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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 속의 여자
게시물ID : panic_9450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수컷수컷
추천 : 22
조회수 : 230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7/30 19: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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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T현의 자연사 박물관은 J국에서 가장 큰 자연사 박물관입니다. 그 박물관의 지하 1층에는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데, 중앙에 둥근 홀이 갖추어져 있고 홀의 중심에는 두꺼운 유리로 된 관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 관 안에는 20대 중반으로 여겨지는 여자의 미이라가 있습니다. 코는 오똑하고, 콧날은 폭이 좁아서 칼을 세워놓은 듯 날카롭지요. 두 눈은 깊고 눈두덩 뼈가 높아 어딜 보아도 이국적인 생김새의 소유자입니다. 입술 주름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는 그녀는 마치 잠에 빠진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답니다.


‘늪 여자’라는 이명(異名)의 여자 미이라는 최신식 온습도 조절기와 일정 시간마다 도료되는 부식방지액 덕분에 발견 당시보다 아주 약간 부패되었을 뿐, 그때와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 여자 미이라의 발견에 대한 이야기는 서적으로도 몇 권 출판되어 있는데요, 나는 여기서 그 책에 수록되어 있지 않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여자 미이라의 발견자로 알려진 S교수에 대해 조금 얘기를 해보아야 겠습니다. S교수, 줄여서 그냥 교수라고 지칭하겠습니다. 교수는 J국 고고학계의 젊은 권위자로 알려진 남자였습니다. 세간의 교수라는 이미지는 두꺼운 뿔테 안경에 비리하고 마른 몸, 통이 넓은 바지와 늘어난 어깨선의 트위드 재킷, 유행 지난 구두 정도로 떠올리실 겁니다. 교수는 그와는 다르게 오히려 셀레브리티 같은 이미지로, 학자란 고지식하다는 기존의 편견을 반례로 인용되기도 했습니다. 북유럽인 조부의 혈통을 물려받아 190cm이 넘는 장신에 스포츠로 단련된 탄탄한 바디, 적당하게 태닝한 피부와 가지런한 흰 치아에다 유머러스한 성격에 유려한 말솜씨까지, 거기다 패션감각까지 겸비한 그는 그야말로 고고학계의 아이돌이었습니다. T현립 대학교의 정교수직을 본업으로 하면서 J국 고고학회 부회장까지 겸임하고 있는 교수는 정계 입문까지 제의받을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누가 보아도 성공한 인생의 승리자이자 많은 젊은이들의 멘토였지만,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의 다른 부업에 대해서는 그들만 아는 비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교수의 부업은 바로 도굴꾼입니다. 흔히 생각하는 도굴꾼은 야음을 틈타 사람들이 모르는 새 발굴된 무덤의 부장품을 훔쳐 암시장에 내다파는 정도로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교수는 그런 부류와는 격을 달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합법적으로 설립된 갤러리를 통해 커미션을 받고, 유물 수집이라는 고매한 취미를 가진 정재계의 인사들에게 인도하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그게 교수의 본업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번은 A현에서 출토된 놋쇠 술잔 유물을 G사의 회장에게 인도하고 받은 돈이 그가 수년간 대학교수로 재임하면서 번 돈보다 훨씬 많았다고 하니 말입니다.

이런 어두운 단면에도 불구하고 그가 유능한 사람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교수의 주변인들은 그의 진면목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그의 흠이라 여기지 않고 오히려 능력의 또 다른 발현 정도라고 인정해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 정도로 그는 자기 이미지 관리에 철두철미했고, 매스컴과 세간에서 그의 이미지에는 조금의 악영향도 가지 않았습니다.

나는 군을 제대하고 소일거리로 교수의 발굴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평범한 큐레이터 지망생이었습니다. 말이 큐레이터 지망생이지, 사실 집에서 보내주는 돈을 까먹으며 하루하루 무의미하게 보내는 가난한 대학원생에 지나지 않았답니다. 때문에 저는 교수가 호출할 때면 기쁜 마음으로 발굴 작업에 힘을 보탰고, 그의 부정을 모른 채 하면서 받는 용돈으로 생활비에 보태쓰곤 했습니다.


서론은 여기까지로 하고, 본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어느 날 교수는 평소 면식있는 H의원, 그러니까 당시에는 의원이었습니다만 어쨌든 여러분이 잘 아시는 그 분과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H의원으로 말할 것 같으면 O컬렉션 수준까지는 아닙니다만 골동품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진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었지요. 저녁 식사로 한 병에 당시 내 한달 생활비보다 비싼 브랜디로 맛과 향을 낸 푸와그라를 먹으면서 H의원이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고 합니다.


T현의 산속에는 현지인들도 잘 모르는 늪지대가 하나 있는데, 그 지방에서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한을 품은 여자가 스스로 몸을 던졌고, 아직도 그 밑바닥에서 머물며 지나가는 남자를 물에 빠뜨려 죽인다는 것입니다.


