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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르 안부러운 기름부자 될 뻔한 보일러병 일화
게시물ID : military_784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김새론
추천 : 10
조회수 : 1408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7/07/18 22:35:11
안녕하세요

공부하다가 펜이 손에 잘 안잡히고, 갑작스럽게 추억에 살다가 보일러병 일화가 생각나서 군게에 글을 써봅니다. 요즘 군게에 무겁고 진중한 이야기들이 많은데 이런 소소한 일화로 오랜만에 그 때 그 시절을 추억하면서 머리를 식히는 (?)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해당 내용은 순전히 제 이야기 입니다.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닐수도 있겠지만 군대에서 기름 몇 L 가 아닌 몇 드럼에 해당되는 기름의 양으로 이러쿵 저러쿵 했던 경험이거든요. 일반사병이 기름 몇 드럼 빼돌렸다? (실제로 빼돌린건 아닙니다...) 운전병으로 근무하셨거나 기름 좀 다뤄봤던 분이시라면 이게 얼마나 큰 문제가 될 지 충분히 아실겁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간단하게 부대 소개와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부대는 군단 직할 부대였는데, 아주 규모가 작은 대대였습니다.(전체 약 200명 정도밖에 안되는 규모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열풍(?) 이었던 막사 리모델링, 신막사 등등의 혜택은 전혀 없었고, 몇십년전의 미군이 머물었던 막사를 그대로 물려받아 사용한 (대충 어느정도로 낡았는지 감이 오시죠??ㅎㅎ) 아주아주 허름한 부대였습니다. 부대내에는 보일러실이 총 4개 였는데 저는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통합막사 (약 100명 수용) 의 귀뚜라미 였습니다.

저는 09 년도부터 11년도까지 위에서 언급한 통합막사의 귀뚜라미로 지냈습니다. 09년도에는 제가 근무했던 부대 내에서 대부분의 악폐습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였으나 (중대, 소대마다 케바케 인정), 저는 재수없게도 영창 다녀오고도 제정신 못차린 패악질 선임을 만나 구타, 폭언, 욕설, 가혹행위 등등을 겪었습니다. 보일러병 전임자가 저더러 보일러실에서 자살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면서 제대했었죠. 전임자와 저의 짬차이가 14개월 이어서 저는 일병 3개월부터 바로 보일러실로 투입되었습니다. 일병 3개월이면 한창 발 안보일정도로 뛰어다녀야 했으나, 저는 보일러실에서 저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짚어보는 보일러병의 특혜는 다음과 같습니다. (부대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부대에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1. 아침, 저녁점호를 제낀다 (가장 좋았음. 항상 최고야 짜릿해)
2. 보일러 가동하는 시간 외에 중간중간 잠 다 자면서 다음날 당직자와 같이 근무취침을 한다.
3. 그렇다고 보일러 가동하는 시간에 보일러실에서 안자는건 아니다. (걸리면 박살남)
4. 보일러실에서 잠이 안오면 공부를 하는 개인시간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걸리면 칭찬받음)
5. 겨울에 훈련이나 행군하면 조기 복귀한다. (훈련 복귀하는 인원들 따뜻한 물로 씻겨야 하니까)

이러한 보일러병의 특혜는 "보일러 가동시에는 항상 근무자가 해당 장소에 있어야 한다" 라는 원칙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물론 당연한 소리죠. 보일러 기계가 갑자기 문제가 생겼을때 바로 대처가 가능해야 하니까요. 심지어 제가 관리했던 보일러 기계는 몇십년이나 지난 골동품과도 같은 구식 보일러 기계였거든요. 폭파사고로 다같이 죽고 싶지 않으니, 누군가 기계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녀석이 필요했을 겁니다. 

