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드래곤의 USB는 충분히 앨범적이다
지드래곤(지디)의 눈이 매섭게 나를 쳐다본다. 케이스는 기본이요, USB에까지 물들어 있는 빨간색은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다. 핵심은 USB에 칠해진 빨간색. 지디는 이것을 손에 묻어나게끔 만들었다. 그의 혈액이 몸으로 흡수되는 것처럼 느끼게 하려는 연출인 셈이다.
이런 식의 만듦새를 통해 지디는 USB를 팝아트 비슷한 것으로 승화시키려 한다. 일단 가격. USB 하나에 어떻게 3만원씩 받느냐며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꽤 봤다. 먼저 당신의 CD장에 꽂혀 있는 CD들을 쭉 열람해보기 바란다. 인터넷에서 최저가로 130원이면 살 수 있는데 당신은 얼마 전에 2만원 정도를 주고 ‘CD 형태의 앨범’을 구입했다. 당신이 구입한 CD에 부클릿(아주 작은 책이나 노트)이 들어가 있듯 이 USB를 컴퓨터에 접속하면 음원 외에도 독점 제공되는 사진과 비디오를 내려받을 수 있다. 그것이 좋은 예술인지 아닌지 논할 때 가격만으로 딴지 좀 걸지 말자.
지드래곤의 신보가 담긴 USB는 음원 외에도 사진과 비디오를 제공한다.정작 문제는 다른 지점에 있다. 이 USB를 통한 예술적 시도가 그리 임팩트 있게 다가오질 않는다는 거다. <동아일보> 임희윤 기자의 표현을 빌려 “빨간색 USB는 지디의 심장”을 상징한다. ‘권지용 A형/1988년 8월18일’이라고 USB 위에 새겨진 글자들이 이를 말해준다. 이 USB를 컴퓨터와 연동하는 행위는 지디의 눈과 심장, 즉 지디의 주요 정체성을 내 세계 속에 들여놓는다는 걸 의미한다. 게다가 당신은 방금 USB를 만짐으로써 지디의 심장에 감염(헉!)되기까지 했다. 조금은 뻔한 상징들 아닌가. 이 시도를 예술적으로 높이 평가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다. 음악적 성취는 호평을 보낼 만하다. 적어도 ‘INTRO. 권지용(Middle Fingers-Up)’과 ‘개소리(BULLSHIT)’, 두 곡의 완성도에는 시비를 걸기가 어렵다. 전자가 비록 카일(Kyle)의 ‘iSpy(Feat. Lil Yachty)’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음에도 ‘창조적 재해석’이라 평하고 싶을 만큼 자기 식으로 잘 녹여냈다. ‘개소리’도 마찬가지다. 각종 효과음과 “이 뭔 개소리야!”라는 온라인 레퍼런스를 유쾌하고, 날렵한 전개 속에 융합해냈다. 확실히, 감각만은 참 빼어난 뮤지션이다. USB는 ‘앨범’인가, 아닌가 가온차트에서는 이 USB를 앨범 판매 집계에 넣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음이 유형물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게 주된 논지였다. 생각해보자. 소비자들은 USB에 다운받은 곡들을 다시 USB에 담을 수 있다. 그 순간 텅 비어 있던 USB는 순식간에 음이 고정된 유형물로 변신한다. 기술적 진보와 변화가 현기증이 날 만큼 빠른 2017년에 이러한 결정은 너무 구태의연해 보인다. 심지어 곡 순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은 이걸 자신의 뜻대로 재배열할 수도 있다. 지디의 USB는 충분히 앨범적이다. 도리어 지디가 떨어뜨린 폭탄은 다음의 지점에 위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거대 음원 사이트가 배제된 예술가-소비자 간의 이 직거래가 과연 미래의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음악을 듣는 방식에서 소비자들의 욕망은 갈수록 다각도로 세분화된다. 스트리밍 정도에서 끝내는 누군가가 있는 반면, 스트리밍을 넘어 다운로드하는 사람도 있고, 다운로드를 넘어 그것을 실체적으로 소유하길 바라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그 실체가 무엇보다 예술적이길 원한다. 이 다채로운 욕망을 예술적으로 만족시키면서도 회사 차원에서 최대 이익을 뽑아내는 것. 지디와 YG가 함께 겨냥하고 있는 목표다.
배순탁 (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email protected] 제가 못알아봤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