“전형적인 물귀신 이야기로군. 진부해.”


식사 후 연구실로 돌아온 교수는 H의원의 얘기에 대해 평했습니다.


“왜 그런 종류의 이야기가 생기는지 아는가? 공포심 때문이라네. 생각해 보게. 태고에는 지금 같은 전기도 없고 발전된 주거환경도 없었어. 어둠이 오고 밤이 되면 모든 게 암흑으로 뒤덮히고 아침이 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겁에 질려 벌벌 떨어야 했지. 어둠 속에서 공상을 하게 되면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있지도 않은 것을 지어내게 된다네. 존재하지 않는 환상을 실제라고 믿으며 그나마 위안을 얻게 되는 거야. 왜냐면 실체가 있다는 것은 대처할 방법이 있다고 여기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갓파 같은 것들이 생겨난 거야. 옛날에는 물가에서 놀다 빠져죽은 아이들이 많으니까 있지도 않은 요괴를 만들어 아이들로 하여금 물가를 무서워하도록 만들었던 거지. 재미있게도, 누구도 본 적 없는 이런 공포의 대상에게 형체를 주며 희화화하기도 한다네. 반대로 그 실체를 자기 것으로 하는 것으로 권위를 높이려는 사람도 있고. 아, 이건 고래로부터 많은 권력자들이 사랑해 마지않은 정치 수단이기도 했네. H의원이 목적하는 것도 바로 그런 것이겠지.”


상관없는 얘기입니다만, H의원은 그 늪이 있다는 T현에서 대대로 의원직을 계승해 온 정치인 가문 출신입니다.


“하지만 사료에 따르면 그 지방은 늪에 빠져 죽었다는 사람 얘기가 단 하나도 없어. 지역 특색이 그래. 수해하고는 인연이 없는 산촌이니까. 그렇다면 대체 물귀신 여자 얘기는 어떻게 나온 것일까?”


잠시 고민하던 교수의 눈이 번뜩였습니다.


“어쩌면 물귀신 이야기 자체가 늪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는 허구의 소문일 가능성이 있어.”


교수는 그 길로 대학 행정본부를 찾아가 단기 휴직을 신청하고 필요한 서류와 장비를 준비하라고 나에게 지시했습니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가 돈 냄새를 맡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환경법 상 오래된 자연 습지대는 T현에서 관리해야 마땅하지만 이 늪은 규모가 너무 작아서 관리 대상에 속하지 않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시내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개발계획 하나 없고 변변한 도로도 없기 때문에 굳이 관리 대상으로 지정하지 않아도 누구 하나 손대지 않는 곳이라고 합니다. 대학에서 밴을 빌리고 여러 가지 상황에 대비하여 장비를 챙긴 나는 다음날 바로 교수를 태우고 T현으로 향했습니다. H의원이 알려준 산길을 따라 가니 그새 포장도로가 사라졌고,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1시간 정도 달리니 오르막길이 나타났습니다. 다시 그 오르막길 밴으로 간신히 올라가자 조금 트인 평지가 나왔는데, 평지가 끝나고 다시 산이 시작되는 접점 사이에 늪이 있었습니다. 늪은 초등학교 운동장 반보다 작은 사이즈로 매우 아담했지만 늪 뒤로 산등성이 두 개가 나란히 겹쳐 있어 산 정상의 수원이 흘러들기 적절한 위치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수심은 3m 정도, 하지만 늪에서 풍겨오는 분위기는 그보다 더 깊은 물을 가두고 있어 보였습니다. 늪 주변으로는 울창한 수림이 자리하고 있어 늪 위로는 한낮에도 그늘이 졌습니다. 서늘한 것보다 더 차가운 공기가 늪 주변에 무겁게 내려앉아 마치 고산지대에 있는 기분을 주었는데, 왜 이 지방 사람들도 여길 찾지 않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무엇보다 독특했던 것은, 늪 주변으로 새나 벌레의 울음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마치 늪 주변이 모두 죽어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수면 위 개구리밥은 진한 초록의 색을 띄고 있었고 오래된 물비린내에서는 풀냄새가 섞여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오직 늪만이 살아있고 늪 주변의 지대에서는 어떤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질 않았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런 버려진 장소에서 유물을 발견할 수 있을까, 궁금해진 내가 물으니 교수는 크게 웃었습니다.

