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박사박 거리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시원한 느낌이 든다. 푸른 풀과 푸른 하늘. 조금은 즐거운 산행이 될 것 같다. 그는 웃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나왔다. 잠깐 큰 바위에 앉았다. 날씨도 날씨인 만큼 휴식은 중요하다. 목을 따라 흐르는 땀방울을 슥 닦고선 물을 마셨다. 그에게도 물병을 줬지만 그는 단지 웃을 뿐이었다. 이 더운 날에도 나에게 물 한모금 더 마시라는 배려일까. 역시 내가 사랑에 빠질만한 남자다. 살짝 붉어진 얼굴로 물을 마셨다. 이쯤 올라오면 역시 아름답다. 흰 구름들과 푸른 하늘, 그리고 끝없는 산줄기가 펼쳐진 풍경에 잠시 멈추곤 한다. 하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움직이고 싶지는 않지만. 그는 웃고 있었다. 그 웃음에 조금 힘이 났다. 다시 가볼까. 조금 무거운 가방을 다시 메고 일어섰다. 끝없는 산길은 온통 푸른 나무들로 가득했다. 숨을 들이쉴 때 마다 느껴지는 풀내음과 그윽한 솔향이 점점 목적지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렸다. 잠깐 멈춰 그를 돌아봤다. 그는 웃고 있었다. 언제나 웃어주는 그의 미소만큼 나를 움직이게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지금도 이렇게, 나를 움직이게 한다. 조금은 무거운 가방을 멨지만 이렇게 움직일 수 있다. 언제나 그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그것은 진심이다. 자박자박 거리는 소리가 점차 얕아지고 팍 팍 거리는 자갈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곧 목적지다. 사랑하는 그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곳이다. 그는 웃고 있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새하얀 구름이 하늘 높게 걸려있고 청록색 산맥이 마치 뱀처럼 몸을 늘어뜨린, 그 한가운데에 푸른 바다와 아기자기한 집들이 나란히 모여있는 그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일 것이다.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가장 사랑하는 그에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웃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웃었다. 이만하면 됐을까. 나는 핀을 뽑았다. 검붉은 무언가가 말라붙은 핀을 대충 땅에 던졌다. 하나 둘 셋 ... 꽤나 고된 작업이었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실밥을 풀었다. 너무 안풀려서 잠깐 가위를 박아서 잘라내기도 했다. 다행히 근육은 건드리지 않았다. 모든 실과 핀들이 떨어져 나왔을 때 그제서야 나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잘 고정되었다. 그는 잘 웃지 않았다. 참 아름다운 미소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래서 고정시켰다. 근육들을 들어올리고 서로서로 잇고 꽉 묶어주고 포인트 별로 핀을 꽂아 고정시켰다. 아름다운 미소다. 이 풍경에 어울리는. 그를 내려놓았다. 나란히 몇개의 머리들이 있었다. 버섯이 피어난 몇개의 머리들을 삽으로 긁어냈다. 초기작들은 역시 조금 어색한 미소다. 그러고보니 가장 처음으로 만든 미소가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대충 손으로 집어 보고서 절벽아래로 휙 던졌다. 미소가 사라진 백골에는 관심없다. 나는 그와 함께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참 아름답다. 그의 미소처럼.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