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작아서 입사 이후 쭉 같은 팀에서 같은 팀원들과 근무하고 있어요.
일도 손에 익었고, 상사 선배님들도 다 잘해주셔서 회사 생활 자체에는 문제가 없는데
딱 남자 차장님 한 분의 식사매너가 똥망이라 같이 뭘 먹을 때마다 멘붕입니다...
직장 생활 N년차지만 아직도 직속후배가 없는 쪼렙 막내라 음슴체.
1. 시작은 달콤하게 평범하게. 먹던 음식을 공용 휴게실, 냉장고에 아무렇게나 방치해 둠.
반만 베어먹은 바나나, 통째로 퍼먹다가 플라스틱 숟가락 그대로 꽂아놓은 수박 반 통, 랩이 다 벗겨진 떡 같은 건 차라리 양반.
빨아먹던 스크류바를 껍질도 없이 그냥 넣어둠. 냉동실 한복판에. 덩그러니.
막대기를 만지기도 싫어서 손에 티슈 둘둘 감고 손끝으로 들어올렸더니 쭉 늘어지는 분홍색 당과 침.. 엄마..
2. 아직 삐약삐약 소리도 못 내는 햇뿅아리일 때 팀 실적평가 결과가 좋아서 팀장님이 패밀리 레스토랑을 쏘신 적이 있었음.
다 같이 먹을 샐러드 두개, 피자 하나 빼곤 다 1인 1메뉴.
차장님은 스테이크를 시키셨고 나는 크림파스타를 시켰는데 내가 포크를 들기도 전에 스테이크 소스 묻은 포크가 내 그릇으로 쑥 들어옴.
그리고는 온 음식에 포크를 비비며 면을 둘둘둘.. 경악해서 쳐다보는데 아랑곳 않고 그대로 쑥 들어서 본인 접시로 가져감.
가져가는 동안 밑에 뭘 받치지도 않아서 테이블이며 샐러드며 다른 팀원분들 메뉴에도 크림 소스가 뚝뚝 떨어짐.
순식간에 한 입도 안 먹은 접시는 반이 비었고 남은 파스타는 소스랑 고기 그을음 같은 게 잔뜩 묻어서 엉망.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상태로 입 떡 벌리고 있었더니 먹을 거 뺏어갔다고 그런 줄 아셨는지
아이 나눠먹어 나눠먹어~ 하시며 썰어놓은 본인 스테이크를 툭툭 던지다시피 내 접시로 옮겨주심.
스테이크랑 파스타 소스가 뒤섞이며 그릇은 이미 지옥에서 온 크림풀장.. 파스타:죽여줘.....
나한테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팀원분들 메뉴며 샐러드도 소스 잔뜩 묻은 포크로 막 뒤적이고 허락도 없이 퍼가고 하시는데
다들 적응이 되셨는지 체념을 하신건지 그래 많이 먹어라 하시며 안 더러워진 부분 알아서 잘 찾아드심. 사실 그게 더 멘붕..
입맛이 뚝 떨어져서 그나마 소스 안 묻은 피자랑 샐러드 깨작거리고 있었더니 옆에 계시던 다른 과장님(그 과장님까지는 멀어서 포크가 안 옴.
딱 내 그릇까지가 사정거리..)께서 마리씨 내거랑 바꿔먹자 하시는데 차마 그럴 순 없어 괜찮다고 함.
십여만원어치를 먹었는데 배가 텅텅 빈 기이한 현상.. 사무실 도착해서 과자 까먹었더니 문제의 차장님이 마리씨 배도 크다! 하심. 아 예....
그 사건 이후 웬만하면 차장님이랑 겸상하지 말자를 회사생활 제 1원칙으로 삼음.
다행히 다른 팀 팀원들이랑 밥 먹을 일도 있고, 회사 가까운 곳에 동창 회사도 있고 해서 점심은 따로 잘 먹고 다님.
회식 할 때는 최대한 차장님이랑 떨어진 자리에 앉음. 이쪽 대각선 끝과 저쪽 대각선 끝 정도.
그렇게 어찌저찌 평화로운 노겸상 라이프가 이어지던 중에 아래 사건이 일어남.
3. 회사에서 가끔 간식을 사먹는데 주로 분식을 먹다가(2번 일 이후로 뭐 먹을 일 있으면 메뉴 펼치자마자 얼른 종이컵이나 앞접시에
내 몫 딱 덜어가지고 멀찍이 떨어져 먹음. 예의 없는 행동일까봐 걱정했는데 선배님들이 먼저 마리씨 먼저 가져가~ 하시며 덜어갈 시간 주심ㅠㅠ)
하루는 피자를 시킴. 사이드메뉴로 핫윙을 시켰는데 인원수보다 두피스였나를 많이 시켜서 누가 못먹거나 모자랄 일은 없겠지 했음.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박스 딱 펼치자마자 피자는 두고 핫윙에 손을 대시기 시작하는데
본인 몫, 추가해서 시킨 몫으로 모자라 다른 사람 몫까지 흡입하심.