“군! 군은 상상력이 결여되어 있어! 그게 군의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교수가 어떤 근거로 이 늪지대를 과거의 유적지로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에게는 팔아넘길 수 있는 유물이 있는 장소를 파악하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습니다. 그 재능이 뛰어난 지성, 건강한 육체와 맞물려 그는 대학의 교수라는 합법적인 사회적 지위를 가진 채 유적지의 유물을 뒤로 빼돌려 그의 부를 축적하는데 도움을 준 것입니다. 나 같은 범인은 재능을 가진 자를 따라다니며 이따금씩 주어지는 콩고물에 만족하며 사는 게 오래사는 한 방법입니다. 속물근성이라 비웃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당시의 나로서는 그게 최선이었고 나는 교수가 시키는 것에 토를 달지 않는 것으로 그의 신뢰를 얻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에도 역시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당시 교수는 평소와 다르게 준비가 허술했다고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탐사는 시작도 전에 당초 계획에서 틀어져 버린 것입니다. 몇달 동안 비가 오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늪의 탁도(濁度)가 조사했던 자료보다 많이 높아, 가지고 온 원격 탐사장비로는 수심에서 매우 얕은 곳까지 밖에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방법은 원격장비가 아니라 직접 잠수장비를 갖추고 대면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비상용으로 가져온 것이지만 장비 자체는 꽤 훌륭한 것이라 늪 밑바닥까지 닿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초 교수와 나만 동행한 조사였기 때문에, 잠수장비를 착용할 다이버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군을 데려온 게 아니겠나.”

교수는 덤덤히 말했습니다.




나는 초심자였기에 최소한의 잠수장비, 그러니까 산소호흡기와 산소탱크만 장착하고 탐사용 고광도 라이트 하나 걸쳤을 뿐이지만 물먹은 솜을 두른 것마냥 몸이 무거워 제대로 걷지 못했습니다.

“여긴 그런 게 없다네. 보물상자라도 있으면 있겠지. 겁내지 말게나.”

진짜 늪에 귀신이 있으면 어떡하냐는 물음에 교수는 자신있게 답했습니다. 밴에 설치된 윈치를 벨트고리에 연결시키고 스위치를 받자, 나는 그제야 직접 오래된 늪바닥에 잠수해야 한다는 게 실감이 나질 뭡니까. 두려워서 늪 가장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는 나를 보더니 교수는 이해한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문명의 기원은 공포에서 시작되네. 예를 들까. 선주인들은 어둠을 두려워해서 어둠을 몰아내는 태양신을 만들고 숭배했어. 라, 미트라, 아마테라스... 모두 공포가 만들어낸 현신이라네. 때문에 문명의 발자취를 탐구하고자 하는 우리는 그 무엇보다 공포라는 것을 이해해야 할 자세가 필요하네. 그리고 공포와 익숙해지려면, 공포를 직접 겪어봐야 한다네.”


그리고 교수는 나를 늪으로 밀어넣었습니다.

늪 속에 들어간 순간 속으로 온갖 저주를 내뱉었지만, 교수의 이런 업무 스타일은 학계에서 ‘카리스마적 리더십’이라고 불리는 모양입니다. 안전 수칙이라고는 대놓고 무시하지만 성과가 있는 사람이기에 그는 용서받는 것 정도가 아니라 추앙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다시 늪을 나가려면 반드시 그 성과를 갖다바쳐야 한다는 걸 깨닫고 탐사를 시작했습니다.


수온은 예상했던 것보다 매우 낮아, 단열재가 몇 겹이나 들어간 잠수복을 입었는데도 맨 몸으로 얼음물에 들어간 것처럼 추웠습니다. 밀도는 수분보다 높아서 온 몸을 랩으로 칭칭 싸매어진 것처럼 몸을 가누기 힘들었고요. 팔 하나 움직이는데도 늪의 점성 때문에 20kg 짜리 아령을 들어올리는 힘을 들여야 했죠.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요령을 터득했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행동의 방향에서 아주 약간만 힘을 주면 관성에 이끌리듯 몸이 저절로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겠습니까. 다소 자유롭게 되자 나는 본격적인 늪 바닥 탐사에 나섰습니다. 시야는 탁했지만 라이트의 광원에 들어오자 식별하는 것에는 무리가 없었습니다.


늪 바닥에는 수초가 머리카락처럼 길게 자랐고 검은색 진흙이 잔뜩 깔려있었습니다. 과연 오래된 늪 답게, 바닥 듬성듬성 사슴처럼 보이는 동물의 사체도 있었지요. 과연 저 바닥 없는 밑바닥으로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묻혀 있는 것일까요? 그런 생각을 하며 라이트가 옮겨간 곳에, 유달리 수초가 무리지어 뭉친 곳이 들어왔지요.


거기에

사람이 있었습니다. 수초무리가 누에나방의 고치처럼 여자의 몸을 감싼 채, 얼굴만 수초 이파리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스위치를 눌러 윈치를 당겼습니다.

그것이 늪 여자의 첫 발견이었습니다.





