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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외할아버지, 난징대학살에 깊이 관여"
게시물ID : history_136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유체이탈가카
추천 : 3
조회수 : 667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1/20 08:28:35
http://m.media.daum.net/m/media/world/newsview/20140119212725611?RIGHT_REPLY=R11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가 1930년대 만주국 정부의 산업부 차장(차관)으로 적극 지원했던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이하 만철)가 일본군의 난징(南京)대학살 당시 특무반으로 참여, 시체 처리 등을 맡았다는 극비 자료를 중국이 공개했다.

중국 랴오닝(遼寧)성 문서기록관은 지난 17일 만철이 미처 파기하지 못한 채 남기고 간 문서 중 만철의 난징대학살 당시 활동 보고서 3건을 외신 등에 공개했다. 문서에 따르면 만철은 1907년 설립 이후 일본 군국주의의 중국 침략 과정의 주요 사건마다 핵심적 역할을 맡았다. 1937년12월 일본군이 난징을 점령했을 때도 만철은 이를 지원하기 위해 '난징특무반'을 파견했다. 만철 난징특무반은 1938년1월 제1차 보고서에서 "점령 전 난징 인구는 106만명이었으나 접수후 난징 난민은 20만명이었다"고 밝혔다. 이는 최대 80여만명이 일본군의 난징 점령 과정에서 다른 곳으로 피난을 갔거나 희생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보고서는 특히 "당시 난징은 황군(일본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된 만큼 도망갈 곳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자오환린(趙煥林) 관장은 "이러한 기록으로 볼 때 난징대학살의 희생자는 적어도 35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고 주장했다.

1938년2월 작성된 만철 난징특무반의 제2차 보고서엔 "약 600명의 시체매장부대가 1월 초순부터 특무반의 지휘 아래 연일 난징 안팎의 시체를 처리했다"며 "2월말까지 매장한 시체가 약 5,000구이며 이는 현저한 성과"라고 적혀 있다.

나아가 1938년3월의 제3차 보고서는 "시체 처리 작업이 이미 3개월을 지나며 그 성과가 가히 칭찬할 만하다"며 "그러나 이미 모든 자금을 써 버려 작업이 곤경에 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매일 트럭 5,6대, 민공 200~300명을 동원, 시체를 모았다"며 "3월15일까지 성내에서 1,793구, 성밖에서 2만9,998구 등 총 3만1,791구의 시체를 특정한 곳에 수용했다"고 설명했다.

자오 관장은 "당시 일본 군국주의와 만주국, 만철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였고, 기시 노부스케는 만주국의 고위 관료이자 만철을 지휘한 주요 인물 중 한 명이었다"며 "지난해 12월26일 아베 총리가 2차 대전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한 것은 이러한 일본 군국주의의 대외 침략과 식민지 통치의 역사를 미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보고서를 공개한 이유는 일본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에 대해 중국인과 아시아 피해국가 및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오환린 중국 랴오닝성 문서기록관장이 17일 일본군의 난징대학살 당시 활약상을 담은 남만주철도주식회사 난징특무반의 비밀보고서를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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