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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너무 못난 아내 같아요(긴 글, 아무 말 주의)
게시물ID : wedlock_95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포뭍은내복피꾼
추천 : 27
조회수 : 1924회
댓글수 : 23개
등록시간 : 2017/07/30 04:2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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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은 열심히 일을 해요
아이들은 가르치는 일이라 
밤낮이 없어요 아이들의 시간에 맞춰서 
언제든 수업을 해요
매번 자기처럼 돈을 꽁으로 
버는 사람은 없을 거라며
힘들까봐 걱정하는 저를 위로해요
저는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걸 
견디기 힘들어해요.
몰입이 지나쳐서 마음이 피폐해져요.
그냥 담담히 넘어가지 못하고
가엾고 힘든 일들에 마음을 내던져버려요.
남편은 그런 저를 안타까워했어요.
멘탈이 약하고, 언제나 바깥에서는 
완벽해보이고 싶어하고
사랑받고 싶으면서 사랑받는 걸 두려워하는
그런 저를 가여워하고 애틋해했어요

다행인 건 이 사람을 만난 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였어요.

가진 건 가족들이 보내준 고시원비와
고시원비를 제외한 한 달 생활비 5만원이었어요.
평생을 경상도 변두리 촌에 살던 아이가
서울에 올라와 발 하나 펴기 힘든
홍대 고시원방문을 열었던 날
거기서 내 인생의 가장 찬란한 날들이 시작된거예요
나는 그곳에서 아주아주 행복했어요
꿈이 있었고, 
꿈을 꾸며 누워잘 수 있는 침대가 있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생겼고
거기에 청춘을 걸어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스물 세 살의 여름, 그래서 나는 
반짝반짝 빛이 났어요.
그에게서도 나와 같은 빛을 보았죠
그 빛은 조금 차가워보였지만 
다가가서 만지면 아주 따뜻할 것 같았어요
우리는 그렇게 빛으로 만났어요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일 때,
그때 서로를 만나지 못했다면,
다른 시간 다른 곳에서 서로를 만났다면,
그때도 지금 같았을까요?
이렇게 많은 아름다움을 느끼고,
이렇듯 마음이 움푹 패일만큼의 슬픔을 느낄 수 있었을까요?

 5년을 만나고 3년째 결혼을 했어요
 대학에 입학할 땐 꿈에 부풀어 있었고
졸업을 할 때는 끝없는 길 위에 버려지는 것 같았죠.
졸업을 하고 일 년 후에 결혼을 했어요.
혼란스러웠지만 이내 익숙해졌죠
우리는 둘 다 글을 쓰는 사람이에요.
남편은 나보다 조금 더 사회적인 생활이 가능하고
아이들의 성취를 바라보는 것이 좋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습소를 만들었어요
금전적인 부분을 모두 남편이 책임지게 된 거죠.
저는 그가 너무 힘들 것 같았지만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어요
자신은 돈을 거저 버는 것 같다며
사실 원래부터 선생님의 자질이 있었던 게 아닐까하며 너스렛소리를 해요.
(매우, 매우 열심히 합니다. 수업은 사력을 다해서 하니 오해가 없기를..)

사실 제가 남편의 등 뒤로 숨었어요.
저는 세상에 나오는 게 참 두려웠거든요.
소아때부터 고도비만이었다가 온갖 방법으로
살을 빼서 정상체중으로 돌아왔어요.
보통처럼 보이는 내가 좋으면서도 불안하죠.
소아때부터 식이장애가 심했어요
모든 스트레스를 음식에 투사시켰죠
부모님의 돈을 훔쳐 만두를 사먹고
슈퍼에 아이스크림을 뚱뚱한 배에 잔뜩 훔쳐
집 안 냉동실을 가득 채운 적도 있었어요
그렇게 몸과 마음이 허기진 상태에서
몸이 빠져나왔지만 마음은 아직 허기가 남아
사람이 두렵고 관계가 무섭고
가지고 있는 것들을 갑자기 송두리째
빼앗기는 건 아닐까 숨이 막힐 듯 두려웠어요.
그래서 점점 남편의 뒤로 숨었어요.
남편은 내 마음의 잔해들을 받아서
치워주고, 버려주고, 또다시 돋아난 잔가시들을 밀어내고..
마음에 자그마한 평지 하나만 남겨두었어요
사나운 내 마음엔 자주 천둥이 치고 
비가 내려서, 남편은 힘들었을 거예요.

남편은 너무너무 글을 잘 써요.
하지만 남편의 글은 아주 지독하고 슬퍼요.
그의 유년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는 봐서는 안 될 것들을 너무나 똑똑히 보았고
남편의 머릿속에 박제된 기억들은
끈적거리는 어둠 속에서 기를 쓰고 올라와
시와 소설이 되었죠.
아름답지 않고, 불결하게까지 보이는 것
평범한 독자들은 냉소와 멸시를 보냈고
시인이거나 소설가이거나 평론가인 교수님들만
남편을 따로 보고 싶어했죠.
뛰어나지만 신인으로 발굴되기 어려울 것이다.
교수님들 대부분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지금의 문단에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실험적이다

 다른 시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 정도로 쓰는 학생이 등단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했고, 어떤 시인은 문단에서도 이런 시를 쓰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말씀하셨죠. 

하지만 남편은 돈을 벌어요.
남편은 자신의 꿈은 한 발치로 밀어놓고
우리를 위해 돈을 벌어요. 
아이들을 가르쳐요.

저는 남편의 글이 좋아요
투박하고 악마같고 교활해보이지난
한 껍질만 벗겨보면 그 안에 겁에 질려 있는
아이 하나가 보이거든요.
모두 그 아이가 쓰고 있는 껍질에 놀라서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지만 
아주 순하고 예쁜 눈을 가진 아이가
손을 내밀어주길 바라고 있거든요.

남편의 꿈을 담보로 제 꿈을 샀어요.
남편은 늘 자신보단 내 꿈이 우선이었어요.
당신이 먼저 작가가 되면 나 먹여살려줘!
농담처럼 말하면서 웃었어요.

이번에 처음으로 제가 쓴 원고의 고료를
받는 날이 다가와요. 
공모전에서 받는 상금이 아닌 원고료는 처음이죠
남편은 돈 많이 줘서 좋다! 하고 웃어요
작가님~하면서 제 머리를 쓰다듬어요
그런데 고개를 돌린 남편의 옆얼굴이 조금 쓸쓸합니다.

그 얼굴이 어쩜 그렇게 가슴에 박히는지..

쓸데없는 투정을 부리고 미워하고
내 감정을 표현했던 일들이 다 후회가 됩니다

내 꿈의 조각마다 남편의 흔적들이 가득해요



 남편은 알까요..

 더 양보해달라고 하면
다 양보해주려는 그 마음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예요.. 
이렇게 욕심 많은 내가 
당신의 것만은 뺏지 않고
지켜주고 싶어지는 이유예요.

 아직은 아무 능력도 없는 모래알 같은 작가지만 
더 열심히 해서 당신이 내게 줬던 것보다 
더 큰 믿음을 보여줄게요

아무것도 없던 내게 용기를 줘서 고마워요
날 믿어줘서,
내게도 당신의 꿈의 조각이 될 기회를 남겨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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