사실, 처음 발견했을 때 나는 물론 교수 또한 동시에 ‘공쳤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면 늪 여자의 상태가 너무나 양호해서, 죽은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 같아 보였다는 거죠. 거기다 여자는 목에 밧줄이 매여져 있었을 뿐 아니라 발견 당시 늪 여자의 표정이 고통과 증오에 가득찬 고뇌로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불쌍한 여자가 살해당하고 난 뒤 늪 속에 유기되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약간의 시간이 지나 진정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녀가 입고 있던 복장이 지금 시대의 것과 너무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과, 여자의 생김새나 신장도 다른 민족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당초 살해 유기로 현장을 찾았던 경찰이 도리어 공을 치며 돌아갔고, 늪 여자는 즉시 특수 케이스에 밀봉되어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가까운 연구시설로 옮겨졌습니다. 거기서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는데, 늪 여자가 걸치고 있던 옷가지를 통해 탄소연대로 추정하길 늪 여자는 적어도 2000년 전의 인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세기의 대발견이 아닐 수 없었지요. 알프스 산맥에서 5300년된 남자의 미이라가 발견된 적이 있었고 그 미이라의 상태도 매우 훌륭했지만, 이것도 그에 뒤지지 않는 수준이었던 것입니다. 낮은 수온과 점성이 높은 늪의 진흙이 산소를 차단하고, 건조한 늪지대의 공기가 늪 여자의 부패를 막아왔던 겁니다.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 늪 여자의 직접적인 사인은 목에 매여져 있는 밧줄에 의한 교사(絞死)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몸에 걸치고 있던 장신구가 그대로 였던 점, 양손이 결박당한 채 였던 것으로 미루어, 그녀는 악의적인 공격이 아니라 의도적인 인신공양의 제물로 바쳐졌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늪 여자의 발견으로 교수의 명성은 한층 더 올라가고, 한동안 늪 여자가 발견된 늪지대 주변은 중요한 유적지로 마킹될 예정이었습니다.


잠시 ‘업계’ 용어를 말씀드리자면, 마킹이라고 하는 것은 유물이 발견된 장소에 외부인이 찾아와 현장을 훼손하거나 중요한 유물을 훔쳐가지 못하도록 보호 지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킹 이후에는 허가된 인원만 상주할 수 있고 유적지에 예정 또는 계획되어 있는 개발 계획은 전면 무기한 보류됩니다. 때문에 교수 같은 도굴꾼들에게는, 어떻게든 마킹 지정되기 전에 유적지에서 한몫 버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안타깝게도 교수는 늪 여자를 발견하자마자 경찰에 신고를 했고, 늪 여자가 청동기 시대 여자의 미이라라는 것을 알게 되는 사이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었습니다. 살해 현장을 훼손하는 건 큰 죄가 되는 것이니까요. 때문에 교수로서는, 역대 가장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 되니 적잖게 속이 쓰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순히 물러설 교수가 아니지요. 그는 최초 발견자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며 마킹 기일을 하루 연기해 달라 했습니다. 교수가 문외한이면 웃으며 넘어갈 억지였겠지만 그는 학계에서 인정받는 젊은 학자이고 또한 그의 입김은 꽤 여러 관계자들을 좌지우지할 정도였답니다. 공식적인 요청 사유로는 발견 당시 너무 정신이 없어서 비싼 조사 장비를 놓고 왔기에 그것을 회수하러 간다는 것이었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그가 하루 동안 뭘하려는지 다 알고 있었지요.


어쨌거나 마킹 지정 하루 전날, 교수는 있지도 않은 장비를 회수하기 위해 밴을 타고 늪지대로 다시 향했습니다. 물론 저를 동행하고 말입니다. 교수가 말하길, 늪 여자는 그 자체로 귀중한 유물이지만 분명 늪 속에는 그녀만큼 중요한 가치를 지닌 유물이 아직 가라앉아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교수가 원하는 것은 그가 충분히 감출 수 있는 작은 크기의 유물, 예를 들면 늪 여자가 제물로 바쳐질 때 차고 있던 팔찌나 목걸이 같은 것들이었죠. 그는 그런 것이 두어 점만 있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무려 청동기 시대 미이라의 부장품이라니, 값이 어마어마하게 나갈 거라고 즐겨워했습니다. 물론 교수는 당연히 내가 늪 속에 들어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도착한 T현의 늪지대.

늪은 처음에 보았던 때와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처음 방문 시 보았던 늪은 사람의 접근을 꺼리게 하는 음울한 분위기를 풍겼지만 그래도 그 나름의 완전성을 지니고 있었다면, 두번째 방문한 늪은 불완전성을 내뿜으며 다가가는 모든 생물의 존재를 거부하는 이질감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분위기가 그러거나 말거나, 교수는 이번에도 부업으로 한몫 단단히 잡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늪지대에 장비를 설치하였습니다.

그런데, 시작도 하기 전부터 교수의 부업은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탐사장비의 배터리가 나가버린 것입니다. 분명 첫번째 방문에서는 가득 충전되어 있던 배터리가 말입니다. 예비 장비도 점검하였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어느 새 저녁노을이 산등성이 사이로 숨어버리고 어둠이 늪지대를 채웠습니다.


“가까운 편의점에서 배터리를 사오게. 밴으로 20분이면 있을 거야.”