보일러실 내에는 보일러 기계가 두 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온수용 보일러고 하나는 난방용 보일러 입니다. 온수용 보일러는 몇년 밖에 안된 신품이었고, 난방용은 위에서 말한 골동품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난방용 보일러는 좀 무서웠습니다. 언제 고장나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처럼 생긴 데다가 어딘가 매우 불편한 것처럼 소리도 "쿠웨에에엥, 쿠앙꽝앙앙" 하면서 엄청 시끄러웠거든요. 생긴것도 엄청 투박하고 낡아서 처음 보는 사람들은 소리와 외관에 조금 쫄기도 합니다. 그래서 난방용 보일러 틀때는 긴장하면서 눈을 지켜세워.....야 함은 처음 몇개월 뿐이고 이후에는 자장가처럼 편안하게 꿀잠 잤습니다. 그 때 토익책이 참 많이 젖었죠.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씀드려야 할게 보일러병의 근무 기간입니다. 보일러병은 한겨울 (12-2월) 에는 난방, 온수를 같이 틀고 겨울 앞뒤로 1개월씩 (11월, 3월) 온수 보일러만 가동합니다. 그렇다고 10월이나 4월에는 온수없이 버틸만 하냐? 놉 그것은 스티븐유 현역으로 입대하는 소리죠. 보일러 안틀면 입 돌아갈 정도로 물이 차갑기 때문에 (세면실에서 맨날 비명 들립니다), 대대장 명령으로 앞뒤 2개월씩 (10-11, 3-4월) 온수를 가동하기도 합니다. 물론 9월이나 5월도 물이 안 차가운것도 아닙니다......이상하게 여름빼고 다 차가움.....군대 너란녀석 참 차갑다....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하자면 여튼 저는 일병 3개월부터 보일러병으로 투입되었습니다. 이때가 막 겨울에 들어서는 기간이어서 저는 바로 난방, 온수 보일러 가동하여 위에서 언급한 5가지 혜택을 전부 누리게 되었습니다. 보일러병은 그날그날 기름 쓴 양을 기름장부에 기재하고, 다음날 소속 중대 행정보급관, 수송관, 지원과장에게 서명을 받아야 합니다. 수송관 부재로 서명을 못받으면 건너뛸수 없으니까, 다음날 받거나 해서 서명이 밀리면 지원과장이 왜 서명을 몰아서 가져오냐고 저를 혼내는 경우도 있었네요. 생각해보니 직장이랑 다를게 없...... 여튼 부대 내 성격 더럽기로 유명한 공포의 3인방의 서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름을 빼돌린다는건 사실 엄두를 못냅니다. 빼돌려서 할것도 없구요. 

보일러병 전임자가 저에게 인수인계 할때 온수용 보일러는 1시간에 10 L, 난방용 보일러는 한시간에 60 L 로 계산하면 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난방은 보통 하루에 두 타임, 한 타임에 1시간 반을 가동하기 때문에 보일러병 전임자는 항상 180 L (60 X 1.5 X 2)로 기재하였고,온수는 보통 2시간 (아침, 저녁) 을 가동해서 20L 로 기재했습니다. 전임자가 알려준 그대로 한다는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저는 보일러 기계 근처에 있는 메뉴얼을 확인하여 시간당 소비하는 기름의 양을 파악하여 장부에 기재하는 기름 소모량의 타당성을 확인했습니다. (군대에서 이정도면 능동형 인재 아닙니까?) 저는 그렇게 12월, 1 월, 2월을 보일러실에서 파묻혀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었습니다. 보일러에서 기름을 소모하는 시간은 보일러를 가동하는 시간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하면 보일러 기계는 막사를 따뜻하게 할 때 기름을 소모합니다. 설정된 온도에 도달하면 기계의 전원은 켜져있는 상태지만 기름은 태우지 않고 일정온도로 떨어질 때까지 대기한다는 이야기죠. 예를들어 난방 온도를 30도로 설정하게 되면, 30도에 도달하면 기름을 태우는 단계는 멈추고 일정온도 20도로 떨어지면 다시 기름을 태워 따뜻하게 하는 시스템인 것입니다. 한 시간 반? 그거는 전원을 켠 시간이고, 실제로는 1시간하고 5분이나 10분이면 설정온도에 도달하여 보일러는 쿠에엥에엥 소리를 멈추고 대기상태에 들어갑니다. 외부온도가 영하10도 이하로 내려가는 날씨의 경우 최대 1시간 10분까지 걸리는 거고, 보통은 1시간이면 설정온도에 도달했습니다 (실제 기름 소모량 60 L). 30분은 대기상태로 저랑 보일러는 눈만 꿈뻑꿈뻑. 그럼 보일러 기름장부도 꿈뻑꿈뻑? 노노 90 L. 두번 가동하니까 180 L.

슬슬 지옥문이 열리는게 느껴지실 거에요. 대충 계산하면 하루에 기름 60 L 가 통합막사 귀뚜라미의 소유로 귀속되었네요. 와 토나올정도로 신난다. 전임자는 어느정도는 알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게 난방용 보일러가 기름을 좀 덜 쓰고 있어서, 대신 병사들 위해서 온수를 빵빵하게 틀라고 얘기를 했거든요. 그때는 그냥 아 그렇구나 했는데 이런 빌어먹을, 하루에 60 L 를 덜 쓰는지 감히 상상도 못했죠. 저는 말은 참 잘 들어서 온수는 정말 미친듯이 빵빵하게 틀었습니다. 당직 서는 간부가 새벽에 잠시 세면실에 갔다가 손을 씻었나 세수를 했나 그랬는데 뜨거운물이 콸콸 나와서 아니 미친 통합막사는 무슨 24시간 온수가 나오냐 하면서 혀를 내두른 적도 있었습니다. 근데 아무리 빵빵 틀어도 시간당 10L 의 귀여운 스펙으로 난방용 보일러를 이길 수 없죠. 심지어 난방용 보일러는 외부온도가 영하 몇도로 내려가면 하루에 3 번 가동합니다. (기준은 잘 생각이 안나네요) 그럼 30 곱하기 3 해서 기름 90 L 가 귀뚜라미의 인벤토리로 들어오죠. 기름은 귀뚜라미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입니다.

