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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파 4] 사보이는 영원하리 (4)
게시물ID : gametalk_34380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차근이
추천 : 1
조회수 : 77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7/01 04:15:00

전쟁이 끝났지만 주변국의 정세는 순식간에 어지럽게 변하고 있었다

사보이 공국도 그 어지러운 순간에 휘말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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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은 동맹이 파기 됬던 프랑스와 다시 관계를 진척시키고자 했다

확실히 강력한 세력을 등에 업는것은 적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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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공작이 추진했던 행정 개혁은 성공적이었다

부패한 관리는 처벌하고 지방의 지배력을 공고하게 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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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폐개혁 역시 순조로웠다

통합된 스위스 경제때문에 치솟던 인플레이션은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조세 또한 원만히 걷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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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4년 7월 17년

동정녀 마리아가 숭배대상인지에 대한 논란이 생겼다

하지만 동정녀가 없었다면 과연 예수가 죄를 구원할 수 있었을까

공작은 동정녀 숭배를 거부하는 이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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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공작 개인의 안타까움과 별개로

이런 신학적 논쟁은 유럽에 종교적 갈등을 불러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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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는 유럽의 보편적인 사상으로 자리잡았다

아메데오 9세는 훌륭한 학교와 사상에 대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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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곧 공국의 영광과 직결되는 일 이었다

이 영광으로 인해 사보이 공국의 전쟁이 언제나 정당하다는 것을 유럽에 인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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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6년 5월 1일

사보이 공국은 헤로티코 콤뷰렌도를 통과시킨다

이단에 대한 억제로 인해 종교적 갈등이 심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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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은 행정 개혁에만 치중하지 않았다

그에 맞에 해군기술을 받아들이고 귀족들에게 군사적 자문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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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국들의 압박속에도 사보이는 꿋꿋하게 버티고 있었다

자유민을 비롯한 시민들도 이를 영광되게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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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전쟁중이던 프랑스는 부르고뉴와 카스티야에게 선전포고를 받았다

아직 백년전쟁은 끝나지도 않았지만 프랑스는 추가로 두 국가와 힘겨운 전쟁을 벌여야 했다

아마 공작이 조약을 파기하지 않았더라면 공국도 이 전쟁에 참가하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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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번에 세나라를 상대할 만큼 프랑스는 강한 국가였기에 친하게 지낼 필요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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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9년 1월 18일

행정개혁과 더불어 더 이상 몬페라토를 독립국으로 둘 필요가 없어진다

공작은 외교관을 파견해 몬페라토를 합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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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예상외로 합병은 외교적 비용이 많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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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적인 개혁과 함께 조폐소장과 상인의 대립, 그리고 예상외로 반발이 심한 몬페라도 지배층과의 대립으로 골치아파진 공작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두 조언자를 파면한다

두 사람은 공작에 큰 불만을 가지고 고향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각자의 영역에서 권위를 쌓고 죽었다

하지만 두사람이 파면됨으로 공작은 그들이 고안했던 정책을 다른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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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9년 10월 20일

사보이 공국의 발스태트 주에서 새 추기경이 선출된다

선출방식이 옳지 못해 주변국의 불만을 샀지만 공작은 신경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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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사상은 온 유럽에 퍼져 당연한 사상이 되었다

사상의 발전과 함께 공작은 국가를 위해 싸워야할 병력이 양적으로 많을 필요성을 느꼈다

이는 젊은이들이 당연히 나라를 위해 전쟁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국가주의의 시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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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만하지 못한 통합을 진행하고자 공작은 정치가를 조언자로 둔다

이로써 몬페라토의 지도층을 설득하는데 한결 수월해진다

1480년 7월 4일

몬페라토는 더 이상 자유국이 아닌 사보이의 한 주가 되었다

하지만 주변국들은 국가의 자유를 침해한 공국을 곱지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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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전란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다

곧 끝나리라 생각했던 백년전쟁은 끝나지 않고 다른 두 적과 힘겨운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주변국들의 정세에 휩쓸리지 않고 아메데오 9세는 해야할 일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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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에게 추가 교회세를 걷을 수 있게 허가를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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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페소장이 미처 진행하지 못한 조페개혁을 서두른다


그러나 곧 예상치 못한 외교적 위기가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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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사보이 공국과 베네치아간의 위태로운 동맹이 결렬될 위기에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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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나라 모두 이탈리아 영향력을 노리고 있었기에 롬바르디 지역를 원했으며

베네치아의 영토를 노리는 오스트리아와 사보이가 동맹 중 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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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사보이와 베네치아간 사이는 금 가고 있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북 이탈리아의 패권을 두고 싸워야 할 상대였다

북 이탈리아를 손에 넣지 못하면 사보이는 여전히 주변국들의 먹잇감이 되고 말 것이다

공작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차피 동맹은 곧 끝난다 내 영지와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리라


사보이는 영원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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