나는 교수가 말한 편의점의 위치를 찾기 위해 지도를 챙기고 밴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시동을 걸고 늪지대를 빠져나가 올라온 비포장도로를 내려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것인지, 올라올 때는 없었던 산길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하면서 있을리 없는 오르막길이 나타났습니다. 지도를 잘못 본 게 아닐까 걱정하면서도 하릴없이 자동차 라이트에 의지하며 하나 밖에 없는 길을 따라 올라갔는데, 그렇게 5분을 달리자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늪지대가 다시 나타난 것입니다.


“군, 뭐 이렇게 빨리 왔나?”


교수가 의아해하며 밴으로 다가왔습니다. 나는 귀신에라도 홀린 것처럼 멍하니 앉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잠시 후 내 얘길 들은 교수는 헛웃음을 흘리며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홀로 남겨진 나는 간이의자에 앉아, 차마 늪지대를 마주하지 못하고 교수가 타고간 밴의 후미등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가끔 등뒤에서 늪지대에서 올라오는 기포 터져나가는 소리가 어둠을 타고 귓가로 흘렀지만 끝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눈을 감지도 않았습니다. 눈을 감으면 눈꺼풀 뒤쪽의 어둠 속에서 늪 여자가 눈을 뜨고 나타날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한 일은 그저 두팔로 어깨를 감싼 채 머릿속으로 초시계를 상상하며 교수의 귀환을 기다리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머릿속의 초시계가 다섯 바퀴를 돌았을 때였습니다. 멀리서 밴의 안개등이 눈에 들어왔죠. 등허리에서 차가운 벌레들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것 같았습니다. 불과 5분이었습니다. 절대, 밴이 20분 거리의 편의점에 갔다 돌아올 시간이 못되었습니다. 밴은 서서히 속도를 줄였고, 나는 조금 전 나와 똑같은 표정으로 밴에 앉아있는 교수를 보았습니다. 우리 둘은 아무 말도 없이, 이번에는 둘이 함께 밴을 타고 다시 늪지대를 떠났습니다.


“도로는 하나 뿐이야. 절대 잘못 들어섰을리 없어.”


운전대를 꽉 잡은 교수의 내게 한 것인지 아니면 혼잣말일 뿐이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밴은 규정속도를 넘어서 비포장도로를 달리느라 위아래로 심하게 요통쳤지만 나는 교수의 운전을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교수가 급브레이크를 밟자 앞유리창에 머리를 세게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교수도 갑작스런 급정거에 핸들에 이마를 박은 채로 앞을 응시하는데, 안경 너머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새 벌겋게 부어오른 이마를 부여쥐며 천천히 교수의 눈길을 따랐습니다.

우리 앞에는 늪지대가 있었습니다.




“아마 밤이 늦어서 우리가 길을 헤맨 걸세. 오늘은 여기서 야영을 하세. 날이 밝으면 즉시 탐사를 시작하자고. 발굴단이 오기 전에 하나라도 건지세나.”

조금 전에 길은 하나 밖에 없다고 했으면서도, 교수는 그렇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나 봅니다. 그는 스스로 납득시키기에 충분한 이유는 오직 우리의 착오 뿐이라고 단정지었습니다.

그 날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마를 유리창에 부딪힌 나는 조금 멍한 상태로 눈을 감았고, 불편한 카시트에서 금세 잠에 빠졌지 뭡니까.

꿈 속에서, 나는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고대의 인신공양 현장을 보았습니다. 한 여자가 두 손이 뒤로 결박당하고 목에 밧줄이 매여 있는 상태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늪까지 끌려왔습니다. 나는 꿈속에서 단번에 그 여자가 늪 여자라는 것을 알았지요. 늪 여자를 끌고 온 사람들은 그녀보다 키가 작고 말랐지만 저마다 손에 날카로운 돌창과 두꺼운 몽둥이를 들고 있었습니다. 늪 여자가 알아들을 수 없는 고대의 언어로 뭐라 소리쳤지만 어느 누구도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 중, 높은 지위에 있어 보이는, 흡사 제사장처럼 보이는 남자가 늪 여자에게 다가갔습니다. 남자는 역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무언가 말을 하더니 늪 여자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자 그녀 뒤에 있던 사람들이 늪 여자의 목에 매여있는 밧줄을 서로 반대방향으로 당겼습니다. 줄이 팽팽해 지자 늪 여자는 발버둥쳤습니다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그것 뿐이었습니다. 그 도중에 제사장이 두 손을 하늘로 뻗으며 기도로 추정되는 말을 외자 선주인들이 바닥에 엎드려 늪쪽으로 절을 하였습니다. 마침내 늪 여자의 숨이 끊어지자, 제사장은 늪 여자의 축 늘어진 몸을 늪으로 끌고 갔습니다. 선주인들의 기도 소리는 점점 높아졌고, 제사장은 자기 허리가 늪에 찰 때까지 들어가고서야 걸음을 멈추고 여자의 몸을 늪으로 밀었습니다. 늪 여자의 몸이 천천히 늪 속으로 흘렀습니다. 제사장이 다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고 기도를 올리니 그에 호응이라도 하듯 늪 여자의 몸이 갑자기 빠르게 늪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최종적으로 늪이 완전히 여자의 몸을 삼켜 버리고, 제사장과 선주인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축제를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날, 시계는 새벽이었지만 구름이 산허리에 두텁게 깔려 있어 늪지대 주변은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익숙치 않은 야영에 새벽 이슬이 밴의 창문에 가득 꼈고 간밤에 꾼 꿈 탓인지 속옷까지 흠뻑 젖어 나는 진동벨 마냥 몸을 떨었습니다. 교수는 그런 내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잠수장비를 챙겨입도록 한 뒤 처음날과 똑같이 강제로 늪 속에 떠밀었습니다. 라이트는 멀쩡했기 때문에, 탐사장비가 없더라도 육안으로 충분히 유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근거 없는 말을 하면서 말입니다.


