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 전 후를 기점으로 인류 문명의 양 극단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2개의 문명이 등장하게 됩니다.
로마제국과 한나라입니다.
다수의 문명들이 충돌하던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장 비옥한 생산지대를 보유한 지역단위를 바탕으로
해당 지역을 모두 석권하며 통일한 2개의 단일 국가가 등장하게 됨에 따라
정치적 안정에 따른 생산력 향상을 가져왔고
이런 체제가 양지역에서 400여년에 걸쳐 지속 된에 따라
지역의 안정기와 함께 찬란한 문화유산을 배출하여
이후 기독교 문명 - 유교문명으로 상징되는 중요한 문화권을 만들게 됩니다
이러한 중요한 두개의 양 극단의 거대한 문명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이후 실크로드라는 이름으로 유라시아의 거대한 무역루트까지 구축하게 되며
그 중간 지점에 있는 중앙아시아 중동 지역을 함께 번영하게 만드는
인류 문명사 발전의 큰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런 거대한 2개의 문명이 결국 붕괴가 되었지만
해당 지역에서는 이때의 문명을 계승한다는 의식을 남겨주어
이 국가들에 대한 기억을 강력하게 공유한 후대의 국가들이 나름의 동질성을 유지하게 됩니다
유럽에서는 나폴레옹 시기까지 신성로마제국이 이어졌으며
동아시아에서는 청나라 등장 까지 존재한 중화사상이 그러합니다.
양 지역에서 로마제국과 중화제국라는 것의 의미는
곧 자신들이 야만의 상태가 아닌 문명국임을 밝히는 행위입니다.
특히 동아시아의 경우 유럽과 다른 점이 있는데
진나라 진시황제의 등장 때 나타난 군현제라는 중앙집권적 국가 시스템의 발견과
천하통일 사상이라는 정치이념의 출현은
해당 국가의 소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그러한 규모의 국가를 재건하고자하는
열망으로 이어져 동아시아지역을 통일한 비슷한 개념의 후속 국가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유럽의 경우 해당 문명의 계승과 수복이란 개념이
도시 단위입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들이 로마 문명의 적통임을 증명하기 위해
이탈리아 지역의 도시에 집작하던 것
동로마의 계승자임을 자청한 러시아가 콘스탄티노플에 집착 하던 것
로마의 교황이 예루살렘에 집착하던 것 등
어떤 계승의지의 표현을 도시단위로 진행 한 것에 비해
동아시아의 경우 진나라의 등장으로
중앙집권적 체제를 기원 전에 한나라 등장 이전에 이미 경함하게 됨에 따라
과거의 봉건적 개념에서 도시단위에 집착하던 관념을 넘어
문명의 계승 의미를 지역 전체를 통치의 개념으로 상정하게 되었고
이들 지역 전체를 통제하는 것을 천하통일이라 부르며
계승한 이후 모든 왕조가 이를 집착하여 달성하게 됩니다.
유럽의 경우 분열 된 각 봉건국가가 도시 단위로 상호 투쟁하며
관념적으로 로마의 계승의식을 표현하게 된 반면
동아시아의 경우 모든 지역을 통일 한 단 1개의 국가가
지역 전체를 한나라와 똑같이 모두 석권하는 것을 천하통일이자
천명을 이어받는 개념이라 여기게 되고
이후 실질적인 물리적 지배에 기반한 통치를 지향하게 됩니다.
이렇게 탄생한 동아시아의 소위 천명을 받은 천자국 중화제국은
주변의 다른 국가와 차원달리하는 비대칭 패권을 가지게 됩니다.
동아시아 생산지대의 80% 인구의 90%를 선점한 1개 국가의 등장은
문명, 문화적 우월성과 함께 물리적 힘 역시 압도하는 것으로
유럽의 여러국가들과 달리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는 동등한 관계를 용납 못하게 됩니다
동아시아의 조공질서라 불리워 지는 이러한 체제는
중원을 통일한 중화제국의 문화적, 국력의 우월성을 주변국이 인정하면서
이들과의 무역, 교류를 통해 문명의 혜택을 공유하고 전파하는 체제로
근세까지 이어지는 전통적 국제질서가 됩니다.
이런 국가의 생산력과 인구에 기반한 물리적 비대칭 관계
그리고 중심부 중화제국과 주변부 국가들 간의 관계를
이들 국가들 모두가 공유하는 유교사상에 기반하여
정치 이념화 시켜 학습한 결과물이 중화사상입니다.
주나라 시절의 봉건제후와 천자의 개념을 유교경전이 이상향으로 지향하게 됨에 따라
주나라의 예법을 존중하는 중화제국과 이런 교화를 받는 주변국의 관계를
주나라시절 천자국과 봉건제후간의 예법으로 정치이념화 하였고
이것을 종교적 수준의 이상적인 정치체제로 이데올로기화 하여 적용한 것이죠
중화사상은 이렇게 동아시아에서 1500년 간 국제질서이자
윤리질서, 그리고 정치질서의 척도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러한 동아시아의 중화제국에 대한 존중과 인정 체제가
종말을 고한 것이 청나라의 등장입니다.
