼다. 그리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생각하고 결심했다.

이번에는 절대 그때와 같이 멍청하게 들키지 않으리라. 돌아와서 이전과 다르게 자기를 따지 않는 헤카테를 보며 물어보는 아내에게는 집안 서열을 정리했노라고 변명해야지. 단, 절대 체벌을 하지 않고 철저히 훈련책자에 나와있는 절차를 따랐노라고. 

돌아오는 아내를 위해, T는 그간 쌓아둔 싱크대의 설겆이를 해결했다. 모든 식기를 정리하고 먹다 남은 음식물은 싱크대 개수구와 연결된 분쇄기로 갈아버렸다. 그런데 설겆이를 모두 끝난 뒤에야, T는 자기 반지가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곧장, 설겆이를 위해 반지를 잠시 빼두었다는 걸 떠올렸다. 그렇다면 반지가 그 사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혹시 설겆이 하는 사이 접시 같은 것에 걸려 엉뚱한 곳으로 흐르지 않았을까, 하는 것에 추리가 도달한 T는 개수구 뚜껑을 열어 안을 보았다. 음식물 찌꺼기와 뒤섞여 작은 원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T는 음식물찌꺼기에 더러워졌을 반지를 생각하며 T는 개수구 안으로 손을 밀어넣었다. 손가락 끝에서 반지의 금속성 촉감이 느껴졌다. T는 반지를 집어 손을 빼내려했으나 개수구가 너무 좁았다. 젓가락처럼 손가락 두 개 끝으로 잡아도 손목 부근에 걸려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T는 싱크대 아래쪽에 설치되어 있는 분쇄기 페달을 밟지 않으려 허리를 뒤로 쑥 빼냈다. 그렇기 때문인지 T는 반지를 빼내기 더욱 힘든 자세가 되었고, 급기야 반지를 놔두고 손만 빼려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휴대폰도 멀리 떨어져 있고, 손은 빠지질 않았다. 급한 마음에 참기름을 부으려고 자유로운 한 손으로 천정을 뒤지는데

냐아아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T가 고개를 드니 헤카테가 어느 새 부엌으로 모습을 나타냈다.

냐아아아

헤카테는 다시 한 번 교태 섞인 울음을 짓고서

그 하얀 악마는 T에게 날렵한 자세로 다가가

앞발로 분쇄기 패달을 눌렀다.






===========================================================================

덧 1. 애드가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는 정말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이 글은 검은 고양이를 오마주한 장면이 많아요.

덧 2. 그런데 검은 고양이는 읽을 때마다 궁금한 것이, 왜 주인공은 회반죽을 벽에 바르면서 고양이가 그 안에 들어간 걸 몰랐는가 하는 것입니다.
고양이가 숨어있다가 몰래 안으로 들어갔던 걸까요?

덧 3. 다들 새로운 일주일 힘내세요.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