다시 늪으로 들어간 나는, 첫날과 마찬가지로 온 몸을 휩쓰는 한기에 몸이 쪼그라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한기란 것이, 첫날 느꼈던 한기와는 또 다르게 느껴졌지 뭡니까. 굳이 어떻게냐고 물으신다면, 첫날의 한기는 그래도 진흙과 늪의 감촉이 느껴져 몸이 보호받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그야말로 칼날로 피부를 쑤셔대는 통증을 동반한 추위였던 것입니다. 한시라도 바삐 늪을 빠져나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진흙 바닥을 뒤졌지만 동물 사체조각 말고는 어느 것도 만져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첫날 내가 늪 여자를 발견한, 늪 여자가 감겨있던 수초더미를 다시 보았습니다. 묶여있던 늪 여자의 빈 자리는 수초더미에 그대로 남아있어, 그 자리에 앉으면 그대로 수초들이 나를 감싸 늪 여자에게 그랬던 것처럼 내 몸을 꽁꽁 묶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엄습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야 말로 늪 여자가 2천년 동안 잠들어 있던 장소였기 때문에, 나는 매우 조심스럽게 그 부분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사람 하나 들어갈 크기의 바닥 구멍을 발견했습니다. 늪 여자를 인수할 때는 한마디도 듣지 못했던 구멍이 말입니다.

그 미지의 구멍에서는 연신 차가운 물이 흘러들었고, 정면으로 고광도 라이트를 쏘아도 깊이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심연이라고 불러야 할 그 어둠을 바라보며 나는 한낱 인간의 지성으로 감지할 수 없는 어떤 태고적 존재 또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나는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윈치의 스위치를 눌러 그곳을 빠져나갔습니다.

간신히 빠져나온 나는 두 번 다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늪 속으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교수에게 말했습니다. 늪 속에서 본 구멍을 얘기하자 교수는 안색이 새파래져서는, 차도 놔두고 도망쳤습니다. 내가 무거운 잠수장비를 벗는 사이 교수의 모습은 저만치로 사라졌지요. 그가 듣거나 말거나 난 교수의 등뒤로 그의 욕을 한바가지 날려줬더랬습니다. 그리고 간신히 모든 장비를 다 벗고 나도 도망치려는 찰나에

교수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물론 그는 나를 위해 되돌아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동차로도, 도보로도, 우리는 늪 지대를 계속 되돌아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더 이상 탐사를 포기하고 얌전히 발굴단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오전이 지나고 오후가 지나 저녁이 되어, 발굴단은 벌써 도착했어야 할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뭔가 착오가 있을 거야. 날짜를 잘못 알고 있다던지, 발굴 장비에 문제가 생겨서 수리를 받느라 늦는 것일세.”

밴에는 음식은 커녕 졸음방지용 껑 한 통, 마실 물은 작은 페트병 몇 개가 전부였습니다. 교수와 나는 껌 한통 분량을 나눠 씹으며 발굴단이 도착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습니다.


주변에 인가도 도깨비불도 하나 없는 깜깜한 어둠, 늪 속에서 내가 본 심연의 구멍 같은 어둠이 다시금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밴의 라이트를 유일한 광원(光源)으로 하여, 간신히 어둠에 대한 공포를 떨쳐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엄습해 오는 추위와 점점 깊어지는 공복은 서서히 우리의 정신력을 갉아먹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살 수 없어. 할 수 있는 거라곤 조상들이 남겨둔 유물의 편린을 하나하나 더듬어가는 수 밖에 없어. 그렇기에 필수적인 게 바로 조상들의 생활을 추측하고, 거기에 맞춰 조사를 해가는 상상력이라고!”


나는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교수는 두서도 없이 아무 소리나 내뱉기 시작했습니다.