이미 이전 원나라라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강력한 유목제국의 등장으로
문명의 기원 이래 소멸한 바 없는 유교적 천자관에 입각한 중화제국이
남송의 멸망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소멸하는 경험을 겪으면서
기존에 존재한 중화사상과 조공질서가 100여년간 폐기된 경험을 겪었으나
이후 등장한 명나라는 이러한 과거의 중화제국의 지위를 회복하는 정책을 취합니다
이것이 근대까지 이어지는 중국의 쇄국정책 무역통제 정책입니다
과거 진나라~ 원나라 시절 광저우 지방을 중심으로 해상무역을 개방하여
아라비아 상인들이 자유롭게 무역을 하고 원나라 시절에는 베네치아 상인까지 찾아 오던
이러란 국제무역의 관행은 주변국인 고려국에도 영향을 주어
고려 역시 국제무역으로 번영하는 파급효과를 가져왔지만
명나라는 원나라 이전의 질서 회복을 위하여 이런 무역체제를 파기
중화로 인정하는 주변국에만 동아시아의 80% 생산지대를 장악한
중국과의 무역을 허락하는 제한된 조공무역을 실시하여
강제성과 자발성을 병행한 중화질서의 회복을 달성하게됩니다.
정화의 동남아 원정과 영락제의 북방 원정 그리고 조공무역 체제의 구축으로
회복하여 다시 부활한 중화제국의 질서는 약 200년간 진행 되었지만
또 다시 오랑케라 여기며 무시한 변방의 여진족이 발흥하여
명나라를 전복 소멸시키고 중원을 통일하게 되자
동아시아 주변국 모두에 가치관의 혼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여진족의 경우 조선, 일본에서 야인으로 취급하던 집단으로
조선 전기 조선에 입조하여 복속한 대상이었으나
이들이 거꾸로 조선이 섬기던 명나라를 정복한 사례로
조선이 경멸하던 국가가 하루 아침에 힘으로 복종을 강요하게 된 관계입니다
유럽으로 치면 이슬람을 믿는 이교도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에 이어 이탈리아 반도를 정복하고
로마제국의 계승자를 자청한 것으로
기존의 로마-기독교 문명을 공유하던 주변국이 용납 할수 있는 사안이 아닌것이죠
때문에 청나라의 등장은 과거 원나라의 등장으로 잠시 균열을 보였던
동아시아의 중화사상 체제가 그 수명을 다하게 된 사건이기도 합니다
외부적으로 동아시아의 생산지대 태반과 인구 대부분을 점유한
1개의 국가라는 점에서 물리적 패권을 장악한 것은
기존의 중화제국과 성격이 같지만
이런 물리적 비대칭 관계를 장기적으로 지탱해 줄 수 있는
정치적 이념적 사상적 연결고리는 내부적으로 사실상 파기가 된 것입니다
때문에 조선의 경우 무력으로 정복을 당한 경험에도 불구 하고
이후 효종의 북벌론에서 보듯
청나라를 기존의 중화제국으로 인정하며 존경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으며
영조 시절에 이르면 지방의 유생들이
조선의 군주가 명나라를 계승해 황제를 칭해야 한다는 상소를 보낼 정도로
사실상 청나라가 중화제국임을 부정하고 조선이 유일한 중화라는 인식을 가지게 됩니다
조선 후기 소중화 사상이라 배운 내용입니다
이는 조선만 그러했던 것이 아닙니다
베트남 역시 조선처럼 청나라에 무력으로 굴복을 당하였으나
외왕내제 체제를 통하여 내부에서 칭제를 단행하였고
중국과 다른 동남아 제국으로 방향을 돌려
캄보디아 등을 정복하며 이들을 번국으로 거느린 소중화를 자청하였으며
일본의 경우 더욱 심하여
자신들은 조선, 베트남과 달리
애초 청나라에 무력으로 굴복을 당한 것도 아니기에
명나라가 아닌 야인에 불과한 여진족을 중화로 인정하지 않음은 물론
야인들(여진족)에게 머리숙여 굴복을 한
조선까지 경멸하는 인식을 형성하게 됩니다.
에도 시대 성리학의 유포와 함께
중화인 명나라는 멸망하였고 조선은 개와 양같은 여진에게 복종하였으니
주나라 태백의 후손으로 중화의 적통을 이은 일본만이
이제 세상에 남은 유일한 중화라는 일본판 소중화 사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청나라의 등장으로 사실상 사상적으로 수명이 다한
중화사상 체제는 이제 물리적 강제력만 존재하게 되어
청나라의 국력으로 유지가 되는 외형을 보였으나
그 마지막 연결고리인 청나라의 물리적 강제력마저
파탄이 난 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바로 아편전쟁입니다.
청나라가 그 강력한 국력을 자랑하며 무시하던
서양 오랑케에 불과한 영국에게 무참히 깨진
아편전쟁의 패전은 동아시아의 중화사상의 최종적인 종말을 선언하게 됩니다.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일본입니다.
조공무역 체제에서 배제 된 이후 활로를 찾아 동남아 무역을 진행한 일본은
일본 규슈 남부 사스마 번을 통해 중국의 패전 소식을 듣게 되며
이 지역을 중심으로 기존의 동아시아 세계관을 대체할 새로운 체제를
지향하는 운동이 일어나게 되고
이때 일본의 지식인들인 나아가 탈아론이란 사상으로 동아시아 문명과의
결별을 선언하는 사상적 흐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특히 사스마 번의 경우 메이지 지사라 불리워 지는 근대 지식인들 배출하며
이후 메이지 유신의 개혁까지 이루게 됩니다.
조선의 경우 세도정치의 암흑기 이후 대원군의 집권과 함께
강력한 쇄국정책으로 중국에 의존하는게 아닌 자체적인 국방을 최중점에 두게 되며
기존 안정적인 동아시아 세계관의 붕괴에 따른 공포심리를
위정척사운동란 형태로 반동보수정책으로 표출하게 됩니다.
그렇게 과거 2천년을 지배한 동아시아의 국제질서이자 정치관은
서구의 열강이 들여온 만국공법 즉 국제법 원리에 따른
서구식 근대적 정치관과 국제질서로 흡수 편입이 되며 종말을 고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