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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에서 본 동물
게시물ID : panic_946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5555
추천 : 10
조회수 : 2030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7/08/06 01:48:51
7월말, 나는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하기 전 장산 근처에 살았던 난 산에 갔다.

애초에 장산까지 갈 생각은 아니었다. 근처에 산다고 했지 장산이 가장 가까운 산은 아니었으니까.

작은 산이긴 하지만 어쨌든 산을 두 개 넘어야 장산에 갈 수 있었다.

몇년간 운동을 게을리 한 난 작년에 산을 두개 넘어 장산을 넘어 해운대해수욕장까지 가는 산행을 감행했고

오르는 길은 좋았지만 하산할 땐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고 후유증으로 열흘을 앓아야 했다.

이런 일이 있었으니 장산까진 가지 말고 가볍게 편도 두시간, 왕복 4시간 정도만 걷자고 생각하고 나선 길이었다.

7월말, 부산은 더웠다. 이런 날에 산에 갔다가 일사병이라도 걸리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미 가기로 한 마음을

돌릴 순 없었다. 산입구까지는 엄청나게 더웠다. 내가 왜 이런 날 산을 가는 미친 짓을 하는걸까, 스스로를 탓하며

걸었다. 20분 정도 걸어 산입구에 도달할 수 있었고 산아래 약수터에서 물을 떴다. 이 약수터는 산 입구에 있는 주제에

그 시원함과 맛이 전국 어느 명산의 약수터 물맛에도 뒤지지 않는다. 단연코 내가 먹어본 약수 중 첫번째 자리를 내어줄 

수 있다. 약수터에서 10분도 안걸었는데 고라니가 지나간다. 산입구 아래의 공원에서 고라니를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 놀랄 일은 아니긴 했다. 좀 더 올라가는데 안개가 자욱했다. 산아래는 햇볕이 쨍쨍한데 점심 때가 지나 오른 산이

안개로 가득한 건 왜인지 궁금했다. 중턱까지 올라가니 안개가 가득해서 겨우 1m 앞 정도만 보였다. 대낮에 안개로 시야가

가리다니 놀라웠다. 옆을 보면 바다가 보여야 하는데 바다는커녕 동네도 안보였다. 산신령이라도 나올 만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무척 시원했다. 7월말 맑은 날의 부산인데도. 덥지 않아서인지 수월하게 1차 목표인 첫번째 산에 갔다. 

2차목표인 절에도 쉽게 갔다. 다음은 돌탑이었다. 돌탑까지 가서 하산할 생각이었는데 너무 아쉬웠다. 이사를 가고 나면

장산에 다시 올 일이 있겠나, 다리가 정말 가볍고 몸이 개운한데 내려가기는 싫었다. 헬기장까지만 가자 생각하고 움직였는데

헬기장이 너무 가까웠다. 도저히 내려가고 싶지가 않았다. 장산 정상을 가기로 했다. 여름이니 해가 길 것이고, 야간산행은 

생각지 않았기에 전등도 준비하지 않았고 산행은 짧을 것이라 생각해서 보조배터리도 없었다. 장산 정상을 가다가 보니 

이슬비를 만났다. 양이 작고 시간도 짧아 피하지 않아도 되었다. 표지판을 보니 대천공원 방면에서 장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 때 왼쪽 길 옆의 풀숲으로 회색 동물이 지나쳤다. 워낙 순식간이라 정확히 보진 못했다. 털은 모르겠고 회색이었다.

크기는 웰시코기보다 좀 커보였다. 중형견 정도의 크기인 셈인데 다리가 긴 편은 아닌지 몸 전체 길이에 비해 높이가 조금 

낮았다. 얼굴형은 볼 수 없었고 목 뒤부터 꼬리가 시작되기 전의 등만 보였다. 짧은 시간 안개 속에서 수풀에 가린 상태로 

봐서 곧 잊을만 한 상황이었음에도 아직까지 기억나는건 그 짐승의 움직임이 괴이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크기의 개들이 전속력으로 뛰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사라졌는데 그 짐승은 높이가 달라지지 않았다. 뛰게 되면 자연히 

몸이 도약할텐데 귀신처럼 수평으로 움직였다. 극도로 움직임이 적은데 속도는 빨랐다. 그리고 수풀이 움직이는 건 보이는데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그 짐승이 사라진 후에도 넋이 나간 듯 한동안 서있었다. 그리고 방금 본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는데 비슷한 크기의 짐승을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올 만한 게 없었다. 개, 고라니, 고양이, 염소, 토끼, 늑대, 여우, 족제비, 

너구리.... 내가 이날 본 짐승은 무엇이었을까. 아직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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