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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속 동물과 관련한 이야기(2)
게시물ID : history_285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harussari
추천 : 20
조회수 : 1780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7/07/11 20: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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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어제 올렸던 물소에 이어서 오늘은 코끼리와 닭과 관련된 이야기를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코끼리는 이미 인터넷이나 과거 역사게시판에도 몇 번 소개되어 많이 알려진 내용이라 쓸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결국에는 그냥 써보기로 했습니다. 

 
물소와 코끼리.jpg
< 지난 번 글의 주인공이었던 물소의 패기 >

물소와 코끼리2.JPG
<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코끼리 >

 요즘에는 코끼리야 동물원이나 미디어 매체 등을 통해 언제 어디에서나 접할 수 있는, 그리고 짱구 때문에 어렷을 적부터 친근한 동물 중 하나입니다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코끼리가 조선에 들어온 일이 있었는데 바로 조선 태조 때 일본이 코끼리를 바치면서 처음 조선에 들어오게 됩니다.

 지난 번 물소도 그렇고 일본이 참 이럴 때 역할을 해주었네요.

  일본 국왕 원의지가 사자를 보내어 코끼리를 바쳤으니, 코끼리는 우리 나라에 일찍이 없었던 것이다. 명하여 이것을 사복시에서 기르게 하니, 날마다 콩 4, 5두 씩을 소비하였다.
<태종실록 1411년 2월 22일 기사>

 그런데 문제는 이 코끼리가 사람을 밟아 죽이면서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잘라서는 코끼리를 관리하던 이들을 다치게 하기도 하였죠. 안그래도 코끼리의 먹는 양이 엄청나 곤란한 상황이었는데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까지 하였으니 조정 내에서는 코끼리에 처분을 두고 논의가 오고 가게 되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전 공조 전서 이우가 죽었다. 처음에 일본 국왕이 사신을 보내어 순상을 바치므로 삼군부에서 기르도록 명했다. 이우가 기이한 짐승이라 하여 가보고, 그 꼴이 추함을 비웃고 침을 뱉었는데 코끼리가 노하여 밟아 죽였다.
<태종실록 1412년 12월 1일 기사>

 병조 판서 유정현이 진언하였다.
 "일본에서 바친바, 길들인 코끼리는 이미 성상의 완호하는 물건도 아니요, 또한 나라에 이익도 없습니다. 두 사람이 다쳤는데 만약 법으로 논한다면 사람을 죽인 것은 죽이는 것으로 마땅합니다. 또 일년에 먹이는 꼴이 콩이 거의 수백석에 이르니, 청컨대 주공이 코뿔소와 코끼리를 몰아낸 고사를 본받아 전라도의 해도에 두소서."
 임금이 웃으면서 그래도 따랐다.
<태종실록 1413년 11월 5일 기사>

 결국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한 코끼리는 죽음은 면했지만 전라도의 한 섬으로 귀향을 가게 됩니다.

 이때 코끼리도 뭔가 느낀 바가 있는지 서러움의 눈물을 흘리며 밥도 먹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보고를 들은 태종은 결국 마음이 약해서 귀향 간 코끼리를 다시 육지로 올리게 하라는 명을 내립니다.

 하긴 사람도 버티기 힘들어 한 귀향 살이를 어찌 코끼리가 버틸 수 있었겠습니까...

 전라도 관찰사가 보고하기를,
 "길들인 코끼리를 순천부 장도에 방목하는데, 수초를 먹지 않아 날로 수척하여지고, 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립니다."
 하니, 임금이 듣고서 불쌍히 여겼던 까닭에 육지에 내보내어 처음과 같이 기르게 하였다.
<태종실록 1414년 5월 3일 기사>
  
 이렇게 눈물로써 다시 육지로 돌아 온 코끼리는 한 동안 조용히 살았습니다만 세종 대에 이르러 마음이 풀어졌는지 또 다시 사람을 죽이는 사고를 일으키고 맙니다.

 그리고 그 처분은 또 다시 귀향이었죠. 사람도 아닌 동물인 코끼리가 남들은 일생에 1번 갈까 말까한 귀향을 두 번이나 가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충청도 관찰사가 계하기를,
 "공주에 코끼리를 기르는 종이 코끼리에 채여서 죽었습니다. 그것이 나라에 유익한 것이 없고, 먹이는 꼴과 콩이 다른 짐승보다 열 갑절이나 되어, 하루에 쌀 2말, 콩 1말씩 이온 즉, 1년에 소비되는 쌀이 48섬이며 콩이 24섬입니다. 화를 내면 사람을 해치니,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해가 되니, 바다 섬 가운데 있는 목장에 내놓으소서."
 하였다. 선지하기를,
 "물과 풀이 좋은 곳을 가려서 이를 내어놓고, 병들어 죽지 말게 하라."
 하였다.
<세종실록 1421년 3월 14일 기사>
 
 이후로 코끼리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남은 여생을 귀향 간 섬에서 조용히 보낸 듯합니다. (더 이상의 눈물은 먹히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일본에서 건너 온 코끼리는 총 4명의 사상자와 2번의 귀향이란 기록을 조선왕조실록 속에 남겼던 것이죠.

 코끼리에 이어 두 번째로 이야기할 동물은 바로 닭입니다.

 그런데 이번 시간에 이야기할 닭은 조금 특이한 닭입니다. 바로 트렌스젠더 닭이거든요. 

