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와 남동생이 먼저 결혼해 아이를 둘씩 낳았습니다.
그중 첫째 조카가 그 무섭다는 중2인데요.
제가 얘를 참 예뻐합니다.
솔로오징어 고모 잘 있는지 시간 날때마다 깨톡 날리고   
제 생일, 그리고 혼자라서 더욱 외로운 무슨무슨 데이 때마다
용돈으로 선물 사서 우편으로 보내는...참 고마움이 끝도 없습니다. 

 

조카는 오빠 직장 때문에 지방에 살고 있어요.
며칠전,
언니랑 통화하면서 오빠가 애한테 손찌검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너무 놀랐습니다.

 

오빠와 저는 어릴때부터 물과 기름 같은 사이로 지냈어요.
코드가 안 맞는다고나 할까요.
학창시절에는 거리에서 마주쳐도 남남처럼 스쳐지나갈 정도로 서먹했고,
지금도 사실 그런 편입니다.
그런데 한없이 재수없어도
오빠가 누구한테 싫은 말 한 마디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물론 저는 예외이지만,)

사실 맞았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당장 저녁 기차 타고 내려가 혈육의 멱살을 잡고
"사춘기 애 그렇게 때릴려면 호적 나한테 넘겨!!"라며 소리치고 싶었어요.
하지만 아이를 때렸다는 것은
이 인간이 정말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다는 생각에
감정을 삭히고 이유부터 알아야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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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에게 짤막한 이유듣고
조카한테 
전화기 넘겨달라고 했어요.
문답식으로 요약할게요.

 

조카 이름은 태명인 '건담'이라고 하겠습니다.
(건담_ 오빠가 건담로봇 광팬이라 언니가 그렇게 반대했는데도
지었다네요. 하여간 똥고집은 예나 지금이나)

 

"건담아, 아빠가 왜 너를 때렸어? 이유가 있을 것 아니야?"

 

"먹방 bj하고 싶다고 했는데, 막 화내면서"

 

"먹방 bj?? 먹는 방송하는 사람?
고모는 그런 것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 들었지
자세히 몰라. 그냥 먹는 거야? 왜 그걸 하고 싶어?"

 

"사람들이랑 소통하고 싶어서. 그리고 내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고 싶어서"

 

"사람들이랑 소통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왜 꼭 먹는 걸로
해야해? 나는 그리고 젤 궁금한 게, 먹방 bj가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니 거니?"

 

"많이 먹으니까.... 여러 사람 앞에서.... 실시간으로"

 

"근데 건담아. 너는 편식도 하고
무엇보다 많이 못 먹잖아?"

"그러니까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고 싶다는 거야. 고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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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붕이 왔어요.

 

그런데 저는 먹방 bj라는 이름만 들었을 뿐,
그들의 세계가 어떤지
도무지 알 수 없어
일단 좀 알아야 애와 대화가 가능하겠다고 생각했어요.

 

먹방 bj들을 어떻게 볼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유투브 어플로 들어가서 검색창에 먹방 찍으면 된다고 했어요.

일단 전화끊고
깔아놓고 등한시했던 유투브 어플에 들어가 먹방을 쳤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채널이 뜨더군요.
밤새도록 스맛폰 배터리를 수혈하며
이 사람들이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인가를
꼼꼼하게 살펴봤어요.

 

그래서 내린 결론은
내 사랑하는 조카는
먹방 bj를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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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전화. (이것도 요약)

 
"건담아, 고모가 어제 영상을 많이 봤어.
그중에서도 밴쯔, 엠브로, 떵개, ... 이 사람들이 가장 잘 먹더라
흘리지도 않고 깔끔하게~ 야식이라는 사람은 라면을 10개 20개씩 삶아먹더라
고모 깜짝 놀랐어. 다들 엄청나게 먹어서"

 

"와아...고모도 봤어? (애가 너무 행복해합니다)"

 

"네가 이 bj들처럼 되고 싶다는 거지?"

 

"응!! 열심히 노력하면 될 것 같아"

 

"근데.. 너 있잖아. 내가 보기에는 가능성이 없어"

 

"왜? 이유가 뭔데?"

 

"고모가 영상보면서 느끼고, 네가 먹방 bj가 되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겠다는 이유를 하나씩 말할게. 얘기 듣고 네 생각을 말해봐"

 

"응"

 

"그 사람들 하나같이 너무 잘 먹어. 너는 밥 한공기도 겨우 비우지?
이 콘텐츠가 일단은 많이 먹는 게 중요한 것 같은데
너는 그걸 소화할 수 없다는 얘기야. 사람 몸이라는 게
노력해서 될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어. 특히 먹는 거는
자기 양보다 많이 먹으면 아프기 마련이거든. 이건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문제랑은 다르다고 봐."

