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님의 [오직두사람] 단편집의 표지그림을 볼 때마다 감탄했거든요
어쩜 저렇게 소설을 흠뻑 적셔놓은 그림이 있지?
주인공이 심리상담을 받으며 그림을 그린다면 딱 저럴 것 같아요
그래서 그림에서 떠오르는 짧은 생각들을 적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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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아는 소녀에 머물러 있다.
나의 곁에 있는 사람은 나의 아버지이다.
아버지는 아주 키가 크고 어깨가 넓다.
- 내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다리는 매우 얇고 위태로우며 땅을 잘 딛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 아버지는 나의 관념에 큰 영향을 끼치지만 나의 현실에는 잘 자리잡지 못한 사람이거나, 또는 그 자신의 현실이 위태로운 것일 수 있다.
나는 앞을 향해 걷고 있지만 아버지는 나와 함께 같은 방향을 보며 걷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나와 교차해 지나쳐버리는 것인지 알 수 없다.
- 인생의 동반자라고 생각해왔지만, 실상은 스쳐지나가는 존재일 수도 있다.
- 우리가 손을 잡고 걷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의 관계 또한 끊어질 듯 위태롭다.
아버지의 얼굴이 보이지 않으므로 지금 그의 표정과 기분이 어떤지, 어느 방향을 보고 있는 지 조차 알 수 없다.
- 나는 그를 커다란 존재감으로 인식할 뿐, 실상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내 관념의 세계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황량함 뿐이다.
-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남겨두고 떠난 것일 수도 있고, 우리가 사람들을 피해 황량함 속으로 도망 온 것일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