뿅아리 딱지 뗀 영계 쯤 됐을 때라 대놓고 "아 차장님 일부러 넉넉하게 시켰는데 이걸 다 드시면 어떡해요" 했는데도
먹는 거 갖고 왜그래~ 하며 귓등으로도 안 들으심. 다른 분들 드시라고 그냥 내가 핫윙에서 손 털었음.
그리고 피자를 먹기 시작하는데 핫윙을 그렇게 드셨으니 피자가 들어 갈 리가 있나....싶었지만 깔끔하게 본인 몫 피자까지 클리어.
문제는 그 후에 발생. 팀에 잡다한 일반 서무를 도와주는 알바생이 있는데 그 친구 밥 먹는 게 좀 느림.
다른 분들 다 드시고 일어나실때까지 한 조각 오물대고 있으니 입맛 쩝쩝 다시며 쳐다보던 차장님 아~ 배 부른데 남았네~ 하며 알바생 피자에 손댐.
손을 대려면 차라리 다 가져가지 맨손으로 피자 위에 있는 토핑을 쏙쏙 빼먹음....
경악해서 "차장님 그거 OO이 거잖아요 애 먹고 있는데 지저분하게 왜 그러세요" 했더니
입으론 "아 그래? 하도 안먹길래 남는건줄 알았지~" 하면서 손으론 계속 치즈를 헤집어서 토핑을 빼감.
결국 내가 알바생한테 내일 점심에 맛있는거 사주겠다고 대신 사과함. 착한 알바생 괜찮아요 저 원래 양 적잖아요 하며 치우는거 도와줌.
거기서 사건이 끝이 났어야 했는데... 우리 둘이 주섬주섬 정리 시작하니까 차장님이 어어? 하며 가로막음.
나 : 왜요?
차 : 음식을 그렇게 버리면 어떡해.
?? 음식? 여기 무슨 음식이 있나요? 설마 차장님이 맨손으로 토핑 쏙쏙 골라먹고 얇은 베이컨 빼먹겠다며
손톱 아래 치즈가 낄 정도로 꾹꾹 눌러서 도우까지 다 찢어진 이 피자를 음식이라고 하시는 건 아니겠죠?
하는 표정으로 쳐다봤는데 혹시나가 역시나. 피자의 형태를 잃은 피자를.. 본인이 드시는 것도 아니고 알바생한테 먹으라고 함. 네 거라고 하지 않았냐며.
알바생 뭐라 대꾸도 못하고 X발 인생 환멸... 하는 표정으로 자기 앞에 놓여진 피자만 물끄러미 쳐다봄.
[System] 하지마리 님이 투계 로 진화하셨습니다. 차장님 쳐다도 안 보고 OO아 먹지마 하면서 비닐봉지에 남은 피자 쏟아부어서 두번세번 묶어버림.
그 와중에도 아이 먹을 걸 왜 버려~ 하시는 차장님에 나 결국 폭발.
차장님이 맨손으로 다 헤집어 놓으신 걸 애가 도대체 어떻게 먹냐고, 드시려면 차장님이 드시지 왜 애한테 강요하시냐고. 시골에서 키우는 개밥도 이렇게는 안 줄거라고 화 냄.
죄 없는 알바생은 가운데서 안절부절. 큰소리 나니까 과장님 부장님 나오셔서 됐다고 말리시는데 차장님이 회심의 멘붕 카운터를 날리심.
"우리 와이프랑 딸래미들은 아무 소리도 안 하고 잘만 먹는데 마리씨 왜 그래 진짜?"
Aㅏ.............................................................................................................................
아내분과 자녀분들이 겪으시는 데일리 멘붕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겠구나... 아니 그냥 저 집 가풍인가... 내가 네모들의 세상에 끼어든 동그라미인가....
그 순간 모든 의욕을 상실하고 그냥 덤덤히 테이블 치움. 차장님 계속 아까운 음식 버린다고 궁시렁거리시는데 이미 그냥 BGM으로 들림.
이걸 식사예절이라 해야할지 식탐이라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굵직하게 생각나는 게 이정도지 사소한 것까지 적자면 한도끝도 없음.
밥 먹을 때 입 한껏 벌리고 쩝쩝거리시는 건 당연히 기본이고,
횟집에서 남는 회로 끓여준 매운탕(1인 1뚝배기 X, 다 같이 먹는 큰 냄비)에 고춧가루 다 묻은 본인 밥 쏟아서 말아먹기,
중식당 가서 단무지 죄다 본인 자장면에 쏟아붓고 비벼먹기.. 등등...
아무튼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나의 회사생활 제1목표는 차장님과 겸상 안하기임.
오늘 점심에도 알바생 데리고 나가서 쌀국수 국물 한 방울 안 흘리고 먹고 옴.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