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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즉시공의 색은 material이 아니라 space이다.
게시물ID : phil_1555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106m
추천 : 2
조회수 : 889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7/14 20:56:51
어느 스님께 제가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 '공'이 영어로 empty가 맞습니까? 그저 empty만으로는 공에 함유된 깊은 뜻을 영어권 사람들에게 다 못전하는게 아닐까요?"

그 스님께서 씩 웃으면서 답하셨습니다.
"색즉시공의 색을 material이 아니라 space의 개념으로 설명하면 됩니다."

정말 기가막힌 대답이었습니다.

불교 교리의 핵심 이론인 연기법의 원리는 ‘이것이 있음으로 해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남으로 해서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음으로 해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함으로 해서 저것이 멸한다.’라는 가르침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서로 영향을 주며 서로가 서로의 인因이 되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의 과果가 되기도 합니다. 그로인해 홀로 상주불변하는 절대적인 존재는 있을 수가 없으며 그것이 제행무상이고 제법무아입니다.

부처는 본인 스스로와 본인의 가르침마저도 제행무상의 범주에 포함시켰습니다. 심지어 약 처방전과 뗏목의 비유를 들며 그저 방편에 불과한 내용일 뿐이라고 못을 박기도 했습니다. 처방전을 아무리 열심히 읽고 외워도 약을 지어먹지 않으면 병은 고쳐지지 않고, 강을 건넌 뒤 뗏목을 머리위에 짊어지고 가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는 겁니다.

부처의 화두는 이 세상에 고통이 가득 차 있다는 ‘일체개고’였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고민 끝에 발견한 진리가 ‘무상’, ‘무아’, ‘공’입니다. 이 세상에 가득 차 있는 고통이라는 것은, 타고난 절대적인 실체로서의 고통이 아니라, 그저 ‘나’라는 관념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입니다. 나라는 관념조차 실체적 존재가 없다는 무아를 깨닫는 순간, 고통 또한 허상이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체득되어 해탈을 하게 됩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는 ‘부처는 없다.’라기 보다는 ‘부처라고 할 만한 고정된 실체는 없다.’라고 하는게 조금은 더 명확한 표현이겠지만, 결국 '부처'라는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는 가르침이 여실지견如實知見입니다. 그리고 내가 만든 것이 아닌 원래 있는 것, 유위有爲를 멈추면 곧 무위無爲. 여실지견과 무위법은 결국 같은 내용을 말합니다.

부처를 부처라고 칭하는 순간 부처의 본질에서 멀어져 버립니다. 무상을 무상이라고 말하는 순간 무상하다는 본질에서 멀어져 버립니다. 결국 부처는 부처라고 딱히 칭할 만 한 것이 없는 것이고, 그저 모든 중생 만물이 부처일수도 있고, 부처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참된 나, 불성을 발견하고 깨달으라는 말은 참된 나와 불성이라는 단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야말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며 달이 아닌 손가락만 쳐다보는 격이고, 실은 참된 나와 불성을 발견하는 순간 결국 나라는 존재도 없고 부처라는 존재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양자역학이라는 물리학의 한 분야가 있습니다. 우리가 원자핵의 주변을 돌고 있다고 알고 있는 전자는 사실 실체가 없이 그저 확률적 혼돈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가, 그것을 '관측'하는 순간 관측당한 위치에서 순간적으로 실체를 갖춘다는 겁니다. 그저 이론적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누적된 실험결과입니다.

불교의 '공'이라는 것은 이 양자역학의 확률적 혼돈과 매우 비슷합니다. 불교의 존재론은 모든 것이 찰나적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무상'과 '무아'는 바로 그것을 이야기 합니다. 모든 것은 고정된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되는 순간의 찰나적 존재이고 그 찰나가 모여서 실체라고 착각되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변하지 않는 존재가 없어 제행무상이요, 그래서 고정된 실체가 없어 제법무아입니다.

일체가 무상하고 무아인 가운데 서로가 영향을 주며 연기되어 있습니다. 서로가 인이 되고 서로가 과가 됩니다. 일체의 법이 고정된 인이 아니고, 고정된 과가 아닙니다.

무상과 무아는 '무'라는 글자 때문에 허무라고 착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무상과 무아는 허무가 아닙니다.

색즉시공의 색은 단순히 물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과 그 물질이 포함하고 있는 공간을 함께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색은 material이 아니라 space이고 space는 그 찰나적 존재론으로 인해 empty와 다를바가 없는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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