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반이라고 하면 뭔가 낭만이 있는 좋은 장소라고 여겨지지만.. 내가 캠핑용 자동차를 타고와 하루이틀 정도 지내기엔 정말 좋다. 호주 맑은 하늘에 쏟아지는 별빛들..
내 앞에 보여지는 컨테이너 박스에 잠깐 그런 낭만을 기대했었다. 그리고 실내는 제대로 보지 못한 채 한인업체의 매니저는 장을 보러 가야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카라반에서 차로 15분 정도 달려 콜스라는 곳에 도착하게 된다.(한국으로 치면 홈플같은) 우리는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 채 그저 그날 밤 있을 파티를 위해 고기나 와인같은 것들을 사기 시작했다. 정작 필요한 식기구나 이불 침대커버같은 것은 사지 못한채..
우리가 장을 보고 돌아오자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마침 저녁먹을 시간이 되어 다들 숙소에 짐은 정리할 생각도 안하고 공동주방으로 모여 파티할 생각을 했는데 공동주방은 기본적으로 취사의 기능만 있을뿐 식기구 따윈 존재하지 않았고 결국은 다른 숙소에 들러 구걸하듯 식기구들을 빌려 바베큐 파티를 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 인터뷰가 있었지만 모두들 그 것을 잊으려는 듯 부어라 마셔라 하는 분위기가 계속되었고 그 와중 기존에 일하고 있던 다른 숙소 사람들이 술자리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보다 한 달 내지 두세달 정도 먼저온 사람들이였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에겐 그들이 엄청난 경험자로 비춰졌다. 그들은 각자 손을 보이며 아직도 주먹이 쥐어지질 않고 손이 너무 아프다고 하소연을 시작했다. 내가 잡을 구한 건 시골 변두리에 양고기 공장이였는데 포장을 하는 패킹이나 냉동창고같은 데서 고기를 잘라 분리하고 또 포장하는 보닝룸은 일이 쉽지는 않지만 할만하다고 했으나 빨간츄리닝을 입은 딱 봐도 그 무리에서 가장 포스있는 여자가 말하길 양을 도축하는 킬플로어만 가지 않으면 된다고 했다. 자신은 킬플로어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 여자는 중계한 한인업체를 죽여버리고 싶다고 말하기까지 하며 돈까지 내고 잡을 구매하여 이 곳까지 왔는데 킬플로어에서 똑같은 시급을 받고 일하는 건 너무 불합리하다는 이야기였다. 걔다가 여자는 잘 안간다는 소리와 함께.. 그 말에 보닝룸이나 패킹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동조하며 동정의 눈빛을 쏘아보냈다.
부어라마셔라죽자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냉랭해졌고 곧 술자리는 파해지게 되었다. 아까만 해도 걱정없었던 우리들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졌고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각자 뒷정리를 나누어하고 아까 제대로 보지 못했던 숙소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렇게 도착한 숙소의 현실이 제대로 보여지기 시작했다. 그 곳은 마치 공사판에 임시로 지어진 컨테이너 박스 안이였는데 심지어 넓지도 않았다. 바닥에는 한번도 안치운 듯 실외의 바닥과 다름없이 흙먼지들이 굴러다녔고 우리들이 지낼 침대는 정말 눕기가 꺼름칙하게 하얀색 시트가 회색으로 변해있었으며 이불하나 없었다. 간단한 부엌과 인덕션 그리고 전자렌지가 다였고 화장실이나 샤워실은 이용하려면 밖에 공용시설을 이용해야 했다 대략 다섯평도 안되는 공간 속에 배정된 건 나를 포함 여자 세명이였고 그나마 이곳이 여자가 쓸 공간이라 깨끗한 편에 속한다고 했다. 짐을 풀 힘도 남아있지 않아 옷가지 속에서 그나마 가장 큰 비치타월을 꺼내 침대에 누웠다. 침대는 트윈침대였는데 안에 간이침대가 있는 곳은 더욱 열악해서 마침 짐놓을 공간도 마땅치 않아 그 곳에 우리 짐을 모두 몰아넣고 세명이서 트윈침대에 꾸겨잘 수 밖에 없었다.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내 기억으로 저 숙소가 주당 150불 정도 했었던 것 같다)
짐을 놓을 때만 해도 햇빛을 잔뜩 머금어 사우나같던 실내는 밤이되자 언제그랬냐는 듯 또 차가운 기운을 잔뜩 빨아들여 냉동고가 되었다. 그 덕에 우리 셋은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며 잠들었었던 것 같다. (추후 차라리 이것이 좋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른 아침 울리는 알람소리에 나는 문득 이 곳이 한국이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과 함께 엄청난 후회가 몰려왔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이런 환경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곳은 부모님이 있는 한국과 달리.. 업체를 끼고와 그래도 어느정도 해결해되리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하고 내가 해야만 했고 상상했던 찬란한 외국생활과는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가기전에 많이 검색했었지만 대부분의 경험담은 어두운 면 보다는 밝은 면만을 기재한다는 것을 이때는 몰랐다.) 입김이 나오는 새벽, 가져온 일회용 샴푸와 바디클랜저로 그나마 칸막이가 쳐져 일인씩 사용가능한 공용샤워장에서 샤워를 마친 후 공장까지 어떻게 가야하나 하고 있다가 결국 걸어가기로 했다.
공장에 가는 길은 멀기도 멀었지만 중간에 고속도로가 끼어있어 매우 위험한 길이었는데 다행히 조금 걸어가다가 카라반 다른 숙소에 살고있던 한국인 오빠가 픽업해줘서 공장에 차를 타고 갈 수 있었다. 엑셀을 밟아도 차로 15분 정도 걸리는 그 곳은 분명 걸어갈 수 있지만 걸어가기에 무리가 있는 거리였다. 첫날엔 한시간 반가까이 걸려 걸어온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역한 양냄새가 코가저리게 났고 머릿속에는 이대로 한국에 가면 정말 창피한 일이겠지 하며 온갖 잡념이 나타났다.
그렇게 나는 공장관계자와 인터뷰를 보기위해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다.
출처
그때의 기억이 주마등 처럼 스치네요 기억이 완벽하게 나는게 아니라 디테일이 좀 떨어질 수는 있지만 아직도 그 양냄새는 명확히 기억나네요. 다음 편도 생각나면 이어쓰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