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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그리고 우상의 몰락
게시물ID : sisa_9731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경영컨설턴트
추천 : 1
조회수 : 77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8/03 13:07:39

우상의 몰락.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에서부터 안철수의 생각까지, 내 곁을 15년간 함께했다. 15년전,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나는 컴퓨터를 좋아하는 초등학생이었다. 유성초등학교 내에서야 컴퓨터를 잘하는 편이어서 정보영재, 컴퓨터 잘하는 친구라는 호칭이 날 따라다녔다. 그도 그럴것이 나도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컴퓨터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여 아마 그맘때부터 비주얼베이직과 C언어를 배우기 시작했었던것 같다. 


정보처리기능사 자격증 공부를 하여서 비주얼베이직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초등학생이라도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C언어를 배우면서 점차 프로그래밍이 참 어려운거구나 깨닫게 되었다. 정보올림피아드를 하면서는, 정말 열심히는 했지만 '아 내 길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어렸을때부터 프로그래밍을 잘하는 친구를 보면 참 많이 부러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은 그냥 지역대회동상 정도가 전부였다. 


아마 그맘때쯤일까? 안철수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영혼이 있는 승부'를 보고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서울대 의대 출신에 단국대 의대 최연소 학과장, 그런데 다 그만두고 창업을 해서 V3를 무료로 배포하고, 안철수 연구소라는 기업도 세우고.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로컬에서 그냥 컴퓨터만 잘하던 어린 김용준은 이 사람처럼 되고 싶었다. 그 사람처럼 되려고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카이스트의 존재도 아마 그쯔음 알았던것 같다. 


대전에서 자라서인지 최고의 대학은 늘 카이스트라고 생각했다. 서울대라는 존재는 어릴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나에게 어울리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MIT가 더 매력적인 학교라고 생각했지만, 영어를 잘 못하고 그정도로 똑똑하다고 본인이 생각하지는 않았기에, 카이스트를 꼭 가고 싶었다고 생각했다. 그 학교를 가면 우리나라에게 이공계 쪽으로는 가장 공부를 잘하는 친구라고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대전과학고를 목표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대전과학고를 진학하면 카이스트에 어렵지 않게 진학할 수 있으리라. 학군이 크게 좋지 않았던 중학교 때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리고 영재원 전형과 내신으로 이루어진 특채를 통해서 대전과학고에 입학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대전과학고 입학을 했다고 하니 주변에서 정말 부럽고 놀라워하더라. 다들 고생했다고. 수고 많았다고. 나는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고통의 연속이었다. 68/72 내 첫 중간고사 등수였다. 악착같이 공부했다. 정말 죽을힘을 다해서 공부했는데 계속 실패했다. 등수며 성적이며 광부들이 쓰는 LED전구에 의지하면서 새벽까지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아 이러다 죽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공부했던 기억이 참 많이 남는다. 


다행히도 2학년때는 성적이 많이 나아졌다. 1년간의 노력이 보상이라도 받는듯이 성적이 급속도로 좋아졌다. 하지만, 1학년 전부와 2학년 초반의 성적만 대학입시에 들어가기 때문에 결국 나의 목표 대학이었던 카이스트 진학에는 실패하고 만다. 더 좋은 학교라고 지금도 자부할수 있는 광주과학기술원(GIST)에 1기로 입학하였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고,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지스트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고 싶었다.


물론 그때도 카이스트에 가고 싶었다. 유혹은 참 많았다. 2+3이라고 카이스트 학사편입제도를 통해 손쉽게 카이스트 학부에 진학할 기회도 있었다. 쓰지 않았다. 그건 GIST 1기생으로서 배신이라고 순진한 나는 생각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서 지스트 대학 졸업장을 얻었다. 카이스트 학부, 카이스트 전자과 대학원, 카이스트 기술경영학과 대학원. 3번의 시도끝에 결국 카이스트 기술경영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생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꿈을 이룬것 같았다. 하지만 영광스럽고 기쁨도 잠시. 전기전산을 전공한 나는 경영도, 영어도 되지 않는 그냥 바보 학생이었다. 경영은 내가 생각한 실무 경영과 딴판에 그냥 논문을 읽고 연구를 하는 삶이었다. 물론 연구를 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카이스트라는 간판을 그렇게도 가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석사과정 2년이 참 힘들고 고단했다. 좋은 일도 있었다. 좋은 연구실, 좋은 교수님, 좋은 선배, 좋은 후배, 좋은 동료. 그냥 내가 모자란 사람이었다. 


책으로 도피했다. 연구실에 나가지 않고 도서관에만 있었다. 그냥 똑똑해지고 싶었다. 성적은 잘 못받지만, 영어도 못하지만, 대학원 생활에 적응도 잘 못하지만 똑똑한 학생이고 싶어서, 매일 도서관으로 출퇴근을 했다. 정말 열심히 책을 읽었다. 한글로 쓰여있어서 영어로된 논문보다는 이해가 잘 되었다. 쉬운책부터 읽었다. 내가 전부터 좋아하던 자기계발서 위주로. 만화. 역사. 근현대사. 미술, 철학으로 범위를 확장시켰다. 많은 대학원 사람들은 날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적응을 못하는 아이쯤으로 생각했던것 같다. 그 많은 나에 대한 평가들은 참 많이 신경이 쓰였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박사과정에 떨어졌다. 아니 당연히 떨어져야 맞다. 낮은 학점에. 난 당시 군대를 갔다왔던것도 아니었으니 당연히 입대를 하는게 맞았다. 카투샤는 학부때 써서 떨어졌으니, 공군을 지원했다. 분명 필기에는 2등이었는데, 면접을 보더니 떨어졌다. 결국 육군에 지원을 하려고 했다. 그 맘때쯤 사람인을 통해서 사장님으로부터 이메일이 한통 도착했다. '전문연구요원'으로 면접을 볼 생각이 없냐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자포자기였다. 한 3개월동안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아무렴 어때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면접이니, 열심히 준비했다. 회사 위치는 어디에 있고,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업무를 하게 될 것인지 준비를 했다. 


면접에 붙었다. 그 회사에서 지금 11개월 째 일하고 있다. 


우상의 몰락이라고 안철수에 대한 이야기를 할려고 글을 썼는데, 자전적인 글이 되어버렸다. 안철수 전 당대표는 정계은퇴를 해야 맞다고 생각한다.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져야 한다고 했는데, 법적인 책임과 정치적인 책임은 다르다. 기업가에게는 법적인 책임을 면하면 나머지는 괜찮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정치인은 다르다. 국민이 그를 정치권으로 불러드렸을때는, 그런 새정치를 하라고 한게 아니었다. 지금의 그의 정치는 구태정치, 옛날 정치이다. 적어도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먼저 책임을 질 수 아는 패기와 배짱, 그리고 용기가 있었다. 이렇게 타이밍 늦게 죄송합니다. 당을 위해서 어떤 일이라도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는것은 책임있는 '정치인'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다. 



출처 http://blog.naver.com/ss6689/221049884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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