“새는 자기를 알아주는 나무에 앉아야 하고, 사람은 자기를 아껴주는 주인을 섬겨야 하는 법이야. 마찬가지로, 유물도 진정 그 가치를 알아주고 아껴줄 사람의 손에 있어야만 행복할 수 있어. 탁상에서 책이나 뒤적이는 샌님들 손에 들어가서 허구헌날 학식이라곤 쥐뿔도 없는 일반 관객들 눈에 구경거리로 전락해 버리면 조상님들의 과학의 정수, 나아가 그 유물을 만들기 위해 혼신을 다 바친 조상님들을 무슨 낯으로 뵙겠는가. 나는 잘못하지 않았어. 나는 오히려 유물이 가야 할 진짜 주인의 손에 갈 수 있도록 도운, 나야말로 진짜 조상들의 이해자란 말이야.”


교수는 서서히 자신을 잃어갔습니다. 그리고 매우 안타깝게도 얼마지 않아

자동차 배터리도 방전되어 라이트가 꺼졌습니다.

그렇게 두 명의 현대인은 태고의 어둠 속, 선주인들이 두려워하던 어둠에 갇히고 만 것입니다.





사흘째.

아침이 되어 조금이나마 빛이 들어오자 교수는 안정을 찾은 듯 왜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우리들에게 닥친 이 불가사의한 현상이, 모두 그 늪 여자를 발굴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늪 여자가 고고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넓고 안락한 연구실에서 해야 할 일을 좁디 좁고 냄새나는 밴 안에서 풀어냈습니다.


“늪 여자는 콧대도 높고 눈도 움푹 들어갔지. 두상 자체가 선주인들과 달라. 키도 이 지역에 출토된 주거지의 크기로 추정되는 선주인들보다 더 커. 심지어 입고 있는 장식품조차 출토된 부장품들하고는 다른 양식이지.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나?”


교수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밴 안에서 방방 뛰며 자신의 고고한 지성이 도달한 결과에 환희했습니다.


“늪 여자는 외지인이었어! 늪 여자는 이 지방 사람들에게 잡혀와 인신공양의 제물로 바쳐진 거야! 이건 정말 놀랍지 않은가? 노동력으로 쓰거나 매매의 대상이 아니라 신에게 바쳐지는 제물을 구하기 위해 먼 타지까지 원정을 나갔던 거야. 늪 여자는 그 원정의 전리품이었던 거고!”

나는 꿈 속의 내용을 떠올렸습니다. 늪 여자는 분명, 그녀를 끌고가던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르게 생겼었습니다.


“늪 여자는 외지인이었어. 늪 여자는 이 지방 사람이 아니었어. 전혀 다르게 생겼지. 키도 크고 입은 옷도 다른 양식에, 언어도 달랐겠지. 사람은 자신과 다른 것을 경계하고 공포심을 가지게 되지. 요즘도 그런데 지역과 지역이 서로 단절되어 있는 고대에는 어떠했겠나. 조금만 다르게 생겼어도 배척하고 증오하고 도망쳤어. 그것이 변형되어 설화 속 요괴와 귀신이 되는 거야. 늪 여자는 이 지방 사람들에게 있어서 단죄해야 할 망령이었다고. 선주인들은 제물로 바친 사람들의 모습을 본따, 자기들이 갖고 있던 미지의 공포를 형상화해서 이겨내려 했던 거야.”

바닥을 드러낸 이성의 조각을 그러모아, 나는 내가 목격했던 그 심연의 실체를 만들어내려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상상을 해도 그 심연을 실체화할 이미지가 없었습니다. 오직, 그 심연에 사로잡힌 늪 여자의 모습만 떠올랐습니다.




나흘째.

나는 약한 탈수 증세를 보이며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것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었습니다. 교수로서는, 글쎄요, 그에게는 불행이라 생각합니다만, 내가 알고 있기로 근육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칼로리를 필요로 한다고 들었습니다. 분명 교수는 나보다 더 많이 배가 고팠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을 강인한 정신력, 또는 정신력이라고 치부되는 광기로 억누르며 스스로를 컨트롤 했었겠죠. 하지만 그것도 짧은 시간 동안 효과가 있지, 시간이 갈수록 교수의 눈에는 엇나간 광기의 기운이 자리잡았습니다.


“이곳은 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군, 군은 어떻게 생각하나?”


교수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계속 말했습니다. 물론 나는 한 마디도 대답할 기운이 없었지만 말입니다.


“이 늪지대는, 태고의 조상들에게 어떤 곳이었을 거라고 보는가? 이 얘길 들어보게. 내가 생각했을 때, 이 늪지대는 처형장소였어. 아니지, 아니지,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곳은 신성한 제단이었어. 바쳐진 제물들에게는 처형장소, 생애 마지막 머무는 곳이었겠지. 하지만 이 지방 선주인들에게, 이 늪지대는 그들이 믿는 두려움의 존재에게 제물을 바치는 교회 같은 거였을 거야. 그래, 그렇게 밖에 말이 안 돼.”


