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그녀가 나왔다. 두 달만의 일이다. 꿈의 줄거리도 희미하지만 거기 그녀가 있었다는 기억만은 선명하다.
그녀의 첫 인상은 성숙한 어른 같았다. 다정하고 활달한 성격이 좋았다. 여럿이서 만나는 모임이었지만 그녀를 만나고 같이 차를 마신다는 것이 좋아서, 일정이 부담되는 날도 무리를 해서 나갔다. 지나고나서 되짚어보니 그랬다는 것이지, 그때까지만해도 그녀는 조금 알고지낸 지인일 뿐이었다.
헤이리에 가자고 차를 가지고 온 날. 아마 나는 그 날 그녀에게 반했던 것 같다. 우리는 음악카페에서 두 시간 가량 아무말없이 음악만 들었다. 손에든 책의 책장은 넘어가고 있으나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녀는 저녁약속이 있다고 그만 일어서자고 하였다. 서울에 진입하니 퇴근시간이라 엄청나게 막히기 시작했다. 카페에서 말이 없던 그녀는 속물같은 이야기를 한다. 외제차 사고 싶다고. 동창회 갈때마다 창피하다고. 속물같은 모습도 열심히 사는 것 같아 좋게 느껴진다. 사람을 마주치지 않고 산지 오래인 나는 동창회를 가본적도 없다.
같은 병원 동기는 아니지만, 둘 다 환자의 처지니까. 서로의 감정에 공감도 하며 우정을 쌓아갔건만 무엇이 잘못된 걸까? 우리는 몹시 이상한 모양새로 연락이 끊어졌다. 그동안 나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이 '병'을 앓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러지 않았으면 그녀를 못만났겠지하는 묘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며, 심지어 오랜 인연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상한 모양새의 절교는 무척 마음이 아팠다.
그녀와 연락이 끊어진지 1년이 지났고, 내 병은 치유의 기미가 없다. 우리는 한때나마 건강한 삶을 꿈꾸며 함께 여행을 가는 상상의 대화도 나누었다. 그러는것에 1년이면 충분할거라고 헛된 꿈을 나누기도 하였다. 그 1년이 벌써 지나가 버렸네. 나는 그녀가 이 지옥을 빠져나갔기를 바란다.
우리의 시간은 이미 오래전에 끊어졌으나, 이루어야할 숙제는 남았으니까 각자의 삶을 잘 완성해야한다. 혼자 남아 고군분투하는 시간이 이어진다. 스스로와 약속한 시간도 반년이 남았다. 새해에... 이 글을 읽으면서 해냈다고 말할 수 있기를.... 시간이 지나는 것이 두렵다. 그래도 오늘을 잘 살아내고, 또 내일도 살아내고 하다보면 어느날엔가는 새해에 닿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