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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입니다.
이 감독은 최대한 CG를 사용하지 않고 실사로 찍는 것을 선호한다고 하죠.
제 입장에선 그게 무슨 변태적이고 낭비스러운 고집인지 모르겠으나, 이 돈 많고 미친 예술가가 그렇게 하는게 더 사실적인 묘사가 된다고 하니 그냥 믿고 봤습니다.
(난 존나 쩌니까)
이 영화는 전쟁영화입니다.
전쟁영화를 사실적으로 그릴수록, 관객들이 더 구체적으로 전쟁의 참혹함을 체험할수록 우린 전쟁 피해자들에 대한 연민을 품게 됩니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미안함’에서 시작됩니다.
첫번째. 독일군이 등장하지 않는다.
독일군은 폭격기나 어뢰, 배 몸체를 뚫는 총알 등으로 드러날 뿐, 끝까지 독일군의 얼굴, 목소리를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아마 젊고 순결한(그리고 심각하게 잘생긴) 청년들을 지옥으로 내몬 것은 독일군이 아니라 전쟁 자체였기 때문일 테죠.
고통받고 있는 이 청년들과 상관 없는 소위 ‘어른’들이 일으킨 그 전쟁이요.
그런데 다른 한 쪽의 ‘어른’들은 청년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해협을 건넙니다.
두번째. 프랑스군인의 죽음.
애초 영국군이 프랑스에 들어온 것은 프랑스인을 지키기 위해서였겠죠.
(독일군이 해협을 건너지 못하게 하려는 전략적 의도도 있지만)
오히려 영화속에서는 영국군들이 프랑스군인, 깁스의 도움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도 합니다.
또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생존욕망을 드러내지만 끝내 배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죽고 말죠.
그래서 더욱더 안타깝고, 미안합니다.
세번째. 소년의 죽음.
(놀란의 남자)
그는 전쟁 트라우마로 정신이 온전치 못한 가운데 그를 도와주려던 소년을 밀쳐버리고 그 소년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요.
그 과정 속에서 머피는 미안한 마음에 소년의 친구에게 그 소년이 괜찮은지 지속적으로 물어봅니다.
우발적으로 저지른 자신의 잘못에, 소년이 사경을 헤매는 것을 보고 느끼는 연민, 인간애.
감독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일 겁니다.
낯선 타지의 전쟁터에서 청년들은 겁에 질린 채, 오로지 생존에만 온 신경을 쏟아 부었습니다.
마침내 조국으로 돌아왔지만 승리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하죠.
(이정도면 정말 미안해 죽을 것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조국은 그들에게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위로합니다.
전쟁 속에서 포화를 견뎌낸 젊은 청년들은 누구나 다 영웅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