교수는 퀭한 눈에서 실성한 사람의 눈동자가 정신없이 마구 마구 돌아갔습니다. 나는 그런 교수의 모습을 경계하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오랜 세월 선주인들에게 경외를 받고 찬양받으며 제물들의 공포와 슬픔과 두려움, 그런 마이너스 에너지를 받아온 늪이 그런 서로 상반되는 에너지가 축적되고 쌓이다 보면 어떻게 될 것 같나? 늪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그 스스로 의지를 지니는 스팟(Spot)이 되는 거야. 약하디 약한 인간들이 스스로 제물을 바쳐왔지만 시간이 지나며 늪이 제물을 요구하기 시작한 거라고. 오오, 그래, 그렇게 밖에 설명이 되질 않아. 나는 천재야.”

그리고는 광소(狂笑)하는데, 그 모습에서 늪 여자를 바치고 기뻐하는 선주인들의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지금까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네. 늪 여자가 우리를 가둔 게 아니야. 우리를 가둔 건 늪이야. 늪이 우리를 가둔 거라고. 늪은 늪 여자가 세상에 발견되는 것을 원치 않았어. 그래, 늪은 늪 여자가 자기를 떠나는 걸 바라지 않았던 거야. 그래, 그래야만 말이 돼. 그렇고 말고. 큰 착각을 하고 있었네. 우리는 늪 속에 있다는 여자 얘기만 듣고 그 여자가 이 지방에서 내려오는 공포의 대상이라 생각했었네. 허나 틀렸어! 늪이야말로 이 지방에서 내려오는 공포의 집합체, 그 무엇보다도 추앙받고 경외받는 대상이었던 거야. 인신공양의 제물은 그런 늪을 달래는 게 목적이었고. 그런데 지금 그 제물이 어찌 되었지? 우리가 풀어줬어. 세상에 풀어줬단 말일세. 늪은 다시 새로운 제물을 원해.”


제물. 고대의 존재를 달래기 위한 제물. 교수는 계속 그 단어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런데 왜지? 왜 군은 아닌거지? 제물이 필요 했다면 군이 늪으로 들어갔을 때 군이 선택되어야 했어. 성별이 문제였을까? 아니야. 그건 인과관계가 맞지 않아. 그렇다면? 그렇다면 제물의 조건은 무엇이었을까? 제물이 갖추어야 할 절대적인 조건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잠깐 말을 멈추더니, 깨달음을 얻은 옛 현인 마냥 소리쳤더랬습니다.


“이방인! 바로 그걸세. 군, 제물의 첫번째 조건은 외지에서 온 사람이어야만 하는 걸세. 외지인은 선주인들의 눈에 더없는 경계의 대상이었으니, 마찬가지로 두려움의 존재인 늪에다가 그 외지인을 바침으로써 선주인을 공포에서 해방시켜 주어야만 했지. 그러면 되는 거야. 그래, 그렇게 밖에 말이 되지 않아. 군, 군도 알겠지만 내 몸속에는 1/4이나마 이방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네. 그래, 이제야 알겠군. 어째서 늪이 우리를 보내주지 않는지.”


그리고 교수는, 내가 말릴 새도 없이 늪 속으로 발을 디뎠습니다. 내가 가까스로 몸을 절반 일으켰을 때, 교수의 몸은 이미 절반 넘게 늪속을 파고들고 있었습니다. 굶주림과 공포로 몽롱해지는 의식 속에서, 내 눈에는 교수의 몸이 사라지는 와중에 늪 주변으로 어두운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기운은 마치 수십 개의 손처럼 교수의 몸을 붙잡고 늪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반죽음 상태로 발굴단에게 발견, 구조되었습니다. 이틀 동안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뒤 나는 경찰에게 사정청취를 하였고, 나의 증언에 따라 늪 밑의 조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늪 안쪽으로 걸어가는 교수의 발자국이 그대로 바닥에 찍혀있었기 때문에 경찰은 살인사건의 가능성을 제쳐두고 교수의 수색에만 전념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늪 여자는 교수의 마지막 업적이자, 최고의 업적으로 포장되며 매스컴을 오갔고, 현의원인 H의원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늪 여자는 정식으로 문화재로 등록되어 앞서 말씀드린 T현 자연사 박물관으로 이관되었으며, 현재도 매일 수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지역의 명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수의 시신은 아직 수색 중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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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1. 작중 나오는 H의원은 작중 등장하는 지역의 지역구 의원입니다. 그러니까 작중 등장하는 늪 여인을 제물로 바친 선주인들의 후예인 셈입니다.

덧 2. 조금 나가자면, 자기 선조들이 했던 것처럼 외지인을 그 늪에 바치는 행위를 한 게 아닌가 한데... 나머지는 여러분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덧 3. 다들 새로운 일주일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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