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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은 스무살때 였다.
정확히는 수능끝난 겨울이였으니 열아홉이 맞는 표현이 맞겠다.
십년도 훨씬 지난 어느날
친구가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는데 여자를 대하는게 처음이라
어찌할지 모르겠다고 나와서 분위기 좀 띄워달라고 해서 나간자리에서 만난 여자
그날 술자리는 재밌었고 분위기도 괜찮았다.
그후 친구랑 그 여잔 데이트도 하는거 같았고 셋이서 보기도 하고
여자의 친구도 와서 넷이서 보기도 하고
암튼 잘될것 같은 냄새가 폴폴 났지만
왠지 모르게 그 둘은 이어지지 못하고 그렇게 나도 연락이 끈어졌다.
여기 까지가 끝이여야 했었는데...
몇달의 시간이 지나고 여름방학무렵 그 여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술 한잔 하자고..
참 뜬금 없었지만 술에 미쳐있던 스무살짜리에겐 술사준다는 것 만큼 매력적인 유혹이 있을까?
그렇게 연락이 닿아 몇번의 만남이 이어졌고 결국 사귀게 되었다.
쑥맥 친구에겐 사귀기 전에 먼저 이야기 했었고 셋이서 같이 보기도 했었다.
친구는 몇가지의 욕설을 밷어낸후 껄껄 웃으며 술값을 계산해줄만큼
쑥맥 아다였지만 개 쿨한 쾌남이였다.
그 이후는 내 인생의 절정..
그 여자는 예쁘장한 외모에 털털하고 싹싹해서 내 친구들과도 잘어울렸고
간간히 친구들에게 소개팅도 시켜주며 입지를 넓혀갔다.
둘이 싸운날에는 내 친구들이 몰려와서 나를 갈구곤 했다.
그렇게 또 반년쯤 지났을 무렵 영장이 나왔고
그 소식을 들은 그 여자는 가기 전까지라도 같이 지내고 싶다해서 동거를 시작했다.
말이 동거지 나는 여자 자취방에 눌러 앉은 기생충이였다.
암튼 겁나 알콩 달콩 했다.
나는 무교지만 천국이 있다면 여기인가 할정도로 행복했다.
신혼부부 마냥 장도 같이 보고 요리라 부르기 민망하지만 암튼 먹을것도 만들어 먹고
스물하나 어린나이에 이래서 결혼하는구나 하고 느꼈다.
행복했다.
또 그렇게 3개월이 지나고
나는 군대로 갔다.
가야했다.
끌려갔다는게 맞는 표현이겠다.
존나 싫었지만..
군대는 정말이지 좆같았다.
욕설은 기본이고 기합에 안보이는 곳에선 구타도 있었다.
04년도 군대는 그랬었다.
나는 힘든 군생활에 지쳤고
여자는 끝날것 같지않은 2년이란 기다림에 지쳤고
내가 일병을 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처음으로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내가 그만하자고 했지만
좆같았다. 탈영하고 싶었다.
북한이 좆같았고 대한민국에 태어난게 좆같았다.
헤어졌지만 의리인지 미련인지 간간히 편지가 왔었고 답장도 했었다.
그렇게 우린 처음으로 친구가 되었다.
시간은 더디 갔지만 멈추지는 않았기에
또 다행이 사고도 치치 않았기에 2년만에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올수 있었다.
전역을 하고 나선 내 세상 같았다.
나이트와 클럽의 과도기 상태
언제나 외로운 영혼 들은 지천에 깔려 있었고
이 여자 저 여자 만나다가
문득 그 여자 생각이 났던 그날 우린 다시 만났다.
2년만에 만난 그 여자는 내가 알던 그 사람은 아니였다.
많은 남자를 만난거 같았고 상처 또한 많은거 같았다.
오롯이 누군가를 좋아하지 못했고 나 또 한 그렇게 믿음가는 놈은 아니였던 것 같다.
단지 친구도 연인도 아닌 그저 헛헛한 마음과 욕망만 채워주는 그런 존재..
첫 사랑의 임팩드란게 그렇게나 강했던 것일까 아니면 못다한 미련이랄까
우리는 계속 해서 만났다.
내가 여자친구와 헤어졌을때
그 여자가 남자친구랑 헤어졌을때
외로움을 채워줄 그 누군가가 되어서
친구인 듯 애인인 듯 애매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 기간이 6년
마침내 그 여자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신부가 되었다.
축하할수도 슬퍼할수도 없었다.
그냥 더 이상 내가 필요하지 않았으면 연락이 닿지 않았으면 그 생각이 유일했다.
그날 위로주 인지 축하주인지 모를 술을 혼자서 꽤 마셨다.
잠잠했다.
한 2년은 그랬었다.
그리고 또 연락이 왔다.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된 그 여자에게서..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은 나를 책망했다.
아니 어쩌면 기다렸을 지도 모른다.
혼자 행복하지 못하길 바랬었는 지도 모른다.
그 남자완 호적상으론 부부지만 각자의 인생을 살며
서로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
심장이 턱하고 내려 앉는듯 했다.
서른 초반의 어린나이에 남편이란 자의 사랑을 포기한채
반려견에 의지해서 살아간다고 했다.
보고 싶다고 했다.
가슴이 두근 거렸다.
나도 반려묘에 의지해 결혼을 포기 하고 살고 있었다.
다른 공간에 살고 있었지만 너무나 닮아 있었다.
그 여자는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우리가 만나는 일은 없었다.
내가 피했다. 나는 무서웠다.
그렇게 또 속절 없이 시간은 흘렀다.
주먹만하던 내 고양이가 뱃살을 출렁이며 뒤뚱뒤뚱 걸을만큼..
그럼에도 나는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그리고 또 연락이 왔다.
결국 이혼을 했노라고..
속이 쓰렸다.
입가엔 왠지 모를 미소가 돌았다.
실패한 그 여자가 고소해서 였을까?
아니면 또 다른 기대감이 였을까?
나는 내일 그 여자를 만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