 트랜스젠더라 하면 사전적 의미로 육체적인 성과 정신적인 성이 반대의 경우를 의미하는데요 이는 사람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고 다른 동물들에게도 해당되는 경우라고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놀래기류의 물고기가 있겠네요.

 * 놀래기는 태어날 때는 모두 암컷이나 자라면서 일부가 수컷으로 성전환을 한다고 합니다.

놀래기.JPG
< 시작은 암텃이나 끝은 수컷일 수도 있으니... >

 얼마 전에는 까투리가 장끼로 변했다고 해서 '세상에 이런 일이'란 프로그램에 소개된 적도 있었죠. 이러한 트랜스젠더 동물은 조선왕조실록 속에서도 등장하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이번에 이야기할 닭이 되겠습니다.

  풍창군 심형의 집 암탉이 변하여 수탉이 되었다가 어느 날 저절로 죽었는데 그 깃이 모두 저절로 떨어져 날아갔다.
<중종실록 9년 11월 3일 기사>

 강릉 사람 김문석의 집에, 반쯤 검은 암탉이 2월 초부터 변화하여 수컷으로 되었다. 머리 위의 붉은 볏이 수탉과 매우 같고 목털이 연하고 길며 발이 크고 며느리 발톱이 나기 시작하였다. 온 몸이 붉은 수탉이 되어 길게 우는데, 우는 소리가 반은 쉬었다.
<중종실록 1년 3월 18일 기사>

 경상도 의성의 민가에서 암탉이 수탉으로 변했다.
 "사신은 논한다. 천지 사이에 생명이 있는 물건이 태어날 때부터 암컷과 수컷이 정해져 결코 서로 뒤바뀌지 않는 것이니, 이는 음과 양의 바꿀 수 없는 이치이다. 의성 고을에서 암탉이 수탉으로 변해서 볏과 뒷발톱이 나고 수탉터럼 울기까지 하였다니 이변으로는 극에 이른 것이다. <서경>에 '암탉은 새벽에 울지 않는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하였다. 암탉이 새벽에 우는 것도 오히려 집안이 망한다고 하였는데, 더구나 수탉으로 변해 볏과 뒷발톱이 나고 울기까지 하였음에랴, 당시에 모후가 안에서 국정을 잡고 외척이 밖에서 권력을 휘둘러 임금은 위에서 고립되고 중들은 아래에서 날로 번창하였다. 음양이 뒤바뀌고 요열이 거듭 이르는데도 군신 상하가 멍청히 두려워할 줄 모르니, 아 통탄할 일이다."
<명종실록 14년 1월 24일 기사>

 물론 트랜스젠더 닭과 관련된 기록은 위에서 언급한 3가지 사례 외에도 여러번 더 등장합니다만 흥미로운 것은 중종과 명종 시기에 유독 많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특히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명종실록의 내용인데요 왜냐하면 명종실록 속 트랜스젠더 닭을 통해 왜 조선왕조실록 속에 트랜스젠더 닭이 기록되게 되었는지를 유추해 볼 수 있기 때문이죠. 

 기록에 보면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서경의 구절까지 언급하며 '모후가 안에서 국정을 잡고 외척이 밖에서 권력을 휘둘러 임금은 위에서 고립되고'라는 내용이 보이는데요 이는 당시 혼란했던 국정 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내용이죠.

 실재 이는 당시 명종이 집권했던 정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당시 명종은 대윤과 소윤이 서로 으르렁 찰나에 12살이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면서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하게 되어 윤원형 및 소윤 일파가 권력을 잡고 대윤에 대한 대대적 숙청을 자행했던 시기였습니다.

 결국 조선왕조실록 속에 등장하였던 트랜스젠더 닭은 최고 권력이 집중된 궁궐에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높았던 때 지나친 왕실 여성들의 발언권을 경계하는 목적에서(중종 시기에는 자순대비, 명종 시기에는 문정왕후) 출현하였던 것이죠.

 
 조선왕조실록 속 동물과 관련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더불어 조선왕조실록 속 시리즈도 여기까지입니다. 

 매우 짧은 시리즈였습니다만 이나마라도 재미있게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모쪼록 재미있는 글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실 이런 글을 역게에 쓰게 된거는 역사게시판의 활성화 때문이었습니다. 뭔가 옛날에는 사람도 많았고 유익한 글도 많이 올라오고 했는데 어느세 부터인가 게시판이 유사역사를 주장하는 이들이 올때마다 초토화되고 이때문에 공지 작성과 관련하여 논의가 오갈 때는 식민사학자, 식민카르텔의 소굴로 불리면서 사람들이 많이 떠나고 글이 올라오는 것도 확연히 줄어버려서 아쉬웠거든요. 뭐 가끔 역사게시판이 활발해지는 시기가 있습니다만 그것도 유사역사학과 싸울 때가 대부분이구요... 그냥 게시판 상황이 이러다보니 예전처럼 다시 역사게시판이 양질의 글이 올라오는, 활발함을 되찾았으면 해서 쓰게 되었네요.

 음.... 사실 다음에는 어떤 글을 쓸지는 이미 정했습니다. 애초에 이 글을 쓸 때부터 정했던 건데(그것도 마찬가지로 과거 동아리 활동 시절 발표문으로 만들었던 것...) 구한 말 서양인들이 바라봤던 조선의 모습에 대해서 써볼까 합니다. 이 글도 내용이 꽤 되서 아마 시리즈처럼 나눠서 올릴 것 같습니다.

 업데이트 시간은 오늘과 동일하게 될 것 같은데 그럼 또 내일 이 시간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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