겨울은 참 깁니다. 시간이 갈수록 기름탱크에 있는 기름보다, 기름장부의 기름양이 미친듯한 속도로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3월 초, 장부에 기름이 거의 떨어지게 되어 (실제 기름은 매우 풍부함), 기름탱크 기름량을 체크하고 두 눈을 의심했죠. 장부에 400 L 있으면 실제로는 2400 정도 있었던것 같습니다. 기름 10 드럼... 영창은 생각보다 꽤 먼 곳에 있는게 아니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동기한테 이야기 했죠. 잘 다녀오라고. 먼저 사회에서 기다리겠다고. 썩 도움이 되는것 같지는 않습니다. 마음이 더 아픕니다.

제 문제니까 제가 매듭을 지어야 하는데, 중대장은 저에게 정기휴가를 3월에 꼭 가라고 합니다. 원래 2 월에 갔어야 하는데 보일러병 업무한다고 미뤘거든요. 이거 해결하고 뭘 하든가 해야지 이거 해결못하고 휴가를 어떻게 편하게 다녀오겠습니까...그래서 싫다고 보일러병 업무 끝나는 시점에 다녀오겠다 하고 (속은 전혀 아니지만 내 업무에 책임감 있는 모습) 건의를 했으나, 얄짤없이 다녀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3 월 마지막 주에 정기휴가가 예정되었구요, 기름 2000 L 의 처리를 고민한 채 시간이 훅 지나갔습니다. 저 없는 동안 통합막사의 보일러실은 타 중대의 보일러병이 담당해 준다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혈육한테도 맡기기 싫은 상태인데 타중대 아조씨라니...) 물론 저랑 조금 친하긴 했는데, 저는 그 아조씨에게 보일러 맡기고 휴가를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휴가때는 휴가를 즐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걱정이 전혀 안됩니다. 다만 복귀날에는 미칩니다. 와 미친 진짜 가기 싫다 10초에 한 번씩 말합니다. 복귀해서 기름 2000 L 를 마주하게 되는게 너무 끔찍했습니다. 차라리 복귀 하자마자 귀뚜라미야 영창가자~ 하고 결정이 나서 복귀와 동시에 끌려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론만 저에게 알려주고, 과정은 생략한 그런거. 앞으로 진행될 과정이 정말 미친듯이 끔찍했습니다. 개썩은 표정으로 복귀한다음에 다음날 보일러병에게 기름장부 전달 받았습니다. 아저씨는 저에게 태연하게 말합니다. "그거 제가 봤는데, 기름양이랑 장부랑 많이 차이 나던데요?" 완전 깜짝 놀랐습니다. 와 이놈이 내 폐부를 알아차렸구나 네놈을 죽이는 수밖에 없겠다 라고 생각하는 찰나, "수송관님한테 보고 드려서 일치 시켰어요." 라고 말하더군요. 음.....?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기름 장부상에 기름양이 부족해서 이 아저씨는 수송관에게 기름 부족하다고 채워야한다고 얘기를 한겁니다. 수송관이 부대에서 성격 드럽기로 유명한 사람이라 바로 안채우고, 괜히 트집을 잡았나 봅니다. 실제 기름은 어느정도냐고. 그래서 아저씨는 확인하고 눈 한번 비비고, 수치 확인해서 쪼르르 수송관에게 이야기한거죠. 수송관도 그 말 듣고 아니 그게 무슨소리요, 의사양반 내가 고자라니 가 아니라 기름이 몇이라고? 물어보고 바로 가서 직접 확인했다고 합니다. 미친듯한 차이에 수송관은 어안이 벙벙했겠죠. 그런데 여기서 수송관은 이를 기회로 삼았습니다. 수송관은 수송관 업무가 처음이기도 하고 다른곳에서 추가적인 기름 소비가 좀 많았다고 합니다. 이미 기름이 자체적으로 상당히 빵구가 난 상태였는데, 통합막사 기름탱크에서 그 빵꾸를 메꿀 희망이 보였던 것이죠. 수송관의 기름 빵꾸가 어느정도 였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빵꾸를 메꾸고도 여유분을 챙겼다고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기름장부에는 실제로 기름 채운것도 없으면서, 1800 L 채웠다고 하고 기재를 했더라구요. 

결론이 상당히 허무하긴 한데, 일반 사병 입장에서 당시의 상황은 좀 심각했습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 하는 추억이지 당시에는 똥줄이 타다 못해 화염에 휩싸이고 있었습니다. 저 사건 이후로는 장부에 기재하는 기름 사용량을 조정하였고, 일반 사병들 몸 뜨뜻히 데필수 있는 수준으로만 기름을 보유했습니다. (한번 당하고도 또 똑같은 일어나면 아메바 아닙니까?) 제 후임자에게 업무 인수인계 할 때까지 별 문제 없이 넘어갔네요.

쓰다보니 장편 이야기가 되었네요...공부는 망한것 같습니다. 내일부터 열심히 해야죠.
별로 재미는 없지만 그냥 흥미가 땡기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전 여기서 마칩니당. 뿅
출처 내 보일러병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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