(조카: 아무말 없음)

"그리고 다음. 먹방세계도 경쟁이 굉장히 치열해 보이는데
많은 사람과 소통하려면 뭔가 내가 운영하는 채널로
사람들이 모이게끔 하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는 거야.
그게 뭐야? 메뉴잖아?
이 사람들 보니까 메뉴가 하루하루 달라.
그렇게 다양하고 많은 음식을 누가 요리해서
식탁을 차려줘? 엄마는 회사 다니는데
네가 그 음식들 만들어서 방송할 자신있어?

"아니 그건 고모~ 집밥먹고, 또 편의점이랑 배달음식도 있고"
처음부터 어떻게 완벽하게 해??
그리고 요즘은 집밥이 유행이고, 냉장고에 외할머니가
만들어 준 반찬도 많고... 나 그리고 치킨이랑 피자랑 중국집 쿠폰도
많단 말이야."

 

"그리고 건담아. 고모는 젤 걱정되는 게 하나 있어"

 

"뭔데?"

 

"bj들 먹방하는 것 보면서 댓글을 봤는데
좋은 소리 하는 사람도 있지만, 막 욕하는 사람도 많더라.
너 먹방하면서 그런 글 읽으면 마음 안 아프겠어?"
너도 먹방보면서 그런 댓글 많이 읽었을 것 같은데?

(조카 성격을 알기에 질문했어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냥 먹는 것에 집중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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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장 중요한 걸 물어봤어요.

 

"고모는 지금까지 네 얘기 잘 들어주고,
하고 싶은 것 있으면 거의 찬성했다고 생각하는데 넌 어때?"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물어보는 거니까 솔직하게 대답하면 좋겠어."

 

"응"

 

"너, 먹방하고 싶은 게 돈 때문이야?"

 

"....."

"고모가 어제 방송보고 뉴스기사도 많이 찾아봤거든.
bj들이 돈을 많이 번다는 걸 읽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물어본 거야."

"꼭 그런 건 아닌데.. 그래도 벌면 좋지"

(이 부분에서 너무 놀랐어요.
얘가 돈 때문에 그러는 것 같다 싶기도 하고요)

 

"돈 벌면 뭘 하고 싶은데?"

 

"돈 있으면 사고 싶은 것 살 수 있잖아.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차곡차곡 모아서"

두번째 멘붕.

"집이랑 차는 어른돼서
열심히 직장 다니며 일하면서 차곡차곡 모아도 살 수 있어.
그리고 지금 사고 싶은 것 있으면
엄마랑 아빠한테 말하면 되는 거잖아.
용돈도 있고.
먹방 bj가 되려는 이유가 돈 때문이라면
고모는 엄마, 아빠처럼 반대야. 생각 다시했으면 좋겠어"

"..............
...............
........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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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처음으로 돌아가

언니 얘기로는 
애가 언제부턴가 밥알이 목구멍에 보일 정도로
많이 먹었더래요. (일종의 연습을 했던 것 같아요)
종종 토하고, 소화제 먹이고.

 

오빠가 손찌검을 한 날,
가족이 거실에서 tv보는데
애가 휴대폰으로 먹방봐서
오빠가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나 이거 할 거야"라며 방송용 카메라 등등 장비 사달라고 했다네요.
그 엄청나게 많은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 기암한
오빠가 애 설득하다가 화나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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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와의 대화는 녹음해서 부부와 공유했어요.

 

현재
애 먹방하겠다는 얘기 안하고
밥도 자기 페이스 유지하면서 먹는다고 합니다. 

 

짠돌이 오빠, 아이 용돈 3배 인상
저는 조카가 '가장 사고 싶은 것'으로 꼽은
운동화와 컴퓨터 초와이드 모니터에 근 백만원 투입.   
프리양육을 고집했던 언니, 그 이후로 아이 잘 때
휴대폰 검사 실시하는 버릇생겼답니다. (먹방 보는지ㅠㅠ)

*** 정작 애는 먹방에 관심이 없는지 잔잔한데~~~

어느날 찾아온 먹방 바람,

돈을 쉽게 버는 직업은 없지요.

 

저는 먹방 bj들 영상보면서
"와아~ 이 직업도 참 기술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조카 설득하려고
하룻밤 파고든게 인연이 되어
정작 내가 먹방을 종종 찾아보며
즐기고 있다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긴 얘기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